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영목 Apr 04. 2019

한국디자인의 과제와 발전방향

Will be에서 Should be로

한국의 디자인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나 아직 세계 초일류의 평가를 받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한국의 디자인은 산업의 발전에 따라 상품의 부가가치 향상,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발전하여 왔기에 항시 시장이나 소비자를 중심으로 디자인하여왔다. 그러나 세계적인 기업이나 디자이너들은 인간의 삶 속에 내재된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자신들만의 견해를 제시하여 왔기에 정체성과 독창성이 확보되며 사람들에게 공감받을 수 있는 가치를 제시하여 왔다. 

이제 한국의 디자인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하여는 이제까지의 어떻게 될 것인가?(will be)에서 각 기업의 특징을 내성하고 인간의 삶에 어떻게 향상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을 통하여 새로운 견해를 주장하는(should be) 태도를 가져야만 할 것이다.


한국의 디자인은 세계 최고의 디자인인가?     

한국의 산업디자인은 60년대 경제개발과 더불어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왔다. 

초창기에는 외국제품의 디자인을 그대로 모방하는 수준이거나 좀 괜찮다고 하는 디자인은 외국의 저명한 디자이너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1년에 3만여 명의 디자이너들이 양성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대기업인 S사에는 2,000여 명에 달하는 디자이너들이 근무하고 있고, 한국기업이나 한국 디자이너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저명한 IF, RedDot 등의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는 일이 흔한 일이 되었다. 세계의 소비자들은 한국 제품 디자인의 우수성을 인정하여 구매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기업들과 대등한 경쟁을 하고 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러나 아직 한국의 디자인은 세계 초일류의 대접을 받고 있지는 못하다. “새롭기는 한데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디자인”, “딱히 이상하진 않은데 그렇다고 매력이 있지도 않은 디자인”같은 평가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이는 아직 독창성, 정체성 등이 부족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평가가 단순히 아직 한국의 디자인이 발전 중이며, 이제까지처럼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세계 초일류의 디자인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면 다행이나, 현실은 이제 발전의 한계에 부딪혔다고 보는 것이 맞다.     


왜 한국의 디자인은 한계에 다다른 것일까? 이는 한국 디자인의 성장과 발전의 배경에 기인한다. 한국의 디자인은 60년대에 경제개발계획의 시작과 동시에 ‘수출경쟁력 강화’, ‘제품의 부가가치 상승’이라는 목표가 있었고, 이는 곧 국제시장에서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외국 선진기업들의 디자인을 이기거나 따라잡는 것 혹은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보다 매력적으로 보이기 등의 디자인의 목표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다. 즉 시작부터 지금까지 한국 디자인의 암묵적인 목표는 바로 “선진국 디자인 따라잡기”, “일류브랜드 이기기”였다.      


이러한 태도는 앞선 선두주자들과의 간격을 좁히는데 에는 매우 유용하게 작용하였으나 선두주자들과의 간격이 좁아져 같은 그룹으로 인정받게 되는 시점에서는 오히려 치명적인 단점이 되고 있다. 

항시 우리보다 앞선 디자인을 벤치마킹하고 그들과 큰 흐름을 같이하되 부분적 차별화하는 것이 기본적인 한국 디자인의 전략이었기에 선두와의 간격이 좁혀져 따라 하다가는 소위 정체성 없는 디자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즉 소비자들은 왜 우리가 한국기업의 디자인을 수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즉 “당신들은 누구입니까?”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아직 이 질문에 답하고 있지 못한 안타까움은 그저 단순히 자존심의 문제로만 여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으면 한국의 디자인은 더 이상 진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전 세계적으로 디자인계는 과거 어느 때 보다 다양한 이슈를 가지고 있다. ITC와 관련해서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user experience design)이나 인터랙티브 미디어 디자인(interactive media design), 환경과 관련해서는 서스테이너블 디자인(sustainable design), 문화와 관련하여서는 해당 지역의 문화에 기반 한 디자인을 하자는 버네큘러 디자인(vernacular design), 그 외에도 서비스디자인 등등 새로운 디자인 이슈가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발 디자인 이슈는 없다. 디자인 이슈가 다양하다는 의미는 새로운 가능성이나 문제가 등장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한국 발 디자인 이슈가 없다는 것은 한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거나 새로운 문제의 발견과 대안의 제시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사실 더 안타까운 것은 현재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디자인이 소개되고 도입된 이래로 세계인이 공감할 만한 한국 발 디자인 이슈가 없었다. 이것도 한국의 디자인이 세계의 디자인 무대에 아직 당당히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디자인 기업들은 어떠한가?

그렇다면 세계 초일류 디자인 기업 혹은 디자이너들은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몇 가지의 에피소드로 그들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에피소드 1. 새로움의 수준이 우리와 다르다.

80년 중반 종합가전회사의 디자인실에 근무하던 직장생활 초기의 일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가전메이커들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던 때였고,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독창성이나 정체성 등은 아예 생각지도 않고 일본이나 유럽의 디자인을 무조건 모방하던 시기였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우리는 외국 선진 기업의 디자인들을 보고 따라 하고 있는데, 그 회사의 디자이너들은 뭘 보고 디자인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거다 싶었다. 그 디자이너들이 보고하는 것을 우리도 알 수만 있다면 우리의 디자인도 훨씬 앞서 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였다.  


그 이후에 일본에서 유학을 하는 기회가 주어져 생활하던 중, 학회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학회 참가자들의 저녁 친목 모임에 우연히 옆자리에 일본 기업의 디자이너가 앉아 드디어 그간 궁금해하던 것을 물어볼 기회가 생겼다. 몇 마디 인사성 대화를 건넨 후에 그 일본 디자이너에게 ‘솔직히 우리는 당신들의 디자인을 보고 디자인한다.’ ‘당신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디자인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일본 디자이너는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속으로 ‘오호 핵심을 찔렀나? 답해주기 어렵겠지’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일본 디자이너는 한동안 생각하더니 ‘우리는 무언가를 보고 디자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있는 것들이 아닌 전혀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하고 디자인합니다.’라고 답하는 것이다.      


다른 에피소드도 있다. 유학 당시 수업시간에 지도교수가 디자인 과제를 시켜 나름 열심히 스케치를 해서 제출하지만 번번이 퇴짜만 맞을 때였다. 일본 학생이 손으로 대충 끄적거린 것 같은 그림을 교수에게 내밀었는데 교수는 좋다며 진행하라고 하였다. 나는 이건 인종차별이다라고 생각하여 교수에게 나의 디자인에 무슨 문제가 있냐고 따지듯 물었는데, 그때 지도교수는 “어디선가 본 것 같다.”라고 하였다.      


위의 2가지 경험은 당시의 나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아니 무언가를 보고 디자인을 하지 않으면 무엇을 보고 디자인을 한다는 이야기인가? 그리고 이제까지 보지 못한 디자인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보면 그들은 실제로 이제까지 본 적도 없는 디자인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놀라게 했다. 또한 세계에서 제일 앞선 자동차 디자이너는 참고할 자동차가 있을 리 없으며, 세계 최고의 조명 디자이너도 참고할 조명이 있을 리 없을 것이다.      


에피소드 2. 어디에도 없는 선진 디자인

역시 기업에서 디자인 실무를 하던 당시의 일이다. 내수가 중심이었다가 수출을 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미국, 영국, 독일, 이태리 등 지역에 따라 해당 국가에서 소위 잘 나가는 디자인 오피스에 디자인을 의뢰는 하는 경우가 늘어갔다.     


이태리의 자동차 디자이너로 유명한 디자이너인 쥬지아로(Giorgetto Giugiaro)가 운영하는 디자인 회사에 소형 오디오 디자인을 부탁했을 때의 일이다. 담당 디자이너가 최종 디자인 목업(모형)을 가지고 와서 개발, 해외영업, 디자인 등 관계자들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였다. 그는 우선 자신이 디자인 한 모형 위에 큰 천을 씌워 놓았다가 “이 오디오의 콘셉트는 U자 모양의 소리굽쇠를 치면 소리가 사방으로 번져나가는 이미지로 디자인한 것입니다.”라면서 의기양양하게 천을 벗겨 모형을 보여주었다. 단 1분, 그의 설명은 개발 배경도 없고, 경쟁사 분석도 없고, 디자인 트렌드에 대한 보고도 없이 그저 자신이 주고 싶었던 느낌만을 설명하고 끝이었다. 이러한 프레젠테이션에 익숙지 않았던 관계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담당 디자이너는 소리가 아름답게 번져가는 느낌이 나지 않냐며 당황해했었다     


일본 디자인 회사의 경우, 프레젠테이션은 보통 매우 정중하고 장황한 인사로 시작된다. 그리고 일본의 경쟁사 제품의 디자인 트렌드, 예상 소비자의 기호, 유사제품군의 디자인 동향 등 매우 치밀하고 분석적인 조사 내용과 자신들에 세운 치밀한 전략을 오랜 시간을 들여 보고 한 이후에 그림 설명을 들어가곤 했었다.     

미국의 디자이너들과 같이 일을 하던 경우였다. 일주일간의 일정으로 한국에 와서 같이 작업을 하던 디자이너들이 3일째인가 모두 짐을 싸들고 나와 귀국하겠다고 하였었다. 이유인즉, 우리 회사가 중도금을 약속 날짜에 지급하지 않아 경리담당자가 일을 그만두고 귀국하라고 하였기에 자신들은 귀국하겠다고 하여 진땀 뺐던 기억이 있다.


또한 미국 디자이너에게 당신들이 그린 그림 중에서 어떤 것이 미국에서 잘 팔릴 것 같습니까?라고 질문하자. 우리는 디자이너지 소비자가 아닙니다. 만일 궁금하면 마케팅 리서치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1주당 50명씩 10개 주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기간 4개월에 비용 10만 불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진행할까요?라고 되물어 곤란한 적도 있었다.     


영국의 시무어 포엘(Seymourpowell)이라는 저명한 에이전시의 공동설립자이자 디자이너인 딕 포엘(Dick Powell)의 경우에는 디자이너는 자신이 디자인한 텔레비전을 프레젠테이션 하는 중 엔지니어가 내부의 공간이 적어 회로기판이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고 하자 회로기판 실물을 보자고 한 뒤, 그 기판 위에 선을 그리며 이렇게 기판을 두 장으로 분리하면 들어갈 것이라고 하였다. 또 다른 엔지니어가 전면부와 후면부의 결합이 안 된다고 하자 그 자리에서 화이트보드에 결합 부위의 상세도를 알기 쉽게 그리기도 하였다. 설명 이후 참가했던 관계자들은 디자이너가 엔지니어링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것에 대하여 놀라 혹은 그의 소위 포스에 눌려 거의 저항 없이 그의 디자인을 수용했던 일도 있었다. 그만큼 디자인의 기반 지식이 튼튼함을 보여 주었다.     


일본, 이태리,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디자이너들을 만나며 느낀 점은 일본 디자이너 같은 이태리 디자이너 없고, 미국 디자이너 같은 영국 디자이너 없다는 것이었다. 이태리 디자이너는 이태리에서 자라 이태리에서 공부하고 이태리에서 살며 디자인을 하고 있었고, 미국 디자이너 역시 미국에서 태어나 공부하고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 영국, 이태리, 미국 등지에 가서 그들의 디자인을 배우며 소위 ‘선진 디자인’을 배우려 노력해 왔다. 앞의 경험에서 중요하게 깨달은 것은 어디에도 ‘선진 디자인’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태리, 일본, 미국, 영국 등의 우리보다 앞서있다고 생각하는 국가의 디자인을 하나로 통합하여 ‘선진 디자인’이라는 허구를 만들어 놓고 무조건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그리고 결과를 수용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선진 디자인’이라는 존재는 없었으며, 그저 각 문화권의 특성에 따라 다른 디자인이 있었을 뿐이다. 


그들의 디자인이 우수한 것은 각 문화권 혹은 생활권에서 발생한 문제를 그들의 사고방식과 습성, 태도 등으로 해결하려고 오랜 기간 노력한 흔적이 이태리 디자인, 독일 디자인, 미국 디자인, 일본 디자인 등의 형식으로 안정화되었을 뿐이다.     


에피소드 3. 그들의 미래는 의지가 열더라.

디자이너는 항상 미래가 궁금하다. 어떻게 하면 미래를 예측하여 새로운 디자인을 제시할 수 있을까가 아마 모든 디자이너들의 궁금증일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을 직접 만나거나 혹은 국제심포지엄이나 초청 강연 등에서 항상 같은 궁금증에 대한 답을 구하려 애썼다. 그래서 세계적인 디자인 선구자들을 만나면 항상 같은 질문을 20여 년 가까이 지속했었다. “미래에는 어떤 트렌드가 유행할까요?”, “미래에는 어떤 디자인이 나올까요?”라는 질문이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새로운 디자인을 제시하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당사자들이며, 세계의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그들의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틀림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들의 대답에 매우 흥분하곤 했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강연회에서 혹은 직접 마주 대하고 그들이 해주는 답이 마치 미래를 여는 열쇠를 받은 것 같아 흥분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들은 답은 ‘미래에는 환경이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미래에는 감성이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미래에는 인간의 삶 그 자체가 중요한 디자인의 대상이 될 것이다’ 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이 반복될수록 뭔가 석연치 않음이 점점 쌓여갔다. 어떤 디자이너는 태도에서부터 형식적으로 답하고 있는 인상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내가 미래를 어떻게 아느냐는 디자이너도 있었다.

그렇게 20여 년 가까이 같은 질문을 해가며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나 그들의 말로부터는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어떤 구체적인 아이디어나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은 심지어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그렇게 알쏭달쏭한 질문과 답을 듣기를 지속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어느 순간 질문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미래는 어떻게 됩니까?”에서 “미래는 어때야 합니까?”하고. 그랬더니 이제까지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던 디자이너들이나 애매하고 추상적인 답을 하던 디자이너들이 진지한 자세로 열정적으로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이었다. 미래는 이런 디자인이 있어야 한다고. 미래는 디자인이 이래야 한다고. 

그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그들이 열어온 미래는 예측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의지에 의하여 열려왔다는 것이었다.      


위의 에피소드들은 세계적 수준의 선도적인 디자인은 첫째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새로움을 지향하며, 둘째 각자의 문화권이나 상황에 맞는 최적의 디자인 수행체계를 발전시켜왔으며, 셋째 자신만의 견해를 관철시키려 꾸준히 노력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3가지의 선구자들의 특성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의 ‘의지(should be)’라 할 수 있다. 그 의지는 단순히 고집이나 아집이 아니다. 인간의 삶 속에 내재된 이제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그에 대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을 생각하고, 그 생각을 반영할 수 있는 디자인을 제시하기에 그 속에 새로움과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내재되기 때문이다.                


Should be의 사례

디자인 분야에서 이 should be의 사례를 좀 더 살펴보기로 한다.     


세계 3대 디자이너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카림 라시드(Karim Rashid)라는 디자이너가 있다.

그의 디자인은 매우 화려하며 낭만적이고 동시에 철저히 기능적이다. 그야말로 디자인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인 심미성과 실용성의 균형이 잘 잡혀있는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아름다우나 비싼 것, 매우 기능적이나 비싼 것, 특정 소수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디자인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아름다우면서도 기능적이고, 실용적이며 대량 생산하기 용이하여 가격도 합리적인 디자인이야 말로 좋은 디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단순히 말로만 포장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해결방법으로 높은 문화적 가치로서의 예술성과 대중에게 합리적인 가격과 실용성을 위한 기술의 결합을 모색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매우 첨단적으로 한편으로는 매우 낭만적으로 보이는 독특한 결합을 보인다. 그는 디자인은 민주주의이어야 한다고(Designocracy) 주장한다.                                                                           


그림 1. 카림 라시드(Karim Rashid)의 작품들(좌로부터 샴페인병 및 패키지, 조명, 와인병)

그림출처 : 좌측부터

https://www.engadget.com/

http://design-milk.com/

http://www.notey.com/


애플의 디자인은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흔히들 애플의 디자인 철학이 “less is better”라고 이해하고 있다. 조너선 아이브는 정보기기는 자신들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지식과 기술을 동원해 가장 단순하고 심플한 형태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마치 아무런 색이나 패턴이 들어 있지 않은 깨끗한 빈 접시가 요리를 가장 돋보이게 하듯이 제품이 요란한 형태로 자기를 주장해서는 안 되고 사용자의 경험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림 2. 루이니 꼴라니(Luigi Colani)의 작품들

그림출처 : 좌측부터

https://io9.gizmodo.com/

http://www.design-is-fine.org

http://www.oddee.com/


80년대에 전 세계를 풍미했던 루이니 꼴라니(Luigi Colani)의 디자인은 당시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매우 새롭고 혁신적이어서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이후 생태학적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지구 상에 직선은 없다.”라고 하여, 그가 디자인하는 자동차, 카메라, 비행기 등 모든 대상에 일체의 직선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직선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며, 심지어 자유 낙하하는 사물도 지구가 자전하기에 원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가 디자인한 수백 미터 길이의 유조선의 바닥의 중심은 몇 센티가 높아 매우 큰 호를 그리고 있는데, 그는 이것이 지구의 원주와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결과적으로 그 당시의 디자이너들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조형을 제시하였다.     


그림 3. 알랙산드로 멘디니와 에또르소사스의  작품들

그림출처 : 좌로부터

알랙산드로멘디니의 작품 . 와인오프너(안나)  http://deco.journaldesfemmes.com/design/

알랙산드로멘디니의 작품. Groninger Museum

에또르소사스의 작품 . 책꽃이 http://www.maxxi.art/en/


소위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선두주자로 알려진 이태리 디자이너 알랙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와 에또르소사스(Ettore Sottass)는 60년대 말부터 모더니즘 디자인이 기능적이며 합리적인 것은 좋으나, 경직되고 획일적이어서 인간이 생활하는 환경에 맞지 않는 다고 생각하였다. 알랙산드로 멘디니는 “좋은 디자인이란 시와 같고 감성을 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며, 미소와 로맨스를 건네주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디자인 중 와인 오프너는 마치 만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같기도 하고, 책을 꽂아달라고 팔을 벌리고 있는 책꽂이가 있는가 하면, 동화의 나라로 인도하는 것 같은 건물도 있다.         


이와 같은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새롭고 창의적인 그리고 정체성이 있는 디자인은 ‘should be(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을 위한 자신만의 새로운 견해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으며,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며, 동시에 새로움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게 된다.       

반면에 항시 will be(어떻게 될까?)로 움직이는 디자이너는 다른 디자이너가 만든 예시가 없으면 자신의 생각을 가질 수 없기에 정체성, 독창성에서 뒤질 수밖에 없고 새로운 문제를 제시할 수 없기에 공감도 얻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의식하였던 의식하지 못했든 간에 벤치마킹, 경쟁사 분석, 트렌드 예측, 포지셔닝 등을 디자인의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여 왔다. 이 모든 것이 앞서간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는 기법들이다. 과연 모더니즘 디자인을 연 디터 람스(Dieter Rams), 세계의 자동차 디자인을 리딩 하는 벤츠나 BMW, 애플의 디자인이 트렌드 예측, 경쟁사 분석, 소비자 기호 조사, 포지셔닝 등의 방법으로 디자인의 혁신을 이끌어왔을까?           


should be의 힘

세계적인 초일류 혹은 선도하는 디자인 기업 혹은 디자이너들은 확고부동한 디자인에 대한 의지, 신념 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이 'should be'는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을까? 자기 정체성이 강하며 신념이 있는 것이 멋있어 보이기는 하나 단순히 멋져 보이기 위한 방편은 아닐 것이다. 에르메스(HERMES) 브랜드를 통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에르메스는 명품 중의 명품이라는 명성을 가진 브랜드이다. 모나코의 왕비였던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가 들어 유명해진 켈리백이나 배우이자 가수인 제인 버킨(Jane Birkin)의 이름 딴 버킨백은 가격이 소재나 색상에 따라 1,300만 원에서 1억 8천만 원까지 한다. 심지어 2017년 홍콩의 경매에서 백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버킨백이 4억 2220만 원에 낙찰된 경우도 있다.

핸드백 하나의 가격으로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다. 그러나 전 세계 수많은 여성들의 로망이며 돈이 있어도 아무에게 팔지 않거나 몇 년씩 기다려야 하기에 사기가 힘들어 중고가 신품보다 비싸지는 경우도 있다. 과연 에르메스는 어떻게 핸드백 하나를 수천만 원 심지어 수억 원에 팔 수 있게 되었을까? 그리고 여성들은 에르메스의 어떤 가치에 돈을 지불하는 것일까? 


에르메스는 1837년에 창립하여 6대째 내려오는 프랑스의 가족경영 럭셔리 브랜드이다. 에르메스는 처음에는 말의 안장과 마구를 만들던 회사로 왕족과 귀족 사이에서 인지도를 얻어 시작하였다고 한다. 다른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들이 이제는 대량생산 방식으로 전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에르메스는 철저히 장인 생산 방식을 고수하며 최상의 품질을 추구한다. 에르메스에 사용되는 악어가죽은 전용 계약농장에서 싸움 등에 의하여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저히 분리 사육된 악어들을 사용하며 심지어 가죽의 품질이 좋지 않을 때는 생산을 중단한다고 한다. 또한 하나의 핸드백을 1명의 장인이 처음부터 완제품까지 만들며 모든 제품에는 장인, 공방, 시기를 표시하는 고유번호가 새겨져 제품이 손상되었을 경우, 그 제품을 만들었던 장인에게 맡겨져 처음과 똑같은 상태로 복구된다고 한다. 1명의 장인이 1개월에 10개 정도를 만들기에 에르메스의 가방을 원하는 소비자는 수년씩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악셀 뒤마 CEO는 한 인터뷰에서 “에르메스는 럭셔리 브랜드가 아니다. 창조적인 장인(匠人)”이라 이야기했듯이 상품이 아닌 장인에 의한 작품으로서 생산되고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영남일보 2016.4.1.) 한편으로 에르메스는 각종 문화, 예술 등에 막대한 지원과 행사를 주관하고 있어 단순히 상업적 기업이 아님을 표방하고 있다.       

물론 에르메스가 일반적인 기업의 행태는 아닌 매우 독특한 경우이다. 

그러나 그 사례에서 다음의 내용은 일반화된 원리로 확인할 수 있다.      


효과 1. 정체성이 생긴다

명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만의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다면 당연히 그 결과로 정체성은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디자인 정체성은 왜 필요할까? 세계적인 초우량기업들이 저마다 명확한 디자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성공의 필요조건인 것처럼 인식되어있으나, 실은 정체성은 기업의 생존을 위한 필요 불가결한 요소이다. 


예를 들어, 여기에 'Apple', 'Applle', '청풍'이라는 3가지 브랜드의 스마트폰이 있다고 가정하자. 

'Apple'은 누구나 다 아는 제품이며, 'Applle'은 소위 애플의 짝퉁이다. 그리고 '청풍'은 인지도가 낮은 기업의 제품이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성능도 좋은 가성비가 좋은 제품인데 무엇보다 튼튼하여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 많은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Apple의 제품을 선호할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는 Applle가 팔리던 시절도 있었다.(과거에는 adidos, nice, rebook 등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무도 Applle을 사려고 하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차라리 청풍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최근의 소비자들의 선택이다. 이는 정체성이 초일류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당신은 누구이며, 어떤 물건을 만드는 곳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기에 정체성은 선택이 아닌 필요 불가결한 요인이 되었다.


기업 디자인의 정체성이 생기면 그 기업은 자신의 디자인이 어때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특성에 맞는 디자인을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튼튼함을 우선으로 하는 경우와 선도적 기술력을 우선으로 하는 경우, 낭만적인 감성을 우선으로 하는 경우 모두 선택해야 하는 디자인이 다르며 기업 디자인의 정체성이 확고하면 디자인의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여 우왕좌왕하는 시간을 줄여 수준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정체성은 ‘나는 누구이다’라는 상징성 확보와 효율 증대라는 장점을 가져다준다.     


효과 2. 형식이 달라지고 의미가 감겨 결과적으로 가치가 생성된다

should be가 가져다주는 다른 장점은 기업의 가치를 높여준다. 

디자인은 사물을 보다 아름답고 사용하기 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물의 ‘형식(유형: 외양, 기능 등)’과 ‘의미(무형 : 스토리 등)’에 담긴다. 예를 들어, 어떤 연인 사이에 남자가 여자에게 고가의 반지를 선물한다면 여자는 이 남자가 자신을 많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형식(고가)’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가 자신의 여자에게 낡은 구리반지를 선물하며 ‘이 반지는 증조부가 만주로 독립운동을 떠나며 증조모에게 정표로 남긴 반지이며 증조모를 이 반지를 평생 간직하시다가 우리 집의 며느리에게 전해지는 반지야. 이제 이것을 당신에게 줄게’라고 한다면, 이 경우도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의미(반지에 담긴 의미, 스토리)’가 강한 경우이다. 


이와 같이 사물은 의미와 형식이 합하여 ‘가치’를 가지게 된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디자인은 형식이 안정적인 수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벤츠, 애플, 에르메스나 샤넬 같은 브랜드와 디자인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디자인에 ‘의미’를 담을 시간의 부족이거나 의미 그 자체의 부재에 있다.

한국 디자인의 근간인 ‘당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게요’라는 식의 상업 지향적인 디자인은 자신의 이야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 최근 스토링텔링 디자인이라고 하여 디자인에 이야기, 의미 등이 중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한국의 기업들도 이야기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하여 오랜 시간 노력한 흔적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에르메스의 경우와 같이 그들이 최고의 물건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해온 역사와 행위들 그리고 자신들의 결과의 품격을 지키기 위한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 자신들의 결과를 구입하는 소비자에 대한 예의와 존중 등의 단순한 결과(형식) 이외의 행위와 흔적이 시간에 누적되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알고도 하지 못하는 이유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이유

이제까지 디자인 선구자들의 특징을 살펴보았으며, 우리도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물에 대한 정당한 의견, 주장 등을 가질 때 디자인이 발전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알고, 경쟁사가 아닌 사회와 인간의 삶을 고찰하여야 하며,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 의견, 주장을 가질 수 있는 멈추어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함도 알았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우리 기업들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왜 알면서도 하지 못할까 이다. 


우선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과 낯섦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대학의 졸업 작품에 어떠한 조건도 주지 않고 “자신의 견해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디자인하라”는 주제를 주면 많은 학생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기업들은 경쟁자를 따라잡기 위하여 혹은 이기기 위하여 달려왔으며, 그러기 위하여 자신의 생각이나 견해보다는 경쟁자들의 움직임, 소비자들의 취향을 파악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이 매우 낯설고 어색할 수 있다. 또한 이제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기업들이 잠시 멈추어 호흡을 고르는 순간 경쟁자들은 계속하여 전진할 것이라는 불안감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적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명확하다 현재까지의 방법으로는 선두와의 간격을 좁힐 수는 있으나 선두그룹과 같은 수준으로 올라설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수준의 국내 S사에서 모바일폰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는 수 백 명이다. 그들이 밤을 새워가며 디자인을 하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항시 그러한 것은 아니나 디자인 결정권자의 태도가 ‘나도 답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를 만족시켜봐’와 같은 태도를 가지는 경우가 있다는 말에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반면 애플은 조너선 아이브의 명확한 개발방향에 의하여 진행되며 디자이너가 불과 수십 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디자인 선구자들을 부러워하며 그들을 계속하여 따라갈 것이라면 문제가 없으나 그들과 새로운 디자인을 제시하고 같이 그것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제품이 가치를 만들고 싶다면 “나는 누구이며, 나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를 준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등정한 힐러리경(Edmund Percival Hillary)이 오른 길은 아직도 힐러리 루트로 명명되어 전해진다. 그 이후에 등정하는 사람이 아무리 빨리 오르고 많이 올라도 결국 힐러리 루트를 따라갈 뿐이기에 많은 산악인들은 자신의 루트 개척을 궁극의 목표로 삼듯이 선구자는 남이 간 길을 가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