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999년 11월, 나는 창원 공장 연구소에 처음 발을 디뎠다. LG전자 에어컨 사업부. 시스템 에어컨 제품 개발을 담당하게 된 신입 연구원이었다. 공장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설계 도면이 가득한 책상 앞에서, 나는 이 일이 결국 어디까지 나를 데려갈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답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입사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팀 내에서 묘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덕트형 시스템 에어컨의 신규 개발 건이었다.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 공급하던 제품은 낮고 납작한 형태였다. 천장 속 공간에 눕혀 넣는 구조, 이른바 '눕는 형태'의 유닛이었다. 그런데 호주 법인에서 계속해서 다른 요구가 들어오고 있었다. 폭은 좁고, 높이는 높게. 마치 책장처럼 세워서 넣는 형태였다. 개발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굳이?" 하는 분위기가 회의실 곳곳에 묻어났다. 호주는 분명 중요한 시장이었지만,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았다. 전용 사양으로 신규 개발을 감행하기엔 투자 대비 리스크가 너무 컸다.
결론은 하나였다. 직접 가서 보자.
출장 준비를 하면서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들여다봤다. 호주 주택 구조 관련 보고서, 현지 법인이 보내온 고객 불만 내역, 시공 사례 사진들. 그러나 자료 속에서 완전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숫자는 있었지만 맥락이 없었다. 이유가 없었다. 그 이유를 찾으러 가는 것이 이번 출장의 본질이었다.
시드니 공항에 내린 건 한국 시각으로 한밤중이었지만, 현지는 눈부신 오전이었다. 남반구의 햇살은 예상보다 훨씬 강렬했고, 공기는 낯설게 건조했다. 입국장을 나서며 나는 작게 심호흡을 했다. 첫 해외 출장. 설렘과 긴장이 묘하게 뒤섞인 감각이었다.
법인의 PM과 현지 직원 Tim이 기다리고 있었다. Tim은 악수를 건네며 특유의 호주식 억양으로 인사를 건넸다. "G'day, mate." 나는 순간 당황했다. 분명 영어였다. 그러나 내가 알던 영어와는 달랐다. 발음이 미끄러지듯 흘렀고, 몇몇 단어는 아예 처음 듣는 것 같았다. 미팅 내내 나는 귀를 곤두세우며 문맥을 조합해야 했다. 그날 저녁, 숙소에서 혼자 오늘 나눈 대화를 머릿속으로 복기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언어란 교과서가 아닌 현장에서 다시 배우는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본격적인 조사는 이틀째부터 시작됐다. Tim의 안내로 시드니 근교 주택가를 돌아다녔다. 처음 본 호주의 주택 지붕 아래 공간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한국식으로 상상하던 천장 속 공간이 아니었다. 호주의 전통 주택들, 특히 퀸즐랜드 양식과 페더레이션 스타일의 오래된 집들은 경사 지붕 구조를 갖고 있었다. 그 안쪽 공간, 소위 '지붕 공간(roof space)'은 폭이 좁고 높이가 제법 있는 형태였다. 마치 다락방처럼. 그곳에 덕트 유닛이 설치되어야 했다. 낮고 넓은 우리 제품은 그 구조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반대로, 호주 측이 원하는 좁고 높은 형태라면 경사 지붕 사이에 자연스럽게 들어맞았다.
퍼즐의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며칠간 나는 현지 시공업체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실제 설치 현장도 동행했다. 호주 영어에 귀가 익어가면서 대화의 밀도도 점점 높아졌다. Tim은 묵묵히 곁에서 통역을 보완해 주었고, 나는 메모를 멈추지 않았다. 단순한 치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호주 사람들이 수십 년간 지어온 집의 방식이었고, 그 방식에 제품이 맞춰져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의 확인이었다.
귀국길 비행기 안에서 나는 보고서 초안을 썼다. 건조한 수치들 사이에 현장에서 느낀 것들을 담으려 했다. 호주 주택의 지붕 구조, 시공 관행, 설치 환경, 그리고 현지 법인이 그토록 집요하게 요청해 온 이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본사로 돌아와 개발팀 회의에서 보고를 마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데이터가 아니라 현장이 설득했다. 이후 호주 전용 사양의 덕트형 제품 개발은 공식적으로 발의되었다.
그것이 내 첫 출장이었다. 그리고 그때 배운 것은, 제품을 만드는 일이란 결국 그것이 놓일 공간과 그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남반구의 눈부신 햇살과, Tim의 "G'day, mate"를 가끔 떠올린다.
출장 통보를 받던 날,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책상 서랍 속에는 몇 주 전부터 애지중지 보관해 온 티켓 한 장이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부산 경기장, 한국 대 폴란드. 티켓을 손에 쥐던 날의 설렘이 아직 가시지도 않은 참이었다. 경기장 분위기를 상상하며 혼자 괜히 들뜨기도 했었다. 그런데 출장이었다. 호주였다. 일정은 딱 그 경기 날짜를 가로질렀다.
미룰 수 있는 출장이 아니었다. 회사 일이 먼저였다. 나는 조용히 후배를 불렀다. 티켓을 건네며 "네가 대신 응원 많이 해줘라"고 했다. 담담하게 말했지만, 후배가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며 괜스레 코끝이 찡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그제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경기 당일이 찾아왔다. 시드니의 법인장님이 집으로 우리를 초대해 주셨다. 현지 법인 직원들과 함께 거실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법인장님 사모님이 준비하신 음식과 맥주, 분위기는 이미 한밤의 경기장 못지않았다. 누군가 챙겨온 맥주캔이 돌았고, 우리는 TV 앞에서 숨을 죽였다.
황선홍의 발끝에서 공이 터지던 그 순간, 거실 전체가 폭발했다.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국의 천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었다. 부산 경기장의 붉은 물결 속에 있지 못한 아쉬움은, 그 순간만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구 반대편 남반구의 거실에서, 나는 그 경기를 누구보다 뜨겁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