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oni Jan 09. 2022

팀장도 사수가 필요해


 인사팀장, HRBP(HR Business Partner) 이자 HRD(HR Director)로 어느새 명함도 바뀌고 이전 팀장님이 사용하던 자리가 이제는 내 자리가 되었지만 내가 팀장이라는 직책을 달았다고 해서 호떡뒤집개로 호떡 뒤집을 때처럼 짠 하고 처음부터, 한순간에 내가 팀장처럼 일하고 성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팀장님, 이런 문의가 들어왔는데요… 뭐라고 답을 해야하죠?” –팀원A


“팀장님, 우리 팀에 이번에 개정된 노동법 관련해서 이런 이슈를 제기한 직원이 있어요. 어떻게 해결해야 하죠?” –유관부서 팀장B


“박 팀장, 나는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회사, 공정한 평가가 함께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은데 말이야…” –대표C


“Dear XX, APAC/Global에서는 지금 ~~와 같은 HR 프로젝트들이 진행중에 있으니 인력을 협조해 주었으면 좋겠다. 프로젝트 일정에 따라 이 자료, 저 자료 한국시장에서의 관점과 의견을 달라.” –APAC HRD


 팀원부터 유관부서 팀장, 대표님, 외국인 직속상사, 외부 이해관계자들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요청들이 들어왔다. 이제 나는 한정된 시간과 인력을 가지고 이 일들을 우선순위에 따라 정리하고 팀원들에게 다시 쪼개어 나누어주어야 했다.


 정해진 답은 없다지만 아직 이 회사로 이직한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나에게 경험해 보지 못했던 수많은 새로운 과제들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졌다. 가끔씩 대표님이 자리로 나를 불러 인사팀의 과제라고 생각하시는 업무들에 대해 논하실 때면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지금 당면한 과제들도 쳐내기 힘든데 자꾸 뭔가를 깨닫게(?) 해 주고 싶으신 듯 매우 우회적인 화법으로 이것저것을 말씀하셨다. 모두가 퇴근해도 나는 퇴근하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매주 월요일이면 그렇게 술이 당겼다.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집 근처 편의점에라도 가서 안주와 소주를 사서는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쏟아냈다.

뭔가를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니 부담과 압박은 큰데 이런 것들에 대해 논의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회계,재무쪽을 책임지고 계시는 임원 한 분이 퇴근길 내 자리에 들렀다.


“요즘 많이 힘들지? 왜 이렇게 집에를 못 가. 대표님이 이상한 얘기 하셔?? region에서 괴롭혀??”


아래 직원들로부터 신임이 두텁고 격없이 직원들을 대하시면서도 잘 챙겨주시는 분이었다. 같은 층에서 계속 근무하고 있지만 HR과 Finance 영역이 명확히 나뉘어 있기도 하고, 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선뜻 먼저 찾아뵙지 못했었는데 결국 먼저 또 손을 내밀어 주셨다.


“대표님이 이런이런 얘기들을 하시는데… 의도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제가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하는 건 지 잘 모르겠어요.” 울상이 된 얼굴로 운을 뗐다.


“자, 대표님은 이런 성향이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스타일이라 이건 이렇게 응대하는 게 일하기 편해. 이 임원들은 이런 특징이 있고, 대표님이 이렇게 생각하고 계시니까 이 일을 할 때는 꼭 같이 챙겨보고.”


 그날을 시작으로, 잘 안 풀리는 일이나 고민되는 일들이 생기면 그 분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코로나 상황 속 나와 우리팀을 덮친 수많은 위기와 유쾌하지만은 않은 새로운 업무들을, 그 덕에 풀어나갈 수 있었다. 더불어 사람 관리, 팀원들의 신뢰를 얻는 방법에 있어서도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팀원이 갑자기 임신하고 출산,육아휴가에 들어가게 되는 일에서부터 나랑 안 맞는 팀원, 성과가 불만족스러운 팀원을 어떻게 면담하고 끌어나가야 할지 등도 계속해서 나는 해결책을 고민해보고, 그 분의 조언과 지혜가 더해져 그나마 이 과정들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전에는 팀장은 책임지는 사람이고, 내 업무의 영역은 어떻게든 혼자 다 해결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너무 외로웠다. 그렇다고 대표님께, 혹은 직속 외국인 상사에게, 또는 내 팀원을 붙잡고 이게 힘들다 저게 힘들다 징징대는 사람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꼭 같은 업무 분야가 아니더라도 나보다 회사 생태계를 더 잘 아는, 혹은 내가 부족한 부분에 더 능숙한, 조언을 받을 수 있는 누군가가, 혹은 내 힘듦과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해주고 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으니 전처럼 외롭지 않았다.


 직장에서는 보통 해당 포지션에 익숙하지 않은 주니어 뉴커머(Newcomer)에게 업무에 필요한 기술, 회사 생태계 등을 알려주는 ‘사수’이자 멘토를 붙여준다. 하지만 회사가 ‘팀장’에게 주니어때처럼 ‘누구의 사수는 누구’를 정해주지는 않는다.

 팀장이라는 역할도 모두 처음이 있고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 적극적으로 나의 ‘팀장사수’를 찾아보자. 혹은 이제는 능숙해진 팀장 역할을 수행중인 당신이라면, 먼저 누군가의 팀장사수가 되어 손내밀어보는 것은 어떨까? 


 팀장도, 사수가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틈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