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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i Jan 16. 2022

밥 활용법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까지는 아니어도, 같이 먹고 싶은 팀장이고 싶다면


“밥은 먹었어? 밥 한끼 먹자!”

 안녕이란 말 대신, 상대방의 안부를 물을 때 널리 쓰이는 인사다. 우리네 삶에서, 삶의 행복에서 의식주 중 ‘식’이 차지하는 부분은 참으로 크다. 사람들은 먹방 유투버, 요리 유투버, 티비 속 맛집 프로그램에 열광하며 인스타속에서도 열 중에 일곱 여덟은 음식 사진이 포함된다. 나 이렇게 맛있는 음식 잘 먹고 다녀요~ 잘 먹어요~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오늘 뭐 먹을까?’

 출근과 퇴근, 어쩌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모든 직장인들이 가지는 짧지만 행복한 고민이다. 어떤 회사에서는 1순위 복지로 ‘호 텔급 구내식당’을 내세우기도 한다. 호텔급 구내식당이 기사거리의 단골 소재가 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물론 일에 찌들어 너무 바쁠 때에는 밥이고 뭐고 밥맛이 하나도 없을 때도, 오늘 뭐 먹을까 고민이 별로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내 첫 직장에는 사내식당이 있었다. 점심은 물론, 아침에도 천원만 내면 뜨끈한 밥에 국과 반찬,또는 원하면 라면도 식사가 가능했다. 구내식당이 두 군데 있었는데, 기존 구내식당도 밥이 참 맛있게 잘 나오는 편이라 평이 좋았고 더불어 다른 한 곳은 레스토랑처럼 운영되던 곳이기도 해서 점심에는 직원들에게 일주일에 부서별로 번갈아가며 1-2회씩 퓨전 양식의 식사를 제공했다. 보통 같은팀끼리 우르르 가서 한꺼번에 회사식당에서 식사하고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두 번째 직장부터는 사내에 식당이 없었다. 외국계이다 보니 규모가 그렇게 되지도 않고, 대신 캔틴이라는 공간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토스트빵, 시리얼, 음료 등을 수시로 먹을 수 있었다. 시니어 리크루터 였던 나의 사수이자 팀의 리더는 신규입사자 혹은 회사 직원들과 각자 점심 약속을 잡거나 여러 배달음식, 회사와 가까운 건물의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곤 했다. 완전한 개인플레이였다. 국내회사에서 6년 넘게 대부분 팀 단위, 셀 단위로만 식사시간에도 움직였는데 직장을 옮기고 나니 식사문화도 완전 딴 모양새였다. 그러다보니 크게 밥먹으면서 유대감을 쌓을 시간도, 큰 의미도 없었다.


 세 번째인 지금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내식당이 없고 주변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곤 했는데, 기존 팀원들이 점심식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삼성동에 있는 왠만한 맛집은 다 꿰고 있고 팀장님에게 아무렇지 않게 “밥 사주세요, 커피 사주세요” 이야기를 참 많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입사 초기에 혼자 신기해했다. 밥을 너무 자주 사주셔서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회사에서 주는 비용으로 다 사주는건가? 생각도 했다.


 그러다 처음 팀장이 되고 밥도 못 챙겨먹고 야근하는 날이 늘었다. 새로 뽑은 경력직 팀원과 둘이 지지고 볶으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도 맡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날도 APAC 담당자에게 국내 노동법 관련된 자료들을 모두 정리하고 번역해줘야 했는데, 한글로 봐도 어려운 용어들을 영어로 만들어가며 일하려니 밤은 깊어가고 열만 더 뻗쳤다.


 그 때, 둘 중 아무도 저녁식사를 배달시키지 않았는데 ‘ㅎ돼지집’에서 고기와 함께 푸짐한 저녁세트가 우리팀 앞으로 배달왔다. 내가 자주 조언을 구하던 이사님이 보내주신 저녁이었다. ‘팀장님, 팀장님이 시킨거라고 하고 팀원이랑 같이 먹으면서 해. 열받을 땐 고기 씹는게 최고야. 잘 챙겨먹여가면서 일 해야지.” 그날은 그렇게 분노를 고기와 함께 쌈 싸먹으면서 다시 마음을 삭히고 차분히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항상 이사님은 때로는 나에게, 때로는 내가 사주는 것처럼 우리 팀원에게, 중요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밥을 사주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동안 회사에서 수많은 팀장님들과 먹었던 ‘밥’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그냥 밥을 같이 먹는다고, 혹은 밥을 사주기만 한다고 중요한 게 아니었다.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관찰’, 그 관찰로 만들어내는 적절한 타이밍의 ‘밥’이 중요했다.


 점점 저녁 회식문화는 많이 사라지고 점심에도 각자의 시간과 밥 먹는 방법을 존중하는 시대가 왔다. 더욱이 코로나로 재택근무도 늘어나면서 회사 사람들과 밥 먹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을 것이다. 헌데 ‘식구’라는 말을 찾아보면,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의 뜻 말고도 ‘한 조직에 속하여 함께 이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라는 뜻도 있다.


어찌보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나의 팀원들, 식구들의 밥.

그냥 별 생각 없이 때되면 알아서 먹고 지나가기 보다, 무작정 지갑을 자주 열기보다,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적절한 때에 전략적으로 '밥'을 잘 활용하는 센스까지 갖춘다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까지는 아니어도 '밥 같이 먹고 싶은 센스 있는 팀장'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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