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

광화문에서 일한다고 모두가 행복하지 않았다.

by 박타미
내가 일했던 회사 앞 거리다. 우측은 대형로펌이 세운 유리벽 건물이 있지만 반대편에는 노후 건물이 즐비해있다. 업무지구에도 빈부격차는 존재했다. / 카카오 맵

서울에는 3대 업무지구가 있다. 증권의 여의도(YBD), 상업의 강남(GBD), 그리고 정치 행정의 광화문(CBD)이다. 정치에는 외부 감시자가 붙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 역할은 기자가 담당한다. 아무리 내부 감사기관이 있다 한들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속담처럼 외부 감시자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광화문에는 다양한 언론사가 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뿐만 아니라 <연합뉴스>와 <서울신문>이 대표적인 광화문에 소재한 신문사다.


이 외에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신문사’의 외형은 갖춘 언론사들이 광화문 일대에 널리 자리 잡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번에 내가 출근하게 된 회사다. 많은 사람은 ‘광화문에 있는 신문사’라고 하면 북한산과 세종대로가 한눈에 보이는 넓은 사무실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다니게 된 신문사는 조금 달랐다.


광화문역 1번 출구를 나와 정부서울청사로 가는 길. 한쪽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형 법률사무소가 세운 통유리 건물이 있고, 반대편에는 허름한 회색빛 구식 건물이 있다. 내 출근지는 전자가 아니라 후자였다. 1980년에 준공된, 당장 내일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건물이었다.


을씨년스러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6층. 그래도 ‘여기가 신문사입니다!’라고 외치듯 달린 현판이 눈에 띄었다. 맞은편 벽에는 ‘토론회 개최’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무려 3년 전에 열린 행사였다. 잉크로 덮여 있었지만 세월의 흔적은 숨길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자랑거리라도 되는 듯 아직까지 붙어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내 전신을 비추고도 남을 큰 거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기증 협회’. 체리 몰딩으로 둘러싸인 거울 아래, 희미한 글씨가 보였다. 마치 ‘우리 회사가 이렇게 높은 사람들과 친하다’고 과시하는 듯했다.


하얀 페인트로 덮인 벽, 통일되지 않은 책상, 동양화인지 현대미술인지 알 수 없는 그림, 다른 회사에서 가져온 달력까지. 컴퓨터만 빼면 마치 1980년대 영화 속 사무실 같았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따금 울리는 전화벨 소리만이 적막을 깼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출근하게 된 신입사원입니다”


당찬 목소리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사했다. 그는 회사의 2인자인 ‘부국장’이었다. 체크무늬 셔츠에 어두운 가디건을 걸친 그의 모습에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느껴졌다. 대략 30년 이상의 짬이 보였다. 다행히 그는 “반가워요”라며 나에게 답해주었다. 그리고 함께 일하게 될 사수를 소개해주었다. 대략 나보다 10살은 많아 보였다. (실제로는 14살 차이였다.)


무사히 마친 첫 출근길. 국장과의 면담을 끝낸 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누군가에게 내세우기엔 부족할지 몰라도, 신입이자 회사 규모를 고려하면 나쁘지 않았다.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현장 취재가 많아 ‘포괄임금제’가 적용됐다. 그때는 몰랐다. 이 제도가 훗날 내 발목을 잡게 될 줄은.


사무실에는 두 개 법인이 함께 있었다. 설립 10년 차 종합경제지와 막 창간된 전문지가 같은 공간을 썼다. 원래는 종합경제지 하나로 운영되었지만 국장과 사수의 강한 의지로 전문지를 새로 만든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연예계에서 YG와 더블랙레이블의 관계와 비슷했다.


처음 배정받은 자리에는 컴퓨터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사무용으로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요즘 용산 등지에서 판매되는 사양은 아니었다. 모니터 받침대가 없었는지 두꺼운 책 두 권이 대신 받침이 되어 있었다. 급조된 자리인지, 아니면 애초에 받침대를 살 생각이 없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첫날은 OJT로 하루를 보냈다. 언론사마다 고유의 스타일북이 있어 기사를 쓸 때는 양식을 지켜야 하는데, 이곳도 스타일북이 있긴 했다. 하지만 숫자나 단위 표기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자마다 기사의 형식이 제각각이었다.


내 첫 출근. 흔한 대한민국의 중소기업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첫 사회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내 이름이 달린 기사를 세상에 내보일 수 있다는 설렘,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기쁨은 몇 달 지나지 않아 후회로 덮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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