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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 느낌 그대로 Jun 21. 2023

태양 아래에서

걷기도 운동이 될 수 있다. 평소에 걷는 것보다 보폭을 더 넓게, 걷는 속도를 더 빠르게 하면 그 어떤 운동 못지않게 효과적인 운동이 된다. 나는 별다른 운동 없이 걷기만으로 5kg 정도를 감량했다. 체중 조절을 위해 걸은 건 아니었다. 한 한 시간 정도 걸으면 다리는 무거워지고 머리는 가벼워지는 상태가 되는데, 그때 느끼는 상쾌한 기분이 좋아서 걸었다.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계속 걸었다.


걷고 난 뒤에 오는 평온함은 그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는 감정이다. 마치 우주에서 지구를 보는 것 같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한없이 평화롭게만 보인다. 하지만 지구와 가까워질수록 인생은 고통이라는 부처님 말씀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서로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갈등이 된다. 이처럼 마음을 어지럽히는 상황에서 거리를 두고 싶다면 당장 걸으라고 말하고 싶다. 걷다 보면 어지러운 현실이 마치 자잘한 모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뜨거운 여름에도 걷기를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무작정 나가 걸으면 큰 병을 얻을 수 있으니 마땅히 주의해야 한다. 선크림은 필수다. 옷으로 가려지지 않는 얼굴, 목, 손등까지 꼼꼼히 선크림을 발라야 한다. 팔 토시와 다리 토시도 도움이 된다. 햇빛에 노출되는 피부 면적을 줄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산이 필요하다. 마른하늘에 우산을 쓰고 걷는 게 이상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우산을 쓰고 걷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아무리 챙이 넓은 모자를 쓰더라도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의 태양을 감당할 수는 없다. 우산만큼 완벽한 1인용 그늘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물건도 없을 것이다.


동네 하천 주변 산책로를 자주 걷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하천 주변은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걷기가 편치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내가 알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눈에 띄게 달라졌다. 보행로는 푹신푹신한 재질로 포장되어 걷기 편할 뿐 아니라 보행로 주변에 이름 모를 꽃들이 심어져 있어 눈을 즐겁게 해 준다. 누군가의 노고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흙바닥에 불과했던 길을 걷기 좋은 산책로로 바꿔준 건 모두 빨간 유니폼을 입고 있는 직원들 덕분이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하천 주변은 야생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의 기록적인 폭우와 기나긴 장마로 인해 하천 주변이 완전히 빗물에 잠겨 수영장처럼 보였다. 보이는 거라곤 우뚝 솟아있는 나무 꼭대기뿐이었다. 그것만이 그곳에 나무가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물이 빠지는 데만도 며칠이 걸렸다. 물이 빠지자 용케 버티고 있었던 키 작은 나무들이 보였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수풀은 힘 없이 누워있었다. 또 하천 바닥에 깔려있던 진흙이 강물과 함께 범람해 보행로가 엉망이 되었다. 빨간 유니폼의 직원들이 아니었다면 하천이 이토록 빠르게 원래 모습을 되찾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쓰러진 나무는 어디론가 치워졌고 누워있던 수풀은 잘려나갔으며 진흙은 강력한 수압에 씻겨나갔다.


기록적인 폭우가 아니더라도 하천은 직원들의 지속적인 손길을 필요로 한다. 산책로 주변에는 온갖 수풀로 가득한데, 이 식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내 키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풀꽃들이 그저 하늘을 향해 자란다면 모를까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눕기라도 하면 산책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된다. 이런 이유로 하천 주변의 제조 작업을 멈출 수 없다. 그분들의 손길이 없다면 이곳은 야생의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다.


선크림을 바르고 우산까지 써가며 한낮에 산책로를 걷다 보면 제초 작업을 하고 있는 빨간 유니폼의 직원들을 마주치게 된다. 그분들의 곁을 지나게 될 땐 혹여 내가 거슬리지나 않을까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누군가는 뜨거운 태양 아래 정신 건강을 위해 걷고 있는데, 누군가는 태양을 견뎌가며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때때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그 마음을 모르는 척하며 빠르게 지나쳤다.


저녁이 되어 선선한 바람이 불면 상황은 달라진다. 태양 아래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산책로는 선선한 바람을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큰 운동장이 나오는데, 최근에 깔끔하게 공사를 마친 터라 저녁 시간이면 늘 사람들로 붐비는 인기 장소가 됐다. 어떤 사람은 뛰고, 어떤 사람은 걷는다. 어떤 사람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어떤 사람은 자전거를 탄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이렇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건 태양 아래에서 일하던 사람들 덕분이라는 걸 알고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태양이 사라진 운동장에서 운동을 할 수 있는 건 주변 수풀이 다른 곳에 비해 더디게 성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 수풀을 잘라내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주기를 바랐다. 산책로와 운동장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쾌적한 상태로 유지될 수 있는 건 모두 태양 아래에서 일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태양 아래에서 걷다가 또다시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을 마주치게 됐을 때, 나는 몹쓸 상상을 하고 말았다. 저분들은 지금 선크림을 바르고 있는 상태인 걸까. 이렇게 따가운 햇빛을 견디기 위해서는 계속 선크림을 덧발라주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주머니 속에 선크림이 들어 있을까. 선크림을 발라야 하는데 아무도 바르지 않으니 눈치를 보며 바르기를 망설이고 있지는 않은 걸까.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다면 지금 쓰고 있는 챙이 넓은 밀짚모자로는 이 태양빛을 감당할 수 없다. 선크림으로 이어지던 생각은 이제 저분들의 어린 시절로 이어진다. 저분들은 태양 아래에서 일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학창 시절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은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게 될 거라는 저주 아닌 저주를 했었다. 저분들 중에 한 명쯤은 그런 소리를 들어보지 않았을까. 만약에 나라면, 누군가는 태양을 피해 서늘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일하고 있는 이 현실이 싫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선생님의 말대로 태양을 피할 수 있는 직업은 좋은 직업이고, 그럴 수 없는 직업은 나쁜 직업인 걸까. 태양 아래에서 일하느냐 아니냐 여부로 이렇게 간단히 ‘좋다’의 정의를 정해버려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나는 태양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며 혼란스러워진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표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이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말이 가진 위선적인 느낌이 아주 싫고 거슬린다. 과연 모든 직업이 가진 중요도가 똑같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부모라면 내 자식만큼은 더울 때 시원한 곳에서, 추울 때 따뜻한 곳에서 일하기를 바랄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그럴 것이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거라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엉망이 된 하천이 원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해 준 것,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저녁에 운동장을 달릴 수 있는 것 모두 한낮에 태양 아래에서 버틴 사람들 덕분이다. 감사하지는 못 하더라도 그분들의 존재만큼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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