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주는 거지?

유년기 그림 한 점

by 박윤경

이거 나만 먹는 거지? 진짜 나한테만 주는 거지? 바나나색 바탕 위 바가지 머리 아이는 ‘나만’이라는 달콤한 특별 대우로 인생의 쓴맛을 게우고 있다. 바나나맛 사랑을 호록 호록 채우고 있다.


바나나우유.jpg 윤희경 / 바나나우유


3남 1녀 4남매의 장녀지만 내 덩치는 제일 작았다. 먹성 좋고 덩치 큰 남동생들과 함께 먹고사는 건 꽤나 불공정했다. 할머니가 밥상 차리는 걸 도우면서 반찬의 배치를 조절했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 자주 먹지 못하는 반찬을 내 자리에 가깝게 두었다. 먹기 시작하면 허겁지겁 미리 찍어두었던 반찬부터 해치웠다. 남동생들의 젓가락이 바쁘게 움직인다 싶으면 밥 위에 반찬을 쌓아 두었다. 맛을 음미하는 우아한 식사 따위는 남동생들과 함께하는 밥상에서 사치였다.


3월이면 나의 기사 생활이 시작된다. 올해는 큰아이를 학원에 내려주고 작은 아이의 학교에 정해진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 두 명의 승객과 기사의 출발 시간이 지난해에 비해 당겨졌다. 아이들의 아침잠은 일이십 분이 아쉽다. 어쩔 수 없는 걸 알아도 짜증 날 법도 한데, 입 밖으로 소리 내어 투덜거리지 않는 아이들이 고맙다. 오빠만 아니었으면, 동생만 아니었으면 이라고 말하지 않는 아이들이 신통하다. 오래전 밥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내 모습을 생각하니 서로를 존중하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관계는 그 시절 배웠던 것 같다. 북적이는 가족 공동체에서 사회를 배우고 좋은 관계, 좋은 삶에 대해 체득했다.


살아보니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마음과 몸을 쓰며 보낸 시간, 타인을 배려하며 나눈 시간엔 보상이 따른다. 물론 바로 눈에 보이는 보상은 아니다.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평생에 걸쳐 좋은 삶을 선물로 준다. 누군가를 아끼고 양보하고 배려하며 보낸 세월은 나에게 또 그에게 쌓인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편안하다. 헤어지고 나면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나의 좋은 일도 그의 좋은 일도 제일 먼저 나누고 싶다. 힘든 일이 있어도 제일 먼저 떠오른다. 유난하지 않고,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지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있는 내 삶, 누구와도 바꾸기 싫다.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살이에 함께 하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만큼 큰 재산이 있을까. 밥 위에 반찬을 쌓아 올리면서도 남은 반찬과 동생들의 먹는 양을 배려했던 마음은 따뜻했다. 이제 동생들은 여전히 제일 작은 누나를 걱정하고 먹는 것도 늘 양보한다. 잠을 줄여 피곤해도 아침마다 함께 이동하며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의 시간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 더해 다정한 추억의 시간이 된다. 나중에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때에 이 시간 이 마음은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림 속 아이는 달콤함으로 쓸어내리는 이 쓴맛이 몸에 좋은 약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쓴맛도 꿀꺽 삼킨다. 그랬더니 눈물 맛도 바나나 우유도 세상 달콤하다. 이제 살만하지? 아이의 희미한 미소가 어느새 나의 미소가 된다.





유년기 나에게 보내는 질문 :

어릴 때 속상한 일 있으면 생각나던 간식 이야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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