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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벌머니 박타 Apr 10. 2023

EP5. 기억 속 드라마

장면이 많아도 엮어야 가치 있는 드라마


예전엔 드라마 하나를 보더라도 그때 딱 그 시간에 맞춰서 TV 앞에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이미 지나가버린 드라마는 재방송하는 시간대를 또 열심히 찾아 그때 시간을 비워놔야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때를 놓치면 영영 그 드라마는 보지 못하는 미궁으로 빠져버렸다. 기술이 조금 발달했을 땐, 해당 드라마가 시작됐을 때 녹화 버튼을 눌러서 공 비디오에 저장을 하기도 했는데 그 비디오를 빌려서 보기도 했다. 그만큼 드라마를 본다는 게 시공간적 제약이 심했던 시절이 있었다. 일례로 최수종과 수애가 나오는 장보고 관련 드라마 “해신”에 푹 빠져 살았을 때가 있었는데, 때문에 매주 수, 목요일 밤에는 TV 앞에 있어야 했다. 하루는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갔을 때였다. 신경이 예민한 할아버지는 여느 때와 같이 일찍 주무셨다. 그럼에도 나는 할아버지의 꾸지람을 들어가면서까지 오래된 TV의 안테나를 맞추고 소리를 최소로 해놓고 해신을 볼 정도로 열의가 대단했다.


그런데 요즘엔 참 손가락만 까딱하면 모든 종류의 드라마를 내가 보고 싶은 시간, 장소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정주행을 때려서 처음부터 끝까지 단번에 볼 수도 있다.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간절하진 않다. 그래서일까 친구들과 넷플릭스 계를 들어 한 달에 4천 원씩 내고 있지만, 넷플릭스에 접속하지 않은 지가 벌써 5개월이 넘은 것 같다. 바쁜 것도 있지만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아예 접속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실강을 듣다가 인강을 들으면 집중도가 확 떨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언제고 접근할 수 있다는 건, 사실 언제든지 노력해야 그것을 누릴 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야, 야. 우리 이렇게 모였으니까 꼭 즉석 사진 찍으러 가자. 잊지 마~!” 요즘 들어 친구들을 만나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멘트다. 4명이서 사진을 찍은 뒤에 한 푼이라도 아끼고자, “야 그냥 2장만 뽑아 난 QR코드로 찍어서 JPG파일만 있으면 돼”라고 이야기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좀 후회했다. 다른 사진들에 묻혀 그 사진이 어디에 박혀있는지도 몰랐고, 책상 벽에 다른 친구들과 찍은 즉석사진을 하나 둘 붙여놓고 보니 볼 때마다 그때 그 친구들과 찍었던 사진들도 있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곤 무조건 1인당 실물 사진을 1장씩을 가져야 한다는 지론이 생겼다. 언제든지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에는 실물로 가지고 있어야 계속 보게 된다. 남미에서 뵀던 60세 노인이 매일 사진 1~2장씩만 찍는데 여행이 끝나고 그 사진들에 기록을 남겨 책자로 보관하고 계신다는 것에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다. 외장하드에 박혀 언제고 사라질 수 있는 디지털 파일이 아닌, 내 손에 만질 수 있고 생각이 날 때마다 반복해서 볼 수 있는 책이 더 값지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들의 드라마는 시작과 끝을 반복하며 계속 이어져간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이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드라마들.. 사람마다 드라마에 대한 기억은 한시적이기도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기억하는 기간이 꽤 다양하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2017년 7월에 함께 부산에 갔던 기억이 나는지를 이야기했다. 근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서 “내가 언제~ 기억이 안 나! 진짜 내가 간 게 맞아?”라고 발뺌을 했는데 예전에 쌓인 네이버 클라우드를 뒤져보더니 기어코 그때 사진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분명 나는 왼손에 큰 수박덩이를, 오른손에는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차, 내가 이 친구들이랑 여행이라는 걸 갔었구나.’ 근데 어떤 드라마를 보더라도 전체 에피소드가 기억나지는 않는 법이다. 내가 기억하고 싶거나 또 임팩트가 있었던 장면들만 편파적으로 기억하기 나름이다. 물론, 기억에 남지 않는 에피소드들에겐 미안하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옛날 기억은 새로운 기억으로 갈음되기 마련이다. 각각의 장면들을 다 기억할 순 없겠지만 이제부터라도 명장면들만큼은 하나둘씩 모아 실물로 만들어 곁에 놓고 두고두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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