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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i Jan 02. 2022

틈 이야기


 신입 직원을 뽑았다.


 산휴대체 자리에 계약직으로 들어와 6개월간 손발을 맞추던 친구가 국내 대기업의 정규직 자리에 합격해 당장 다음달부터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전해왔다. 다음달까지 딱 열흘 남은 시점이었다. 그동안 인턴, 계약직으로만 1년 반 넘는 기간을 전전하던 친구여서 좋은 성과를 보이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려고 그 친구가 돋보일 수 있는 업무로 성과도 만들어가며 이제 최종 결과만 기다리고 있었고, 아등바등 없는 자리까지 만들어가며 APAC HR Director와 싸우던 참이었다.


 ‘6개월간 하나, 둘 씩 손발을 맞추어 이제야 기껏 팀에서 일 다운 일을 하게 되었는데,,, 얼마전 면담할 때만 해도 여기서 기회를 잡아본다더니 또 언제 그렇게 다른 곳에서 면접을 봤지?’ 서운한 마음과 함께 수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안정된 자리, 큰 규모의 직장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었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런 마음은 뒤로하고 빠르게 인수인계서 작성에 대한 부탁과 함께 퇴사 프로세스를 진행해야 했다.


 정규직과 계약직 사이, 가뜩이나 N년차 경력직도 아니고 신입, 주니어 레벨의 직원을 뽑는데 이것 때문에 올해 마음고생을 꽤나 했다. 이 때문에 외국계 기업에서, 특히 인사분야에서 인턴이나 계약기간 없이 정규직 자리를 뽑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임에도 이번에는 애초에 상사들을 설득해 애초에 정규직으로 공고를 냈다.


 수많은 이력서를 검토하고 면대면 면접과 실무테스트를 거쳐 최종 신입 직원을 뽑았다. 당장 보여지는 엑셀 스킬, 외국어 역량이 더 뛰어난 다른 후보자도 있었지만 가장 인사직무와 외국계, 일에 대한 간절함이 커 보이는 친구였다. 강아지 같은 인상에 약간은 쳐진 눈과 차분한 말투, 선한 인상을 가진 이 친구는 꼼꼼하게 모집공고를 분석해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녹여냈고, 4개월정도 인턴경험을 했던 곳에서 나름 추천서도 받아와 최종 면접에서 제출했다. 여러모로 성의가 돋보이는 면들이 많았다.


 신입 직원에게는 내가 가장 믿고 신뢰하는 오른팔 역할을 하는 직원을 사수로 붙여줬다. 하지만 그 직원도 올해 하반기부터 새로운 역할에 도전함과 동시에 벌써 올해 하반기에만 두 번째 새 직원을 받게 되니 부담스럽지 않았을 리 없다. 항상 몸과 마음이 바빠 보였고 이번에는 내가 좀 더 신입 직원의 온보딩(조직 내 새로 합류한 사람이 빠르게 조직의 문화를 익히고 적응하도록 돕는 것)에 신경써야겠다 마음먹었다.


 헌데 연말에 어찌나 정신없이 바쁜지, 작년에도 연말에 휴가 하나 못 썼는데 올해는 기필코 휴가는 가야겠다 마음먹었고 결국 화장실 하나 왔다갔다 하는데도 걸음이 빨라지고 말은 더 빨라졌다. 그 와중에 신입직원은 당연히 실수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았는데 신입직원을 돌보는 사수도 신입과 같이 실수를 터뜨리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사수의 부담을 덜어주고 동시에 내가 더 신입 직원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최대한 말을 천천히 하려고, 목소리 톤을 높이지 않으려고, 인상 쓰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실제로는 동치미 국물 없이 고구마만 꾸역꾸역 먹다 목에 막혔을 때처럼 답답한 마음이었다. 꽉 막힌 고속도로 안 언제 풀릴 줄 모르는 교통정체 속에서 생리현상의 해결을 위해 휴게소 화장실을 찾는 사람처럼 조급한 마음이 가득했다. 신입 직원도, 신입 직원을 돌보라 붙여준 사수도 다 불만족스러웠다. 채찍질하고 잔소리할 행동과 빈 틈들만 보였다.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회사 노트북을 챙겨 휴가 여행길에 올랐다. 신입 직원에게는 언제든 연락해도 된다. 궁금한 것, 도움이 필요한 일은 회사 메신저랑 메일에 쓰면 내가 바로 다 볼 수 있으니 걱정말라 말한 채.


 이번 휴가는 물 맑고 공기 좋은 평창의 오대산 속, 명상마을이 코스에 있었다. 티비도 없고 냉장고도 와이파이도 없는 숙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바깥 풍경 보면서 멍 때리기, 숙소에서 나오는 식사(채식)하면서 속 비우기, 그리고 아침에 스님과 함께하는 명상 프로그램을 참석하는 것뿐이었다.


 강원도에 눈이 어찌나 많이 왔던지 세상이 온통 흰 눈 아니면 투명한 고드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첫째날 밤 뜨끈한 온돌방 위에서 9시 전부터 잠든 남편 옆에서 꾸벅꾸벅 책을 보며 졸다 잠든 나는 다음날 평창의 영하 14도 날씨를 이겨내며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할건 다 하고 가야지’ 마음먹고는 옷을 세 겹, 네 겹 껴입고 아침 명상 프로그램장으로 향했다.


 난생 처음 참여해보는 명상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에는 스님이 무슨 말씀 하시는지도 몰랐다. 가부좌를 틀고 계속 앉아 있으려니 다리도 저리고 몸이 근질거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불교에서의 수행방법을 기반으로 한 명상법을 일반인들에게 최대한 친근하게 알려주는 과정이었는데, 그 곳에는 명상을 위한 음악이나 어떤 소리도 없고 심신을 편안히 해준다는 아로마향이나 절에서 맡을 법한 흔한 향 냄새도 없었다.


 그냥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호흡에 집중하며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을 치워버리면 됐다. 고요히 앉아서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연습을 했다. 이 상태에서는 좋고 싫어함도 없고, 모든 분별이 필요 없다 얘기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다리가 저리면 저린대로, 잡념이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수용적인 태도로 자각하고 힘을 빼면 주변의 자극에 바로바로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틈, 여유가 생긴다고 했다.


 내게 필요했던 빈 틈은 이거였다. 남의 빈 틈을 찾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빈틈을 찾는 것.


 팀원들의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반응적으로 대하고, 못마땅해하고, 의심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대신 내가 무엇을 원하고 바라보는 지 또는 그들은 어떠한 지 귀 기울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정되어 있다면 팀원들도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내 목소리에 귀기울일 가능성이 높다.


 '밖의 틈만 보려하지 말고, 여유와 안정을 위한 내 안의 틈을 찾자' 다짐하게 된 감사한 경험을 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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