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의 무게

때로는 무모해질 때가 필요했다.

by 박타미
Screenshot 2025-07-07 at 20.55.43.JPG 나름 기자 생활하면서 가장 잘나온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기자가 독자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전통적으로 펜을 쥐는 기자가 있는가 하면, 마이크와 카메라로 전달하는 방송기자도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 한발 더 나아가 렌즈로 세상을 담는 기자도 있다. 바로 ‘사진기자’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학교 다닐 때도 교내 기자단에서 사진을 담당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나의 모교 재단은 불교였다. 불상과 연등은 알록달록한 색감을 뽐냈다. 회색빛 남자 고등학교에 한 줄기 빛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나는 사진기자를 자처했다. 다행히 회사에도 장비가 나름 갖춰져 있었다. DSLR과 렌즈, 기타 부속품 등등. 다만 실제 사진기자들이 사용하는 장비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다. 이름난 사진기자들은 ‘전문가용’ 장비로 종횡무진하지만, 우리 회사의 장비는 ‘엔트리급’이었다.


그래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땅한 기삿거리가 없을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다녔다. 기자회견이나 행사를 주로 찍었는데, 그중에서도 집회나 시위 현장을 찍을 때 가장 심장이 뛰었다. 앰프에서 울려 퍼지는 투쟁의 외침은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사람들이 결의에 찬 주먹을 높이 들면, 그 모습을 더 생생하게 담아내고 싶었다.


그렇다고 모든 시위 현장에서 가슴이 뛰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기도 했다. 예컨대 장애인연대의 지하철 시위가 그랬다. 열차 운행을 막는 사람들과 이를 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앰프에서는 외침을 넘어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 현장을 찍는 순간에도 언제든 몸싸움에 휘말릴 수 있었다. 방심하는 순간, 나는 데스크가 아니라 병원으로 실려갈 수도 있겠다는 긴장감이 늘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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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열차 탈선 사고 현장에 급파된 적이 있었다. 사고 현장이 차량으로 접근하기 좋아서 비교적 편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과 열차가 탈선한 지점 사이는 거리가 있었다. 가까이에서 찍으려면 수십 개의 선로를 건너야 했다. 선로를 잘못 건너다가는 수백 톤짜리 열차에 치일 수도 있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렌즈의 줌을 당기는 수밖에 없었다. 나름 철도 기자라 선로를 건너는 건 내게 이율배반적인 행동이었다.


사진을 찍고 현장을 유심히 관찰하던 중, 또 다른 기자가 나타났다. 유명 통신사 차량을 타고 온 그는 쏜살같이 달려들어 선로 수십 개를 건너고, 안전 라인을 뚫고 열차 코앞까지 다가갔다. 평소와 같은 걸음으로 선로를 건너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는 무모해 보일 뿐이었다.


멀리서도 눈이 부실 정도로 플래시를 터뜨린 그는 열차 이곳저곳을 촬영했다. 옆에는 무언가를 관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고 조사를 나온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같은 소속인 줄 알고 그를 크게 제지하지 않았다. 아군인 줄 알았던 그가 사실은 ‘적군’이었음을 깨닫고 나서야 그 기자는 쫓겨났다. 그리고 다시 차에 올라 현장을 빠져나갔다.


“에휴, 뭐 저렇게까지 해서 찍나…” 혀를 차며 나는 안전한 구역에서 사진을 찍었다. 밤이 깊어 자정이 돼서야 현장을 철수했다. 그리고 다른 신문사들이 어떻게 보도했는지 찾아봤다. 놀랍게도 대다수 신문사의 메인 사진은 아까 그 쫓겨난 기자의 사진이었다. 심지어 다음 날 주요 일간지 지면에도 그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가 찍은 사진에는 현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탈선해 선로를 벗어난 바퀴, 중심을 잃은 열차, 사고를 살피는 현장 직원들의 모습이 생생했다. 반면 내가 찍은 사진은 설명이 없다면 그저 흔한 기차 사진에 불과했다.


이날 이야기를 선배에게 털어놓자 진심 어린 조언이 돌아왔다.


“현장에서 법 다 지키면서 취재하면 이야기거리 안 나와. 때로는 무모하게라도 접근해야 돼.”


나름 철도 기자라고 철도법 울타리 안에서 팔짱만 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순간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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