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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타미 Dec 27. 2022

합격 통보

대학생에서 기자까지

축하합니다. 합격하셨습니다. 혹시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으세요?


그날 저녁, 내가 받은 전화 내용 중 일부다. 대학생에서 기자로 진화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얼떨떨했다. 복학한 지 1년도 안 될 무렵에 사회초년생으로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는 그 기분은 걱정을 넘어 두려움뿐이었다. 그래도 ‘합격’이라는 단어에서 주는 쾌감은 짜릿했다. 바야흐로 N포시대, 그 어려움을 넘어 재학생 신분에서 취업이 된 것 아닌가?


사실 나의 꿈은 처음부터 기자가 아니었다. 철도청 기관사였던 조부님을 동경해 기관사가 꿈이었다. 그러다가 기관사가 아닌 역무원이 되고 싶었다. 사람이 좋았기 때문이다.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서다.


나의 꿈이 바뀐 시점은 대학생 시절이었다. 세상을 떠들썩했었던 그 사건 이후다.


그 사고의 희생자는 나와 동갑이었다. 씁쓸하다. / 뉴시스


2016년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피해자 김 군은 나와 동갑이었다. 그때 나이 20살. 아직 꽃이 피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씁쓸할 뿐이었다.


당시 필자는 기자였다. 어느 철도 신문사의 ‘시민기자’. 하지만 실상은 보도자료 정리하는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했다. 일주일에 한두 편 정도 자체 생산 기사를 쓰고 나머지는 기관에서 배포되는 보도자료를 정리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때 구의역 사고 소식을 들었다. 관련 기사를 빠짐없이 챙겨보았다. 구조적인 문제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 또래 친구가 숨졌다는 사실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기자라는 ‘타이틀’은 붙어 있었기에 막무가내로 취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언론의 ‘언’자로 모르는 갓 성인 대학생이 세상을 크게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사고에 대한 기자회견이 있었는데 그날 필자는 제대로 된 기사 하나도 못 쓴 채, 질문도 못 하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오히려 <KBS>, <연합뉴스> 같은 주류 언론사 소속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감탄만 하고 있었다.


결국 소득 없는 취재만 마치고 다시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게 됐다. 그래도 한 가지 얻은 것이 있었다.


‘꼭 기자가 되겠다’라는 다짐하게 됐다.



시간은 흘러 2020년 10월, 코로나19와 재미없는 복학생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보도자료 정리 아르바이트하고 있었던 신문사에 더 이상 일을 안 하게 되면서 기자와 거리를 두게 됐었다. 그 회사의 경영 악화 때문이었다. 이 시점에서 전공에 대한 관심도가 현저히 떨어지기도 했다. 반복된 삶에 지친 나머지 매너리즘도 느끼면서 작은 의욕마저도 떨어지게 됐다. 늦은 중2병이 온 듯한 느낌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별 통보도 받았다. 5년간 만난 사람과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사실 장기간 연애 중에도 ‘어느 순간 끝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었지만, 이렇게 일찍 헤어질지는 생각도 못 했다. 내 감정이 한순간에 무너진 느낌이었다.


인간의 생존본능은 여기서도 발휘했다. 하루 이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끝까지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게 됐다. 잊기 위해 100% 아니 120% 쏟아내어 일상을 살아갔었다. 그때 우연히 잡코리아에 들어가 눈에 띈 문장 하나를 보게 됐다.


“철도 전문기자 모집 공고”


마치 자석에 끌려간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무언가 좋은 선택지를 찾으면 이후의 그림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도 내가 철도 기자가 되면 어떤 일을 할지, 어떤 현장을 갈지 상상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망상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렇게 나는 당당하게 지원서를 접수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사실 처음에는 과거처럼 아르바이트 혹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었다. 언론에 대한 수업을 들은 적이 없었으니 일에 대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르바이트나 프리랜서는 취재보다 글 쓰는 영역에 가까워 보였다. 실제로 그렇게 느끼곤 했었다. 그래서 면접 볼 때 역제안해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흔한 면접사진이라고 말하기엔 나는 너무 떨어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났다. / freepik


그렇지만 사회초년생이 당당하게 ‘프리랜서가 되고 싶다’ 자신 있게 외칠 리가. 그저 질문에 성실하게 답할 뿐이었다. 오히려 ‘내가 무슨 논리로 답변했는지’ 복기가 안 될 정도로 나의 인생 첫 구직면접은 그렇게 살 떨리는 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보고 ‘말 잘한다’라고 자주 칭찬했지만, 면접은 어쩔 수 없었다. 갑과 을의 관계, 간절함과 격식은 무릇 사람을 낮게 만들기 때문이다.


면접은 ‘서류평가-실무진면접-국장면접’ 순으로 진행됐었다. 그리고 국장면접을 본 당일 저녁.


나는 기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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