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두 달 전 입사한 우리팀 막내가 흔들리는 눈동자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나를 찾는다.
그녀는 최근 출산휴가 겸 육아휴직에 들어간 또다른 팀원의 대체인력으로, 비슷한 경력의 경력자를 뽑고 싶었지만 6개월 정도의 인턴 경험이 있는 사회 초년생이다. 산휴대체의 계약직 자리이다 보니 내가 원하는 능력과 스킬을 갖춘 경력직을 뽑기가 쉽지 않았다. 수많은 이력서를 보고 면접도 진행했지만, 처음부터 마음에 100% 쏙 드는 사람이 어디 흔하랴!
“할머니가 갑자기 눈이 한 쪽이 안 보이신다고 하는데요… 엄마랑 아빠도 휴가를 내기가 어려우신 상황이라 제가 같이 할머니랑 세브란스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내일 휴가 써도 될까요…?”
우리 회사는 애초에 휴가를 눈치보고 쓰는 문화가 아니다. 그녀의 이 말을 듣자마자 처음 든 생각은 ‘아직 입사한 지 두 달 밖에 안 되어서 회사 문화를 잘 모르나? 뭘 이렇게 어렵게 말을 하고 휴가 사유를 디테일하게 얘기하지… 내가 그렇게 무섭나?’
이제 갓 사회생활 시작한 지 얼마 안된 사회 초년생이니 팀장이 멀게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온화한 미소를 지어본다. “할
머니 많이 편찮으시대? 그래 잘 모시고 다녀와. 원래 할머니랑 같이 살았나?”
“아니요, 같이 사는 건 아니고 근처에 사세요..”
분명 면접 볼 때는 또랑또랑 똑부러지는 스타일 같았는데 오늘따라 나랑 얘기만 하면 자꾸 말소리가 쪼그라든다. 내가 막내에게 뭘 잘못한 게 있는지 잠시 생각해본다. ‘업무를 알려주면서 너무 날카롭게 말했나? 너무 어려운 업무를 막 던져준 적이 있나?’
생각이 한번 물꼬를 트자 꼬리에 꼬리를 이어 퇴근 후,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도 지워지지 않았다. 2020년 초, 30대 초반에 처음 팀장을 맡으면서 그동안은 운 좋게 붙임성 좋고 사회성 좋고, 나이차이가 나와는 많이 나지 않는 팀원들과 손발을 맞추어 왔다. 물론 개성들이 어찌나 뚜렷하던지 합을 맞추는데 1년을 고생했다. 그리고 또다시 1년만에 새롭게 맞은 막내인데.. 혹시 갑자기 도망가면 어쩌지?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는다.
그리고 막내가 휴가를 다녀온 다음 날인 오늘, 막내를 만나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할머니는 괜찮으시대?”
“네, 일시적으로 그러신거라는데 병원을 다음주에 한번 더 오전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또 반차를 써야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마음의 파도가 크게 일렁인다. 촉이 왔다. 이건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가 1차면접, 이제 다음주에 2차 면접이 잡힌 것이다. 막내가 두 달 만에 떠날 준비를 하고 있구나! 지금 계약직이라 불안정해서 정규직을 찾고 있는 걸까? 일 잘하면 정규직으로 전환 시키려고 내가 지금 열심히 윗분들이랑 얘기하고 있었는데…
황급히 그녀의 사수를 불러 상황을 얘기해 본다. 그녀의 사수는 나이는 어린 편이지만 눈치백단에 붙임성도 좋아 대표님과도 자주 수다를 떠는 우리회사 공식 소식통이다.
“똥촉일 수도 있지만.. 혹시라도 회사생활하면서 어려운 점 있는지 한번 속마음도 물어봐주고 나한테 팁 좀 줘.”
팀장은 참 피곤하다. 잘해야 하는 ‘내 일’, 성과에 팀원 육성이 포함된다. 말이 육성이지 사람 기르고 자라게 하는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사람 속을 어찌 안단 말인가.
업무를 하고는 있는데 책상 밑 다리는 계속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내가 원래 이렇게 다리를 흔들어가며 일하는 스타일이었던가… 혹시라도 진짜 이직 준비중이라고 하면 다시 사람을 어떻게 뽑지? 요즘 세대들은 어떤 생각으로 회사를 다니는 걸까 고민한다.
“팀장님! 똥촉 맞으신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퇴근 전, 기다리던 사내 메신저가 도착했다. 그녀의 사수 였다.
할머니가 정말 편찮으신 것도 맞고, 막내는 현재 회사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다른 팀에서 씩씩대며 막내를 찾아와 업무 컴플레인을 하던 직원이 있었는데, 팀장님이 자기 일처럼 대응해주고 땀 뻘뻘 흘리던 자기를 도와줘서 고마웠다고 말하더란다. 이전 직장에서는 똑 같은 일이 있을 때 혼자서 모두 해결해야 했고 그게 너무 힘들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 똥촉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똥촉 만세다.
그래, 나중에 떠나보낼 때 후회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지금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다 하자. 상대방 사람 속은 몰라도 내 진심은 전달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