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을 보다가
“닥터 옥타비우스, 고블린, 샌드맨, 일렉트로, 리저드….”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이름들이라면, 영화 ‘스파이더맨’을 떠올려보면 더 기억이 선명해질 것이다. 위 이름들은 지금까지 제작된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만날 수 있는 빌런들의 이름이다.
2021년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인 스파이더맨-노웨이홈 에서는 3명의 스파이더맨이 만났던 모든 악당들이 한 영화에 등장하는데, 조금 더 흥미로운 부분은 일반 히어로 영화에서처럼 ‘이러이러한 위기상황 속에서도 주인공은 결국 빌런들을 해치우고, 주인공과 주변 사람을 비롯한 세계시민들은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 로 끝나는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피터 파커(스파이더맨)는 자신의 얼굴을 비롯한 개인신상정보가 전 세계에 노출되자 주변인들이 입는 피해에 자책감을 느끼고 닥터스트레인지에게 자신이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잊게 해달라며 마법을 부탁한다.
이 때 또다른 차원에 있는 스파이더맨=피터파커를 아는 모든 가지각색의 빌런들이 한 차원에 소환되는데, 다시 이들이 원래 존재하던 곳으로 돌려보내자는 닥터 스트레인지와 달리 피터 파커는 이들을 착하게 만들어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가도 죽지않고 살아가게 하겠다 고집한다.
결국 이 영화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나오는 모든 빌런들을 다시 착하게 되돌린다는, 성선설을 바탕으로 한 주인공의 믿음으로 전개되는 ‘빌런 착하게 만들기 프로젝트’인 셈이었다.
20대 초반의 사회초년생인 내가 가졌던 마음가짐도 어찌보면 피터 파커와 비슷했다. 영화 속 피터 파커가 ‘빌런도 개과천선 할 수 있어! 사실은 모두 착한 사람들이야. 날 때부터 빌런은 없어. 이대로 빌런들이 죽게 놔둘 수 없어!’ 라는 믿음을 가졌다면, 나는 “세상에 모든 사람에게는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배울 점이 있어! 처음부터 나쁜 상사, 나쁜 동료는 없어.” 라는 믿음이 있었달까.
하지만 세상에는 나의 믿음의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는, 내 기준에서의 나쁜 동료와 나쁜 상사가 있었고 나는 영화 속 스파이더맨 처럼 나의 신념으로 그들을 개과천선 하게 만들지도, 그렇다고 내가 그들의 입맛에 맞게 변해서 좀 편하게 회사생활을 하지도 못했다.
팀원 시절, 유난히 나를 힘들게 했던 3명의 빌런 팀장들로부터 받은 상처조각들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A씨, 나는 당신 팀장이 아니야. 단지 A씨와 같은 영역에서 일하는 시니어일 뿐. 내가 A씨를 가르칠 의무도 없고, 내가 A씨 같은 경력자를 왜 뽑았겠어? 경력자면 한 번 말해준 건 두 번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완벽히 할 줄 알아야해.”
“A님, A님은 아직 나이도 어리잖아요. 이 일과는 안 맞는 것 같은데.. 새로운 일을 찾아보는게 어때?”
“A는 싸가지가 없어서 안 돼.”
만화도 소설도 드라마도 영화도, 모든 스토리에는 위기가 있고 절정의 단계를 지나야 결말이 온다. 주인공이 크게 실패하거나 배신당하고, 좌절하고, 사력을 다해 위기를 하나 둘 극복하면서 각성하고 해피엔딩이건 새드엔딩이건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여기서 주인공에게서 가장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는 ‘위기’, 그리고 이 위기를 만들어내는 ‘무언가’ 인데, 보통 우리는 이 위기를 만들어 내는 주체, 악당들을 ‘빌런’이라 부른다.
살아가면서 단 한 명의 빌런도 만나지 못했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특히 회사에서는 더더욱. 회사원들끼리 모여 커피 한 잔, 소주 한 잔 하는 시간에는 꼭 ‘나를 힘들게 하는 빌런들’의 이야기가 단골 소재가 되기 마련이다. 물론 빌런 오브 빌런은 나의 상사, 팀장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역경과 고난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지만 팀장이 된 지금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팀장=빌런이 아니어도, 회사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면서 그냥 빌런들은 사람의 형태로건, 다른 모습으로건 찾아오는데 굳이 나까지 빌런이 되어야 하나? 내가 꼭 팀원의 인생을 각성시키는 주체가 되는게 맞는가 말이다.
꼭 내가 나쁘지 않아도, 악역이 아니어도 그들과 공존하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