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2019)
나도 한잔 줘봐요. 아, 줘봐요 좀.
군산 시내의 중식당 장풍반점.
1층은 중식당이고 2층은 직원숙소인 이곳에서 보람찬 하루 일과를 마친 직원들이 늦은 저녁을 먹으려 하는데요, 신입 배달원으로 갓 들어온 열여덟 살 택일이(박정민)가 자기에게도 맥주 한 잔 달라고 생떼를 부립니다.
택일이는 엄마랑 대판 싸우고 무작정 가출한 후 아무 연고도 없는 군산으로 내려왔다가 배달직원에게 숙식제공한다는 장품반점의 구인광고를 보고 냉큼 취직을 해버렸는데요, 입사 첫날부터 범상치 않은 카리스마를 가진 주방장 거석(마동석)에게 대들었다가 불꽃 싸다구 한 방을 처맞고 기절하는 '참교육'을 당했었면서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입니다.
맥주 실랑이에 이어 서로의 헤어스타일 문제로 티격태격하던 거석과 택일이. 그런데 공교롭게도 엄마 얘기가 나오자 택일이는 또 발끈해서 거석에게 대듭니다. 낮에는 방심하다 당했을 뿐이고 두 번은 안 당할 거라고 마치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처럼 대드는 택일이. 그러자 거석이도 어깨를 풀면서 아침에 개긴 거까지 포함해 '6시간짜리 기절 코스'로 다시 한번 참 교육을 시켜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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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석이가 좋아하는 '트와이스' 음악방송 보면서 그냥 맛있게 저녁이나 먹을 것이지, 입사 첫날부터 두 번이나 기절할 정도로 처맞은 택일이는 과연 장풍반점의 배달직원으로 계속 일할 수 있을까요?
영화 <시동>(감독 최정열)은 철없는 반항아가 정체불명의 카리스마 주방장을 만나 진짜 세상을 맛보는 유쾌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영화 속에는 '하고 싶은 일'이라는 말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요 그 이외에 또 하나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채업자 사무실에서 일하는 선배 동화(윤경호)와 함께 채무자로부터 수금을 하던 상필이(정해인)가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해 입원까지 하게 되자 택일이가 진심으로 충고를 할 때 하는 말입니다.
"너한테 어울리는 일을 해."
상필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요, 할머니를 더 잘 모시기 위해선 돈을 많이 벌어야겠단 생각에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게 됐던 것입니다. 상필을 사채업자 사무실에 소개해준 선배 동화(윤경호)도 상필의 인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좋아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니었지만,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 어울리는 일이 될 거란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을 뿐이었죠.
거석의 조직 후계자인 태성(박해준)도 거석을 찾아와 비슷한 말을 하죠. '팔자대로' 살라고, '어울리는 일을 히하라'고 말이죠. 팔자대로 살라는 말 역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의 '의지'라는 것을 무시한 채 살라는 말입니다.
하기 싫은 일은 절대 안 하는 '심지' 굳은 반항아 택일이를 여러 차례 참 교육시켰던 거석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어떻게든 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몸소 보여줍니다. 서울에 잠시 올라와 과거의 인연을 모두 청산한 거석은 상처를 치료하러 병원에 갈 생각은 않고 어느 중국집 주방으로 무작정 들어갑니다. 주방장에게 웍을 빌린 거석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손수 짜장면 두 그릇을 만들어 한 그릇은 태성에게 주고 나머지 한 그릇은 자신이 먹으면서 태성에게 자신의 굳은 의지를 보여줍니다. 눈 앞에 놓인 이 짜장면은 형이 만든 것이며, 형은 이제 이런 '짜장면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이죠.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평생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지를 이보다 더 진심으로 보여주는 방법이 또 있을까요?
이제 막 인생의 출발선에 서있는 이 땅의 청춘들에게 영화 <시동>은 말합니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택일이처럼 씩씩하게 인생의 시동을 걸고 일단 한번 출발을 해보라고 말이죠.
가다가 혹시 넘어지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섰더라도, 범죄조직 보스보단 짜장면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인생의 시동을 다시 걸었던 거석이처럼, 우리의 인생도 진정으로 가고 싶은 세상을 향해 언제든 다시 새롭게 시동을 걸고 희망차게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