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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 느낌 그대로 Dec 04. 2023

내 글은 이소라를 닮았다

이소라가 돌아온다. 그녀가 기나긴 침묵을 끝내고 드디어 마이크를 잡는다. 12월 8일에 열리는 이소라 콘서트 예매를 성공했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다'라는 진부한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뛸 듯이 기뻤다.


내 필명은 '처음 느낌 그대로'다. 이 필명의 출처는 이소라의 첫 번째 앨범 수록곡 '처음 느낌 그대로'다. 아마 내 필명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 필명을 쓰는 이유를 추측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처음 느낌 그대로' 쓰고 싶은 소망을 담은 필명이라거나, 감수성을 뽐내고 싶어서 상당히 오글거리는 필명을 지었다는 둥...... 하지만 이소라의 곡 제목을 그대로 가져왔을 뿐, 다른 어떤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 잠깐 다른 필명을 쓰다가 다시 '처음 느낌 그대로'로 돌아온 것을 스스로 운명이라 여기고 있다.


이소라는 자기 곡의 대부분을 직접 작사했다. 본인이 쓴 가사를 부르기가 편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여러 곡들 중에 '처음 느낌 그대로'를 필명으로 선택한 이유는......

남다른 길을 가는 내게 넌 아무 말하지 않았지 / 기다림에 지쳐가는 것 다 알고 있어
아직 더 가야 하는 내게 넌 기대할 수도 없겠지 / 그 마음이 식어가는 것 난 너무 두려워

이 가사가 너무 내 마음 같았다. 나는 직업이 있음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다. 바로 글 쓰는 일이다. 내 주변의 몇몇 사람들은 내가 글을 쓴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보여준 적은 별로 없다. 내가 쓴 글이 부끄럽지 않다. 다만 스스로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남다른 길을 가는'이라는 표현은 마치 내 삶을 대신 표현해 준 것만 같았다. 듣기로는 이소라 씨는 이 가사를 어쩔 수 없이 팬들을 모른 척해야 하는 상황에 빗대어 썼다고 한다. 꿈은 하나 되, 해몽은 다양하다. 이 가사의 표면적인 의미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원작자의 의도는 또 따로인 것이다. 물론 나는 이 둘에 해당하지 않는다. 역시 '남다른 길'을 간다.


내가 이소라처럼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이소라 씨가 한 대학 축제에 참석해 무대를 꾸몄다. 그때 원래 예정에 없었던 2집 앨범의 수록곡 '화'를 부른다. 이소라 씨가 '화'가 어떤 곡인지 직접 소개했다.

"이 '화'라는 노래는요, 혹시 '캘리포니아'라는 영화 보셨어요?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거기서 막 살인하는 장면들이 나와요. 너무너무 잔인하게. 그걸 보면서 아, 나도 사람을 죽이고 싶은 감정을 가질 때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만든 노래가 '화'라는 노래예요. 제가 이 락을 앉아서도 부를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릴게요."

아, 나는 이 모습을 보면서 이소라는 정말 타고난 가수이자 작사가구나 싶었다. 작사도 하나의 글쓰기다. 그 안에 여러 가지 감정을 담을 수 있다. 1집 앨범의 재즈풍의 노래를 2집 앨범에서도 기대하던 사람들은 '화'를 듣고서 '이게 뭐지?' 싶었을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소라 씨에게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추측건대) 수록곡의 순서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화'라는 노래 전에 수록된 노래는 '청혼'이다.

① 말할 거예요. 이제 우리 결혼해요. 그럼 늦은 저녁 헤어지며 아쉬워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② 난 뭐든지 너무 쉽게 화가 나. 그럴 땐 추악해. 아직도 치밀어 와.

달콤한 청혼의 가사를 들은 사람은 화가 치민다는 가사를 듣고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나는 곡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두 곡을 바로 이어 붙여서 배치한 게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본다. 내 식대로 표현해 보자면 이러한 곡 순서는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는 거다. '청혼'은 팬들이 기대하는 이소라의 모습이다. 그런데 '화'는 팬들이 보기에 전혀 이소라스럽지 않은 노래다. 곡 순서에 얼마든지 다른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음에도 '청혼' 다음에 '화'를 배치한 건 건 다분히 의도적이다. 듣는 이로 하여금 충격을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놀랐지? 난 이런 노래도 한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소설가 김승옥에게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나는 이를 조금 변형해서 이소라를 '감수성의 화신'이라 부르고 싶다. 이소라를 나와 같은 인간이라 볼 수 없다. 나는 이소라를 경외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글 쓰는 사람은 여러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깨우침을 주었지만...... 모름지기 작가라면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진득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게 안 된다. 이것 썼다가 저것 쓴다. 온탕에 들어갔다가 냉탕에 들어간다. 이렇다 보니 내 글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없다. 나는 이소라처럼 쓰는 게 좋다. 내 글은 이소라를 닮았다.


P.S

이번에 이소라 콘서트를 처음 가시는 분들을 위해 작은 조언 하나를 해보고자 한다. 부디 큰 기대를 하지 말아라(?).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나는 과거에 이 주제로 여러 번 글을 쓴 적이 있어서 구체적으로 쓰지는 않겠다. 이소라 콘서트 후기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너무 좋았다, 별로였다 이렇게...... 그러니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이소라 콘서트만 5번째인 나조차 당황할 때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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