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에서 기자까지
축하합니다. 합격하셨습니다. 혹시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으세요?
그날 저녁, 내가 받은 전화의 일부다. 대학생에서 기자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얼떨떨했다. 복학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에 사회초년생으로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는 사실은 걱정을 넘어 두려움뿐이었다. 그래도 ‘합격’이라는 단어가 주는 쾌감은 짜릿했다. 바야흐로 N포시대에, 그 어려움을 넘어 취업한 것 아닌가?
사실 나의 꿈은 처음부터 기자가 아니었다. 철도청 기관사였던 할아버지를 동경해 기관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다 기관사가 아닌 역무원이 되고 싶어졌다. 사람이 좋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내 꿈이 바뀐 건 대학생 때였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사건 이후였다.
2016년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피해자 김 군은 나와 동갑이었다. 그때 나이 20살. 아직 꽃이 피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는 기자였다. 한 철도 신문사의 ‘시민기자’. 실상은 보도자료를 정리하는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했다. 일주일에 한두 편 정도 자체 생산 기사를 쓰고 나머지는 기관에서 배포되는 보도자료를 정리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때 구의역 사고 소식을 들었다. 관련 기사를 빠짐없이 챙겨보았다. 구조적인 문제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 또래 친구가 숨졌다는 사실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기자라는 ‘타이틀’은 붙어 있었기에 막무가내로 취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언론의 ‘언’자로 모르는 갓 대학생이 세상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서울시에서 사고 관련 기자회견이 있었지만, 그날 나는 제대로 된 기사 하나도 쓰지 못했고 질문조차 못 한 채 빈손으로 돌아왔다. 오히려 <KBS>, <연합뉴스> 같은 주류 언론사 소속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감탄만 했다.
결국 소득 없는 취재를 마치고 다시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게 됐다. 그래도 한 가지 얻었다.
‘꼭 기자가 되겠다’라는 다짐이었다.
시간은 흘러 2020년 10월, 코로나19와 재미없는 복학생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보도자료 정리 아르바이트하고 있었던 신문사에 더 이상 일을 안 하게 되면서 기자와 거리를 두게 됐었다. 회사의 경영 악화 때문이었다. 이 시점에 전공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떨어지기도 했다. 반복된 삶에 지친 나머지 매너리즘도 느끼면서 작은 의욕마저도 떨어지게 됐다. 늦은 중2병이 온 듯한 느낌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별 통보도 받았다. 5년간 만난 사람과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사실 장기간 연애 중에도 ‘어느 순간 끝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었지만, 이렇게 일찍 헤어질지는 생각도 못 했다. 내 감정이 한순간에 무너진 느낌이었다.
인간의 생존본능은 여기서도 발휘했다. 하루 이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끝까지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게 됐다. 잊기 위해 100% 아니 120%의 힘을 쏟아 일상을 버텼다. 그때 우연히 잡코리아에 들어가 눈에 띈 문장 하나를 보게 됐다.
“철도 전문기자 모집 공고”
마치 자석에 끌려간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무언가 좋은 선택지를 찾으면 이후의 그림까지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도 내가 철도 기자가 되면 어떤 일을 할지, 어떤 현장을 갈지 상상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망상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게 나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당당히 지원서를 접수했다.
사실 처음에는 예전처럼 아르바이트나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었다. 언론 관련 수업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일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아르바이트나 프리랜서는 취재보다는 글쓰기에 가까워 보여서 편했다. 그래서 면접 때 역제안을 해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회초년생이 당당하게 ‘프리랜서가 되고 싶다’고 자신 있게 외칠 리가 없었다. 그저 질문에 성실히 답할 뿐이었다. 오히려 ‘내가 무슨 논리로 답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내 인생 첫 구직 면접은 그만큼 살 떨리는 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두고 ‘말 잘한다’고 자주 칭찬했지만, 면접은 달랐다. 갑과 을의 관계, 간절함과 격식은 누구든 낮아지게 만드는 법이니까.
면접은 ‘서류평가-실무진면접-국장면접’ 순으로 진행됐었다. 그리고 국장면접을 본 당일 저녁.
나는 기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