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선물

청소년기 그림 한 점

by 박윤경

선물을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런데 그때 나는 슬펐다. 선물을 손에 들고 많이 울었고 원망했다. 이런 것도 선물이라고 해야 할까?


어릴 때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종종 선물을 받았다. 어김없이 그 해도 생일이 다가왔다. 유난히 많은 선물을 받았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1980년대에는 지금만큼 풍족하지 않았고, 물건이 다양하지도 않았다. 남중생이 여중생에게 주는 선물도 뻔했다. 인형을 비롯한 선물의 집에서 파는 팬시용품, 꽃, 책, 카세트테이프와 레코드판 정도가 전부였다. 정성 들여 접은 학 1000마리, 학알도 있었다. 내가 받은 선물도 비슷했다. 선물 중 카세트테이프와 레코드판이 제일 많았다. 둘 다 음악을 담고 있었지만, 케이스에 큼직하게 가수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고, 장식하여 보관하기에도 폼나고, 더 비싸고 귀한 레코드판이 좋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연희동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빠의 사업이 잘되어 형편이 넉넉해진 덕분이었다. 도배와 집 내부 수리, 정원 공사를 하고 이사했다. 가전제품도 새로 장만했는데, 아빠가 가장 공들여 골라 마련한 것은 전축이었다. 아빠는 우리 4남매가 전축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했다. 비싸고 좋은 것이라고 했고, 쉽게 고장 난 다고 했다. 신기했고 호기심이 들었지만 전축을 절대 만지진 않았다. 가끔 아빠가 틀어주는 음악을 듣는 것이 전축과 나눈 추억의 전부였다. 성공의 상징이었던 전축은 아빠의 사업이 부도가 나고 제일 먼저 보란 듯이 팔려 나갔다. 그래서 중학교 때 우리 집엔 전축이 없었다.


중학교 때 유재하와 그의 노래가 유명했다. 천재 음악가였던 유재하는 1집을 내고 얼마 안 되어 사망했고, 안타까운 소식으로 짧은 기간에 더 유명해졌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 내 품에> 등 유재하의 음악은 하루 종일 들어도 지겹지 않았다. 선물 받은 레코드판 중에 유재하 1집이 제일 많았다. 전축이 없으니, 레코드판에 담겨있을 음악을 들을 방법이 없었다. 나는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진 것이 부끄러웠다. 단짝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여전히 부유한 척했다. 선물 받은 레코드판을 들어봤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우리 집에 전축이 없다고, 아빠 사업이 망해 제일 먼저 전축을 팔아치웠다고 말할 수 없었다. 레코드판들을 책상 위에 나란히 세워두고 며칠 바라보았다. 부아가 나고 씁쓸해졌다. 왜 하필 레코드판을 선물해서 나를 서럽게 만드는 건지 원망했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힘들게 하는 건 선물도 아니야 울먹이며 레코드판들을 보이지 않게 깊숙이 치워버렸다.


박윤경 / 수줍던 그 때


내 마음도 모르고 우리 집은 점점 가난해졌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있었다. 걱정 같은 건 하지 않는 밝고 천진한 소녀이고 싶었다. 대문 밖을 나서면 원하는 이미지로 보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 작전은 성공했다. 점점 쌓여가는 레코드판이 전축은 당연히 있는 집의 딸로 보였다는 걸 증명했다. 현실과 다른 내 모습을 상상하고 연기했던 건 달라질 미래에 대한 꿈을 잃지 않아서였다. 그 이미지에 어울리는 선물을 주었던 친구들 덕분에 더 오래 부잣집 딸의 꿈을 꿀 수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레코드판을 세워두고 눈물을 뚝뚝 흘렸지만, 그래도 자존심을 지키며 집 밖에서는 밝게 웃고 천진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다. 때때로 현실이 슬프고 원망스러웠는데, 돌이켜 보니 그 시간을 견딘 나도, 나를 좋아해 준 친구들도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다. 모두 청소년기의 밝고 싱그러운 에너지 덕분이었다. 전축이 없어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서 슬프고 서러웠지만, 나는 거기에 든 마음을 들었다. 선물이 주는 다정한 힘을 얻었다. 그것은 인생 선물이었다.



청소년기 나에게 보내는 질문 :

사춘기 시절 혼자만 간직하고 싶던 비밀을 이야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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