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망했다.
취재 : 작품이나 기사에 필요한 재료나 제재(題材)를 조사하여 얻음.
기자의 능력은 취재력에서 나온다. 근본적으로 이 직업은 무언가를 탐구해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나의 첫 취재는 입사 후 1주 차에 시작됐다.
메이저급 언론사는 초짜 기자에게 단독 취재를 맡기지 않는다. 아직 현장 감각이 없고,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습 기자의 취재에는 사수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상근 기자가 두 명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현장에 달려가야 했다.
첫 취재는 인천 영종도였다. 내가 맡은 분야는 철도였는데,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철도라니, 조금 어색하지 않은가? 사연은 이렇다. 공항철도는 영종도를 지나면 추가 운임이 붙는다. 이 ‘추가 운임’ 때문에 영종도 주민들은 같은 인천 시민이면서도 차별받는다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주민 입장에서는 분명 큰 부담이었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는 영종도 주민에게 공항철도 운임 지원 방안을 고심하게 됐다. 추가 운임을 없애면 운영사 손실이 크기 때문에 대안으로 주민 전용 할인카드를 발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은 ‘보편적 할인’을 주장하며 추가 운임 폐지를 요구했다. 애초에 영종도를 찾는 철도 이용객은 공항을 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단지나 레저시설을 이용하러 오는 사람도 많은데, 특정 주민만 할인해 주면 또 다른 차별이 된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은 공항철도를 단순히 공항 이용객을 나르는 철도로만 생각한다. 이름에 ‘공항’이라는 두 글자가 이미 이 노선의 성격을 규정해 버린 셈이다. 하지만 영종도 주민들도 공항철도를 매일 이용한다는 사실은 꽤 흥미로웠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몰랐던,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취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취재원’이다.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기사의 무게가 달라진다. 전문지를 표방하는 회사로서는 전문가나 정치인이 좋은 취재원이다.
하지만 나는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정책 수혜자 입장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말 궁금했다. 문제는 내 주변에 영종도 주민이 한 명도 없다는 것. 애초에 인천에 연고도 없으니 있을 리가 없었다.
방법은 단 하나, ‘지역 커뮤니티’를 찾는 것이었다.
무작정 지역 커뮤니티를 검색했다. 네이버에 수두룩하게 뜨는 ‘영종도 지역 카페’ 중에서 최적의 선택지를 골라야 했다.
가장 회원 수가 많은 카페에 가입했다. 그리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취재를 요청했다. 미끼는 던졌다. 이제 누군가 물면 된다. 10분 뒤, 내가 남긴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역 커뮤니티 대표였다. 내 취재 요청을 받아준 것이다. 곧바로 인터뷰 날짜가 잡혔다.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다.
사실 이 정도 이슈라면 전화 한 통으로도 충분히 기사 한 편은 나온다. 이미 지역지에서 다룬 적 있는 사안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깊게 파고들고 싶었다. ‘저 지역지보다 더 잘 쓰겠다’는 욕심도 생겼다. 앉아서 받아쓰는 기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
공항철도를 타고 영종도로 향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19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아 열차에 캐리어를 끌고 타는 사람은 없었다. 6량짜리 열차에 승객은 열 명 남짓. 전동차 모터 소리와 백색소음만이 차 안을 채웠다.
그 소리와 창밖으로 보이는 서해 풍경에 잠시 취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어떤 질문을 할지, 무슨 이야기를 들어야 할지 전혀 준비하지 않은 채, 첫 취재라는 설렘만 가득 안고 현장으로 간 것이다. 내 직업의 본질을 망각한 채.
취재원과 명함을 주고받을 때까지만 해도 이게 큰 문제가 될 줄 몰랐다. 하지만 잠시 뒤, 나는 내가 얼마나 준비가 안 됐는지 깨달았다.
현장에서는 취재원과 의미 없는 대화만 이어졌다. 주민 측 주장의 핵심이 뭔지 제대로 파악도 못 한 채 갈팡질팡했다. 취재원의 표정은 나를 이상한 방랑객이라도 보는 듯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다행히 취재원은 내가 초짜 기자라는 걸 눈치챘는지 자료 몇 장을 내주었다. 기사 쓰기에 유용한 자료였다. 그때는 그 종이 몇 장이 오아시스 같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뜻을 안다. ‘이 정도도 못 알아듣나? 다시 공부하고 오라’는 말이었다.
데스크로 돌아가는 길. 없는 지갑을 털어 버스 대신 택시를 타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너무 부끄러워서였다. 빨리 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지갑아 미안하다. 이게 소위 말하는 ‘X발 비용’이구나.
시간은 흘러 기사는 완성돼 무사히 보도됐다. CMS(콘텐츠 관리 시스템)로 얼마나 수정됐는지 확인해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바뀌어 있었다. 재창조 수준이었다. 그렇게 내 첫 취재는 한마디로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