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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타미 Dec 27. 2022

첫 출근

광화문에서 일한다고 모두가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일했던 회사 앞 거리다. 우측은 대형로펌이 세운 유리벽 건물이 있지만 반대편에는 노후 건물이 즐비해있다. 업무지구에도 빈부격차는 존재했다. / 카카오 맵

서울에는 3대 업무지구가 있다. 증권의 여의도(YBD), 상업의 강남(GBD), 그리고 정치 행정의 광화문(CBD)이다. 정치에는 외부 감시자가 붙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 역할을 기자가 담당한다. 아무리 내부 감사기관 있다고 한들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외부 감시자는 꼭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광화문에는 다양한 언론사가 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뿐만 아니라 <연합뉴스>와 <서울신문>이 대표적인 광화문에 입주한 신문사다.


이 외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신문사 구색은 갖춘 언론사 대다수가 광화문 일대에 널리 포진돼 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내가 이번에 출근하게 된 회사다. 많은 사람이 광화문에 일한다고 하면 북한산과 세종대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넓은 사무실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있는 신문사는 무언가 다르다.


광화문역 1번 출구를 나와 정부서울청사로 가는 길. 한쪽에는 대형 법률사무소(이름만 들으면 바로 아는)가 세운 통유리벽 건물, 반대편에는 허름한 회색빛 구식 건물을 볼 수 있다. 내 출근지는 전자가 아닌 후자다. 준공 연도 1980년으로 기록된, 당장 내일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건물이었다.


을씨년스러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6층. 그래도 ‘여기 신문사예요!’라고 광고하는 듯 보이는 현판이 눈에 띈다. 반대쪽에는 ‘토론회 개최’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무려 3년 전에 개최한 것. 잉크로 뒤덮여있지만 세월의 흐름은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자랑이라도 하는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사무실에 들어갔다. 내 전신을 보이고도 남은 커다란 거울이 나를 사로잡았다. ‘기증 XX 협회’. 체리 몰딩으로 둘러싸인 거울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글씨다. 마치 우리 회사가 이렇게 높은 사람과 친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모양이다.


하얀색 페인트로 덮인 벽과 통일되지 않는 책상, 동양화인지 현대미술인지 구분이 안 되는 그림, 다른 회사에서 받아온 달력까지. 컴퓨터만 있을 뿐, 마치 1980년대 영화에서 나온 사무실 풍경과 흡사했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키보드 소리를 내고 있다. 이따금 들리는 전화 소리만이 적막함을 없앨 뿐이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출근하게 된 신입사원입니다”


당찬 목소리로 처음 본 사람에게 인사했다. 그는 회사의 2인자 ‘부국장’이었다. 체크무늬 셔츠에 어두운 가디건을 걸쳐 있는 그의 모습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가 내뿜지고 있었다. 대략 30년 이상되는 짬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그 사람은 “반가워요”라며 나에게 답했다. 그리고 함께 일하게 될 사수를 소개해주었다. 대략 나보다 10살 넘은 나이차를 보였다.(실제로는 14살이었다.)


무사히 마친 첫 출근길. 국장과의 면담을 마친 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누군가에게 내세우기 어렵지만, 신입 그리고 회사 규모를 고려하면 나쁜 편이 아니었다.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현장에 나가는 일이 많아서 ‘포괄임금제’가 적용됐다. 그때는 몰랐었다. 이 제도가 나의 발목을 잡았는지.


사무실에는 총 두 개 법인이 있다. 설립 10년 차 종합경제지와 막 창간한 전문지가 같은 공간에 있었다. 원래 종합경제지만 운영됐었지만, 국장과 사수의 강력한 의중으로 전문지를 창간한 것이다. 연예계로 비유하며 YG와 더블랙레이블의 관계로 볼 수 있다.


처음 배정된 자리에는 컴퓨터 한 대가 놓여있었다. 사무용으로 쓰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요즘 용산 등지에서 판매되는 사양은 아니었다. 모니터 받침대는 없었는지 두꺼운 책 두 권이 올라가 있었다. 급조된 자리인지 아니면 받침대를 살 생각이 없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첫날은 OJT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언론사마다 고유의 스타일북이 있어 기사를 쓸 때 양식에 맞춰야 하는데, 이곳도 스타일북이 존재는 한다. 하지만 숫자나 단위 표기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자마다 기사가 통일돼 있지 않았다.


내 첫 출근. 흔한 대한민국의 중소기업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첫 사회에 진출한다는 기대감과 내 이름이 달리 기사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설렘,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기쁨에 취해있었다.


하지만 몇 개월 안 돼서 기쁨이 후회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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