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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 느낌 그대로 Jan 12. 2024

회사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최근 브런치 메인에 올라온 회사 생활에 관한 글을 읽었다. 글의 요지는 회사에서 대나무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갈대 같은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나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다고 본다. 어느덧 직장인으로 산 지 9년 차.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회사에 신입으로 입사하게 됐다고 가정해 보자. 신입으로서의 자세는 당연히 낮아야만 한다. 이에 대해서는 논쟁을 거부한다. 신입 사원이 대단한 경험 혹은 경력을 가지고 있어도, 새로운 회사와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통용되는 방식을 배워야만 한다. 대나무처럼 꼿꼿한 사람에게 선뜻 일을 가르쳐 주고 싶은 사람을 없을 것이므로 당연히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갈대처럼 살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신입 사원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한다. 자세를 낮추다 보니 어느새 내 자존감까지 깎여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성취감이나 책임감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좌절, 불쾌 등의 부정적인 감정에 자주 휩싸인다면 이 회사를 다니는 게 맞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최대한 객관적으로.


한 여성이 법륜 스님께 직장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 여성은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상담자의 고민은 악성 민원인 때문에 마음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때 법륜 스님은 여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럼, 그만둬!" 하셨다. 이에 당황하는 상담자. 스님의 말씀에 당황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님은 이어서 일이 힘들면 그만두면 될 일이지 그게 왜 고민이냐고 오히려 물으셨다. "그게 아니라....." 하고 반문해 보지만 스님께 통하질 않는다. 스님은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 하셨다.


이 사례를 나의 회사 생활에도 적용시켜 볼 수 있다. 회사 생활이 힘들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 그러나 내가 선뜻 그만둬야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필시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직장의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근무 여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다. 나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을 가까이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직장을 그만두지 못한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는 별로지만 처우가 좋다던가, 월급은 짜지만 통근하기 편하다던가 등등. 종이에 써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종이의 반을 나눠서 왼쪽에는 이 회사의 좋은 점에 대해, 오른쪽에는 나쁜 점에 대해 적어보자. 그 둘을 비교해서 부정적인 결과가 나온다면 회사를 그만두자. 뭐가 됐든, 나를 지워가면서까지 회사에 다닐 이유가 없다. 물론 긍정적이거나 애매한 결과가 나온다면 재고해 봐야 한다. 솔직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자.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은 내 삶을 책임져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만 하더라도 직장에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부모님은 내가 회사를 홧김에 그만둬버리면 어쩌나 전전긍긍하셨다.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나 그런 부모님의 소망이 오히려 나를 망칠 수 있다. 나는 너무 괴로운데, 주변의 바람 때문에 그 아픔을 참고 견뎌야 한다면 그건 지옥이나 다름없다.


회사에 남기로 결정했다면, 그리고 어느 정도 회사의 분위기에 적응했다면, 이제 대나무로 살아갈지 갈대로 살아갈지 결정하면 된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분위기는 이러저러하다. 나는 이에 반기를 들 것인가 아니면 순응을 할 것인가? 이 결정의 기준은 '명분'이다. 명분이 있어야 내 행동에 정당성이 생긴다. 내가 겪었던 일에 대해 털어놓으면 좋을 것 같다. 나는 회사에 입사하고 지금까지 근거 없는 소문에 시달리고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요일에 일하기 싫어서 연차를 낸다, 정서 불안이 있다 등등 전혀 확인되지 않은 괴소문이 퍼져있다. 특정 요일에 연차를 쓴 건 독서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였고, 마우스 클릭 몇 번 한 것 가지고서 정신 질환자가 됐다. 일도 힘든데 이런 이상한 소문까지 듣게 되니 괴로웠다. 그러다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주범을 찾게 되었고, 그 주범에게 명백한 근거를 들이밀며 왜 그런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냐고 물었다. 말도 되지 않는 이상한 변명을 들었고, 그 이후로 나를 괴롭히던 소문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부서에는 신입을 이상한 소문을 통해 조련하려는 일종의 문화가 있었다. 나는 고민 끝에 이 문화에 반기를 들었다. 물론 내가 소문의 근원을 찾아내고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를 했음에도 이상한 소문들은 주범으로부터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나는 그때마다 주범을 찾아가 똑같은 방식으로 대해주고 있다. 나 또한 이런 반복이 지겹고 힘들다. 그러나 나는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중요한 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명분'이 있느냐 여부다. 명백한 증거가 있을 때 따져야 한다. 또한 시시비비를 따져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녹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가끔 녹취까지 해가면서 따지고 있는 나를 볼 때면 마치 괴물이 된 것만 같다. 그러나 나의 자존감을 깎아가면서까지 직장 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내겐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따지기로 결정했다면 나의 표현을 최대한 정제해서 전달해야 한다. 감정이 앞서서 헛소리를 할 것 같다면 녹취를 하자.


마지막으로 회사가 나의 전부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나'라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나는 가족의 구성원이자, 친구들의 친구이고, 어느 모임의 참석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나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다수다. 나는 이토록 다양한데, 고작 회사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나를 망칠 수는 없다. 이상한 사람들이 나를 휘두르도록 내버려 두지 말자. 중요한 건 '명분'이라는 것도 명심하자.


일하고 싶어서 나를 안달 나게 하는 직장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은 몇 없다.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참아야 한다면 참아야 하고 참지 못하겠다면 떠나면 된다. 다만, 모든 결정에 나를 가장 우선시하길 바란다. 그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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