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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i Nov 25. 2021

초보팀장일기- 진실의 방

목표면담 하는 날


“저 오늘 진실의 방 가는 날이예요… 으악!”


 팀원 중 하나가 몸서리를 치며 다른 직원에게 말한다. 싫다고 말하면서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건 마치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하면서 새벽기상도 독서도 운동도 힘들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지만 사실은 ‘나 이렇게 자기계발 프로그램 참여하는 발전적인 사람이야’를 은근슬쩍 돌려 자랑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진실의 방은 우리 팀 옆 전용으로 사용하는 작은 회의 공간에서 진행된다. 매월 한 번씩, 30분에서 한시간정도 팀원들과 일대일 면담하는 시간을 가져왔다. 내 입장에서는 실무까지 빠르게 쳐내야 하는 나의 황금 같은 업무시간 중 일부러 쪼개어 만들어 낸 시간이자 팀원들을 일대일 코칭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일정을 잡을 때도 회의명은 “1 on 1 Meeting”.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해당 시간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생겨버렸다. 팀원들끼리는 그 시간, 그 장소를 ‘진실의 방’ 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미 우리 팀과 친한 다른 팀 몇몇 직원은 물론, 심지어 대표님도 알고 계시는 용어였다. 나만 몰랐다.


“그게 왜 진실의 방이야?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어~?”

과연 좋은 뜻일까? 아니면 요즘세대들이 부르는 ‘꼰대’처럼 나쁜 의미의 은어는 아닐까? 걱정가득한 맘을 안고 넌지시 물었다.


 “음… 그건 딱히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언제부턴가 그냥 그렇게 얘기했어요.” 팀원의 대답이다. 하지만 그 날이 다가오면 심장이 두근두근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고 했다.

 하긴 나도 내 위의 상사랑 매월 그렇게 한시간씩 골방에 앉아 얘기하려면 마냥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 지금은 다른 나라에 있는 상사와 한 달에 한 번씩 화상으로 비스무리한 시간을 가지는데, 사실 한국어로 얘기하는 게 아니다 보니 전날 부담이 백 배다. 내가 한 달 동안 이룬 성과와 진행과정에 대해 보고해야 하는 날 아니던가! 전 이렇게 잘 하고 있어요. 하고 한참을 영어로 포장해야 하니 땀이 뻘뻘 난다.


 하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그런 시간을 가지니 방향이나 목표에 대해 엇나가지 않고 계속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래서 나도 우리 팀원들과 시작했다. 처음에는 올해 하기로 한 일, 이번 분기에 하기로 한 일, 이번 달에 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계속 작게 목표를 쪼개 얘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항상 계획이 계획대로 된 적이 얼마나 있던가. 새로운 일이 끼어들기 일쑤다.


 처음 진실의 방에서 팀원들과 이야기 하던 날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팀장님, 원래는 이 얘기를 하기로 했었는데 사실 제가 이번달에 제일 많이 한 일은 이거예요….”


“그래, 괜찮아. 원래 이렇게 이달의 할 일과 목표는 계속 변화할 수 있어. 우리가 지난 달에 하기로 한 일을 먼저 얘기해보고, 이번달에 시간을 가장 많이 쓴 일들, 그리고 이번달에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가장 어렵거나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한번 얘기해보자.


순서대로 하나씩 이야기해 본다.

“이 일이 가장 잘 되었을 때를 상상해보면 어때? 어떤 결과들이 보여?”

“음…제가 .”

“그럼 그 때 (팀원1)님이 우와, 나는 정말 뛰어난 수준으로 이 업무를 해냈다! 라고 할 수 있는 결과물이나 역할을 뭐가 있을까?

(팀원1)님은 이 일을 왜 해?”


젠장, 잘 못알아듣는 것 같다. 넵 넵 마치 알아들은것처럼 대답을 빠르게 하지만 눈동자가 마구 흔들린다. 나도 어려운데 니들은 얼마나 어렵겠니.

한시간을 가득 채워 이야기하고 진실의 방 문을 나서지만 밤에 야식을 잔뜩 먹고 바로 누워 잠에든 다음날 아침의 느낌이다.


‘다른 팀장들은 팀원들이랑 대체 어떻게 목표면담을 하지? 가이드를 보면 성과에 대해 자주 면담시간을 가지라고 하던데.’

‘가이드 대로 해도 우리 팀 주니어들이 전혀 못알아듣는데?’

몇 번을 쓰디쓴 실패를 맛봤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요즘 부자, 성공과 관련된 책을 많이 들여다보는데 마침 모든 책에서 목표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일 잘하려고 목표가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려면 목표가 필요하단다. 


 내용을 정리해서 잘게 쪼개고 책에 나온 사례를 설명해주기 위해 계속 정리했다. 한 두장으로 요약해서 진실의 방, 그 순간을 위해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내가 이번에 책에서 본 내용인데,, 우리가 목표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가져와봤어.”

진심이 통한 걸까? 미팅이 끝나고, 팀원 한 명은 이전 미팅때와는 달리 표정이 꽤 밝아졌다.


 “오늘은 어떤 얘긴지 훨씬 감이 잡혀요. 그리고.. 제가 입발린 소리는 잘 못하는 데요.. 제가 잘 되라고 노력해주시는 모습에 감사해요. 저희 팀장님 자랑 제가 주변에 많이 해요!”


 우리 팀 막내이자 신입사원은 아직 감을 완전히는 못 잡은 것 같다. 그래도 솔직한 속마음을 얘기해주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장래희망이 있었던 적이 없어요. 하지만 앞에 닥치는 일들은 열심히 해요. 그래도 일을 왜 열심히 해야 되는지, 왜 변화가 필요한지는 처음 생각해 보는 시간인 것 같아요.”


 진실의 방도, 팀원들과 나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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