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타임머신의 추진력을 믿어보자
시간 여행 이야기가 많다. 현재의 내가 과거로 돌아가 몰랐던 사실을 알아내기도 하고, 지금의 내가 된 원인을 바꿔 다른 인생을 살기도 한다. 미래에 벌어질 일을 알아내고 돌아와 현재의 결정을 바꿀 때도 있다. 과거로 돌아가기도 하고 미래로 떠나기도 하지만 반드시 현재로 되돌아온다. 시간 이동이 아니라 여행이니까.
반복되는 일상에 활력이 필요하거나, 축적된 피로를 날려버릴 때가 되었거나,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누군가가 있거나. 일상을 벗어나야 할 이유가 있을 때 여행을 떠난다. 시간 여행도 마찬가지다. 바꿀 수 없는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떠나보낸 누군가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 중요한 결정을 앞에 두고 미래가 그려지지 않을 때 화면 속 상상력은 우리를 다른 시간으로 보내준다. 다른 사람과 몸을 바꾸기도 하고, 톨게이트를 통과하며 다른 세상에 진입하기도 하고, 꿈과 현실의 혼동을 통해 지금을 벗어난다.
50대에 들어섰다. 오래 살았고, 많은 일을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변이 없다면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한다. 두 번째 50년을 잘 살고 싶었다. 첫 번째 50년은 처음이라 어설펐어도 두 번째 50년은 한번 살아봤으니 제대로 살고 싶었다. 바꾸기 참 어려운 나를 데리고 처음과는 다르고 노련한 두 번째 50년을 시작하려니 시간 여행이 필요했다. 상상 속 세상이 아닌 현실에서 과거와 미래로 진입하는 타임머신으로 그림만 한 것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5점의 그림을 타고 시간 여행을 떠났다.
부푼 가슴에 설렘을 가득 품고 떠나는 여행이지만 돌아오는 길은 더 두근거린다. 낯선 곳에서 서먹한 사람들과 생경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집은 익숙하고 평안하다. 모래주머니를 찬 듯 무거운 다리를 턱 하고 뻗어놓을 손때 묻은 소파가 간절하다. 피곤의 서리에 내려앉은 눈꺼풀을 붙일 촌스러운 꽃무늬 이불이 포근하다. 순서 없이 내뱉는 내 이야기들로 시끌벅적한 말소리는 굿거리장단처럼 정겹다. 각 잡힌 셔츠의 격 떨어뜨리던 청국장 냄새도 구수하다. 떠나보면 지금, 여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그림 타고 떠났던 시간 여행 덕분에 현재의 나에게 너그러워졌다. 어려서, 철이 없어서, 힘이 부족해서, 더 잘하고 싶어서 그랬던 나를 이해하고 용서했다. 이해받고 용서받은 나는 단단해졌고,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해졌다. 내가 바로 서니 휘청거리는 이를 잡아줄 수 있다. 드넓어진 어깨는 쉴 곳이 필요한 이를 품을 수 있다. 따뜻한 가슴엔 나눠도 식지 않는 온기가 항시 대기하고 있다. 운동화 끈을 고쳐 묶고 새로운 다짐으로 달리고 싶은 때가 있다. 뒤처질까 봐 용기가 나지 않아 멈추지 못했다면 그림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다녀오는 건 어떨까. 과거로 미래로 헤매고 돌아와도 뒤처지지 않을 그림의 추진력을 믿어보자. 그림 타고 시간 여행 다녀와 더 행복해진 나의 이야기가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