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주씨 Nov 14. 2024

바람인형은 하트다

양파 3단 변신의 끝

바리스타 1급 필기시험이 개빡셌다. 책도 보고 문제도 풀어봤는데 정말 간신히 커트라인 60점을 넘었다. 내년부터 빡세진다고 하는데 약간 맛보기인가 생각도 했다. 내가 다니는 바리스타학원은 원래 실기 고사장이 가능한 곳이다. 그런데!!! 필기가 너무 급빡세진 탓에 실기인원이 모자라 고사장이 취소되었다. 뜬금없이 동래로 시험을 치러 가게 생겼다.


학원은 화, 목 주 2회. 시험 직전 수업 두 번 중에 화요일 수업을 일 때문에 빠졌다. 시외에서 돌아올 수가 없었다. 아직 스티밍도 불안정하고 3단 하트는 됐다 안 됐다 하는데 거기다 시험도 다른 학원으로 치러 가야 하는데 일이 꼬이는 것처럼 내 마음도 꼬이고 바쁘기만 하다.


목요일 수업에서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스티밍은 또 됐다 안 됐다 하트는 그려졌다 망했다를 반복했다. 어쩔 것인가. 묵묵히 연습을 했다. 선생님도, 같이 수업 듣는 분들도 혼자 칠 시험을 응원하고 연습도 많이 도와주셨다. 덜덜 떨지만 말자. 순서대로 하면 되지 않겠어? 뭐 안되면 시험 한 번 더 치면 된다.


생각보다 일찍 고사장에 도착해 물 한 병 마시고 고정 안 되는 잔머리가 거슬려 실삔도 하나 사서 꽂았다. 시험 영상을 보면서 마인드컨트롤 해보려고 애썼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나는 기계로 시험을 쳐야 하다니. 같은 기종으로 연습했지만 얘랑은 초면이니까 낯선 기계다. 시험 시간이 다가오자 문득 스님 한 분이 대기실로 들어오셨다. 잠시 뒤 우리는 인사를 하고 얘기를 했다. 스님은 이 학원에서 수업을 들으셨다고 한다. 혼자 애쓰던 마음이 타인과 이야기를 하자 은근은근 서서히 풀어졌다. 먼저 시험을 치시는 스님께 응원의 인사를 전했다.


내 차례.

최대한 덤덤한 척 차분한 척 그래도 후달린다. 동작에 군더더기가 붙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무사히 분쇄도를 맞추고 커피도 추출했다. 인사멘트도 차분한 척 찬찬히 다 말했고 스티밍만 그럭저럭 나와주면 되는데 되는데... 첫 번 째 카푸치노에 그럭저럭 안정적인 하트가 나왔다. 두 번째 하트를 그리려는데 분배해 둔 우유가 왈칵 덩어리 져서 쏟아졌다. 당황했다. 아... 씁... 망했네? 당황을 하고 나니 그다음 삼단하트는 어쩌나. 손이 덜덜덜 한다. 시간은 이미 잔여시간 3분 알림이 울렸고 숨을 몰아쉬고 커피를 내리고 스티밍에 들어갔다. 아... 스티밍 최악이네. 이렇게까지 못하지는 않는데. 버리고 다시 스티밍을 할 마음의 여유가 1도 없다. 망한 우유를 분배하고  삼단 하트를 그리려고 노력은 했다. 노력은 했는데 그게 글쎄 알리나 테무에서 사이즈를 확인 못하고 주문해서 받은 개업식날 가게 입구 바람인형 미니사이즈 같은 모양이다. 아... 단은 분리가 되는구나.. 그렇구나... 뒷정리를 포기하고 시험 완료 선언을 했다.


너무 부끄러웠다. 머릿속이 멍... 아이고.  내 뒤에 시험을 치는 분이랑 스님은 같이 수업을 들었다고 얼굴을 보고 가려고 한다고 하셨다. 대기실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좀 더 나눴다. 긴장된 마음이  대화로 스르르 풀어졌다. 어딜 가든 다정한 사람들의 친절이 너무 고맙다. 생판 처음 만나는 내게 인사를 건네주시는 다정이 이래 따숩다. 스님께 감사 인사를 건네고 나왔다.  첫 번째 기본 하트는 괜찮았는데 분쇄도는 잘 통과했으니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어쩌지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어느 순간 그래 그냥 기다리자, 아니면 말고. 계속 목은 말랐다.


시험 이후 수업은 두 번 남았다. 사람이 간사한 게 어쨌든 시험이 끝나고 나니 일단 마음은 너무 편했다. 좀 느슨하게 수업을 따라가다 보니 내 실수가 좀 더 선명해졌다. 다음엔 같은 실수는 안 하겠지 하는 마음도 들었다. 스티밍도 좀 더 안정되어 가고 바람인형도 좀 더 3단 하트가 되어간다. 진행형이다. 들쑥날쑥이라고.


마지막 수업 라떼아트 연습이 비교적 또렷한 삼단하트를 그렸다. 계속 연습하면 어지간해선 되는 날도 온다. 그 사실이 정말 피부에 닿는다. 그냥 해야지.

양파는 점점 하트로 발전 중 
마지막 수업 날 마지막으로 그린 3단 하트(화초 같지만 일단 3단이니까 하트다)


그리고 시험은 다행히 무사히 어? 이게 되네???  합격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그린 양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