10유로, 15,000원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소소하지만 두터운 정
워낙 물가가 높은 바르셀로나에서 10유로가 지니는 가치는 미미하다. 그럼에도 그 10유로가 어떻게 쓰이냐에 따라 사람 간에 소소하지만 두터운 정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당근이라는 중고거래 앱을 통해 사람들 간에 중고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여기 바르셀로나에서는 왈라폽(Wallapop)이라는 앱을 통해 중고거래를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 사이에는 스페인짱이라는 네이버 카페의 "벼룩시장"이라는 곳을 통해 거래를 하는 편이다. 이번에 방구조를 조금 바꿨겠다, 괜찮은 조명이 있는지 스페인짱을 둘러보다가 LG TV 50인치 새 상품을 박스도 개봉하지 않은 상태에서 판매를 하는 걸 보았다. 정가는 550유로지만 미디어마켓(하이마트)에서 250유로에 팔고, 본인은 160유로에 판매하겠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이건 있을 수 없는 가격이라 무리를 해서라도 구매를 하려고 연락을 걸었다. 야심한 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판매 중이라는 글쓴이의 답변에 행여나 마음이 바뀔까 바로 다음날 저녁에 약속을 잡았다. 중고거래에선 네고 (협상)를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너무나 싸게 나온 가격에 협상 자체가 미안할 정도였다. (심지어 미개봉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떨어지지 않는 160유로(150+10유로)가 눈에 걸렸는데 마지막 순간 택시비 명목으로 10유로를 네고 쳐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다음 날 일을 마치고 비씽(공유자전거)을 타고 판매자 댁에 들렀을 때 어느 젊은 커플이 맞이해 주었다. 골프대회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TV인데 기존에 TV가 있기 때문에 중고거래에 올렸다고 한다. 집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TV를 사주셔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하시는 커플이 감사했다. 그러곤 내가 이야기하기도 전에 이 10유로는 택시비로 쓰라며 먼저 선심을 써주셨는데 좋은 물건을 쿨거래해 주신 판매자분께 매우 감사했다. 그리고 짧게 스몰톡을 했는데, 참 재밌는 건 판매자가 직장 상사 분께서 계속 말씀하셨던 분이었던 것이다! 세상이 매우 좁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웃긴 건 그 TV 또한 우리 회사 법인장님께서 협찬을 한 TV였다. 결국 돌고 돌아 나에게 온 TV를 보며 모든 물건은 귀소본능이 있다 생각했다. 가장 좋은 협상은 원하는 것을 얻을 뿐만 아니라 사람도 얻었을 때라고 했는데, 난 이번 거래를 통해 두 가지를 동시에 얻었다! 다음에 다시 보자는 약속을 한 채로 그 10유로를 받아 들고 버스를 타러 갔다. 집 근처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고 택시비는 지금 나에게 사치라는 생각 때문에 약간의 고생을 하더라도 버스를 타고 가기로 결심했다.
집에 돌아와서 집주인에게 월세를 주려던 차에 그 10유로의 정을 나도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작년 7월부터 집주인에게 390유로를 내고 1년 3개월 정도를 살아왔다. 그런데 이 390유로도 어떻게 보면 딱 떨어지지 않아 좀 거슬린다. 그래서 이번 달부터 집주인에게 400유로 (390+10유로)를 줘야겠다 다짐했다. 그런데 갑자기 10유로를 더 준다고 하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나는 집주인에게 400유로를 주면서 "이번 달부터 너에게 400유로를 줄 거야."라고 이야기했다. 집주인은 웃으면서 "왜?"라고 물어봤다. "내가 여기서 지낸 지 1년이 넘었으니 물가상승률 3%를 적용해 줘야지!"라 했더니 집주인은 내심 좋아하면서 세입자가 알아서 물가상승률까지 챙겨주니 고맙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을 터이다. 물론 나도 생각 없이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다. 그동안 계속 생각은 해왔지만 적용하지 못했기도 했고, 아마도 TV를 들이면서 조금 더 쓰게 될 전기세이거나, 앞으로도 지내는 동안 더 잘 봐달라는 일종의 표시일 것이다. 아무튼 작지만 누군가에겐 큰 10유로를 통해 오늘도 인간의 정을 느끼고, 소탐대실(小貪大失)이 아닌 사소취대(捨小取大)를 경험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