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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i Nov 10. 2021

초보팀장일기- 저도 정규직이 하고 싶어요

“면접을 보러 간다고!?!?!?!”


여느 날처럼 함께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사가지고 먹으며 보내던 평화로운 하루의 점심, 샐러드 먹다 말고 체할 뻔했다.

다른 팀원들은 일정이 있어 우리 팀 막내와 나, 둘만 함께한 점심식사였다.

처음에는 인적성이 어쩌구 지원이 저쩌구 하길래 ‘요즘 공채 시즌이니 그걸 보고 떠오른 채용 아이디어라도 얘기하려나’ 맘 편하게 생각했다. 혹은 자기 친구가 이번에 인적성에 붙었다는 얘긴가 싶었다. 헌데 갑자기 그녀가 날짜 이야기를 꺼냈다.


“팀장님, 그래서 저 다음주 수요일에… 반차 쓰고 면접 보러 가도 될까요?”

팀장한테 대놓고 면접 보러 간다고 휴가 허락받는 팀원 얘기는 또 처음 겪어본다. 아니, 들어본 적도 없다. 이게 바로 뒷통수구나.


올해, 나름의 아홉수를 겪고 있다는 그녀는 내년이면 꼭 서른이 된다.

첫 번째 응시한 수능에서 원하는 성적을 받지 못해 간 학교에서 결국 편입을 준비했고, 4년만에 결국 Y대 경영학과라는 빛나는 타이틀을 따내는 것까지 성공했다. 이후 투자심사회사 분석가로 사회에 순조롭게 발을 내딛는 듯했으나, 팀장을 잘못만나 마음의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다고 했다. 결국 6개월만에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 생각하고 투자회사를 퇴사, 2020년부터 인사팀 인턴 생활을 해왔다. 물론 정규직 사원이 되기 위해 꾸준히 취업준비도 병행했지만 매번 최종면접에서 미끄러졌다. 덕분에 친구들에게 ‘최탈(최종탈락 전문)’으로 불린다.


그녀는 나와 2021년 5월, 우리 팀 팀원의 산휴대체 1년 계약직 자리를 뽑는 인터뷰에서 처음 만났다. 그당시 그녀는 스타트업에서 근태, 퇴사프로세스 처리 등 인사 데이터를 관리하는 업무를 주로 맡고 있었다. 넘쳐나는 데이터와 Admin 업무를 정리할 직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자칭 빠르다는 손과 자신 있는 data 관리 역량, 꼼꼼하고 차분해 보이는 성향을 보고 그녀로 채용을 진행했다.


5개월간 지켜본 그녀는 ‘기계처럼 일하는 스타일’ 이었다. 근무시간 내, 주어진 일을 나름 열심히 쳐내지만 모르는 일이 생겼을 때 배워서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저는 이거 잘 몰라서..”하고 넘기기 일쑤였고 현업에서는 그런 태도에 불만을 가졌다. “A님은 꼭 공무원처럼 일하는 분 같아요.”

하지만 가져오는 업무의 결과물들을 봤을 때, ‘일 욕심’이 조금만 더해지고 시간이 지나 커뮤니케이션 하는 스킬이 쌓이면 충분히 인정받는 인사쟁이로 클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다.

의도적으로 회사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어서 워라밸을 조정해야 하고 일에는 욕심이 없다, 주어진 일만 하고 싶다고 한다면야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 단지 몰라서 그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한 달에 한 번, 진실의 방이라 불리는 1:1 면담시간이 있다.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 잘 모르겠다고 했었다. 점심식사를 할 때도 항상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딱히 없다, 싫어하는 음식도 없다. 말하곤 했다. 마찬가지로 일에 있어서도 더 배우고 싶은 업무, 성장하고 싶은 영역에 대해 크게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앞으로 수십년 먹고살 일로 인사업무를 선택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 우리 함께 ‘왜 일하는가’ 책을 읽어보자 권했다. 책은 좋아하지만 자기계발서도 태어나서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면접을 보러 가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지난 5개월 내내 그녀가 오롯이 성과 낼 수 있는 업무들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APAC Director 와 그녀의 정규직 자리를 만들기 위해 싸워오고 있었다. 현타가 왔다. 내가 지금 웃고 있는 건지 화를 내고 있는 건지, 얼마나 찌부라진 얼굴이 되었을까 생각했다. 나는 마음을 비우지 못한 팀장이었다. 그렇지만 최대한 이성적으로 이야기 하기위해 최선을 다해 솟아오르는 감정을 눌렀다.


우선, 나에게 제일 먼저 이 소식(?)을 솔직하게 전해준 부분에는 고맙다 말했다. 하지만 내가 너의 정규직 자리를 보장하기 위해 이리뛰고 저리뛰고 싸우던 부분을, 너가 몰랐다면 이야기해주겠다 말하였다. 적어도 나는 그녀가 될성부른 토양이라고 봤다. 물도 주고 햇빛도 주고, 가끔 단단해지도록 잘 밟아도 주면서 나무가 뿌리내리고 열매도 맺길 바랐다. 진심이었다. 그녀는 밥먹다가 핸드폰으로 본 인적성 합격문자에 그저 신나 나에게 그 사실을 바로 전달한 것 같았지만. 나는 그녀를 변화시키고 싶었고, 성장시키고 싶었으며 그녀와의 미래를 꿈꿨다.

부모님과도 잘 얘기해 보고 내일 다시 얘기하자 자리를 마무리했다.


“면접을 보는 것은 너의 자유야. 하지만 이 곳에 남아서 정말 정규직의 기회를 제대로 잡아보고 싶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다면, 여기에 집중하는 모습과 태도를 보여주기를 기대할게. 사실 내가 느끼는 지금의 감정은 연인에게서 ‘나 바람 필거야’ 라는 예고통보를 받은 것과 비슷해. 우리가 지금 결혼한 사이는 아니니 나는 다른 여자도 만날거야. 라고 대놓고 이야기한거지.’



다음날, 그녀는 내게 면담을 요청해왔다. 본인이 이력서를 넣게 된 계기부터 입을 뗐다.


“내년이면 육아휴직을 떠났던 대리님이 돌아올텐데 그럼 제 자리는 더 이상 없을 것 같았어요.”

곧 서른살인데 아직도 비정규직으로 일한다는 것, 19년 졸업이후 한 번도, 그 어느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녀를 많이 위축되게 만든 것 같았다.


“사실 여기서도, 면접기회가 생긴 곳에서도 둘 다 아무것도 안 될 까봐 너무 두려워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지금 직장, 하는 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부족함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내쉬면서 그녀와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원하는 것을 얻는 것에만 집중하자. 네가 이곳이 아닌, 목표로 하는 회사나 역할이 따로 있어서, 커리어 점프 업을 위해 이직을 고려한다면 나는 그것도 괜찮아. 하지만 정규직이라는 자리를 원하는 거라면, 여기서의 확률이 가장 높고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원한다고 당당히 말하고 이미 그것을 얻은 것처럼 일하고 행동할거야.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해.”


한참을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니 나도, 그녀도 속이 조금은 후련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조용히 마지막 운을 뗐다.

“팀장님, 저... 여기서 기회를 잡아볼게요. 열심히 해 볼래요.”



겉으로는 태평하고 어찌보면 공무원스럽게 일하는 듯 보이던 그녀지만, 사실 맘 속에는 ‘안 되면 어떻게 하지? 나만 계속 또래보다 뒤쳐지고 커리어를 쌓지 못하면 어쩌지?’ 라는 큰 돌덩이가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녀도 나도, 이번 작은 사건을 계기로 서로를 더 알아가고 신뢰를 쌓아가자 다짐하게 되었다.


나는 그녀가 긍정적인 마인드로 변화하고, 모두에게 인정받으며 원하는 정규직을 내년 상반기 내에 성취해 내도록 도울 것이다. ‘안 되면 어쩌지?’

보다는, ‘나는 될거야! 내가 원하는 것을 이거고, 이걸 가질거야!’ 를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대화하고, 그녀가 똑똑하게 선택하도록 이끌 것이다. 



                  다른 이들 속에 잠자고 있는 가능성을 깨워 꽃피게 해주는 것,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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