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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외국처럼 사는 방법?

유토피아는 없다.

2013년 처음 캐나다에 이민 올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줄리에게 "캐나다에 딱 10년만 살고, 들고 갔던 캐리어 그대로 다시 싸서 또 다른 나라에 가서 살아보자"라고 이야기했었다. 내년 되면 벌써 딱 만 10년이 된다. 그때 내가 말했던 '다른 나라'는 아마도 유럽의 어디쯤을 생각했을 테다. 그런데 막상 캐나다와 호주에서 외국생활 10년을 살고 보니 '이제 다시 한국 가서 살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디에 사느냐'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사느냐'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그립고, 이제는 친해질 만하면 떠나는 관계에 조금 신물이 나기도 한다. 부모님들은 많이 늙었고 조카들이 생겨났다. 나와 줄리 역시 점점 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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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다시 한국에 들어가 살 생각을 하면 그 빡빡한 생활을 또다시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역시 든다. 한국 사람들은 좋게 이야기하면 정이 많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오지랖이 넓다. '나'보다 '우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영어에서 'my' home(내 집), 'my' mother(나의 어머지)이라고 말할 때, 한국말은 우리 집, 우리 엄마 등 '우리'를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비슷한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엄연히 다르다. 결국 건강한 다수의 개인이 모여야지만 더욱 단단한 우리가 될 수 있는데, 한국에선 '개인'이 '우리'에 둘러싸여 너무 희생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에서도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사는 방법은 과연 없는 걸까? 몇 가지 생각나는 방법을 정리해 봤다.



첫째. 나쁜 미디어와 결별한다.

펜데믹 동안 재택근무로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적다 보니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그리워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뉴스를 많이 보았다. 아침에는 캐나다 현지 뉴스를 보고 저녁에는 한국 뉴스를 유튜브로 시청했는데, 그런데 한국 뉴스는 캐나다 뉴스에 비해 너무 자극적이라 보고 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작년 한국 방문 때, 가족 연중행사인 김장에 10년 만에 참석했는데, 김장하는 10시간 내내 가족들이 TV 뉴스 한 채널만 종일 틀어 놓고 듣는 것을 보고 깜작 놀랐다. 김장이 끝날 때쯤 되니 반복해서 나오는 TV 뉴스에 세뇌를 당한 느낌이었다. 자극적인 한국 뉴스는 중독성이 강하다. 뉴스로 잘못된 점은 지적하되 그것들을 고쳐 다시 함께 어우러져 사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데, 무언가 하나 잘못된 점을 찾으면 갈기갈기 찢어 다시 어디에도 발 붙이지 못하게 할 기세로 뉴스를 만든다. 뉴스라면 찰떡같이 믿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하고 편을 나눠 계속 TV 앞에 앉아 다음 뉴스만을 기다리게 한다. 사람들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자극적인 보도로 보는 이를 불안에 떨게 하는 건 언론의 올바른 역할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청률과 시청시간을 늘리려는 이런 꼼수에 넘어간다. 이런 나쁜 미디어와 당장 결별해야 스트레스 없이 살 수 있다.    




둘째.  Good bye 서울.


도시의 삶 역시 불필요한 정보들을 너무 많이 준다. 여행자로 찾은 뉴욕은 정말 멋진 도시다. 하지만 뉴욕에서 평생을 살라고 한다면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시도 쉴 틈 없이 들어오는 인풋이 많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볼 수 있는 수많은 광고와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 새로 생긴 식당과 커피숍, 옷가게 등, 어릴 때는 이런 것들이 삶의 영감을 주는 좋은 자극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지나치면 독이 된다. 새로운 정보에 대해 내가 저것을 진정 좋아하는가 충분히 탐구할 수 새 없이 또 다른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 버린다. 대도시가 주는 삶의 편리함, 화려함, 놀거리 등은 항상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그런 도시 안에서 진정 나답게 살기란 쉽지가 않다. 도시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내가 소비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진정 가치 있는 것인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서울과 대기업 근무 집착하지 않으면 더 많은 선택지가 생긴다. 한국은 작은 국토면적을 갖은 나라이지만 도시별로 특색 있는 지형과 문화를 가진다. 두세 시간만 이동해도 지역마다 특산품이 다르고 대표 음식도 다르다. 그리고 이것들을 잘 이어주는 대중교통도 발달되어 있다. 꼭 서울에 사는 것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셋째. 인기 상품을 버려라.


한국의 인구밀도는 세계 13위, OECD 가입 국가 중에서는 1위이다.(나무 위키 참고)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들이 자주 마주치는 환경에 살다 보면 '인기'와 '유행'에 민감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유행에 뒤처지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한다. 그런 나머지 정치마저도 너무 포퓰리즘으로 가고 있다. 선거와 정책결정을 인기투표처럼 정하려 하는 몇몇 정치인들을 보면 참 코미디 같다. 정치인은 좋은 정책을 선택하는 전문가여야 하고  우리 역시 각자 자신의 인생 정책을 결정하는 유일한 전문가이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도 내 몫이고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 또한 내 몫이다. 유행에 편승하지 말고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 요즘 세상에 직업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데 많은 중고등학생들의 꿈이 공무원이라는 것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진다. 오늘 밤 저녁 메뉴를 고르던, 구매할 상품을 고르던, 아니면 내 꿈을 고르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참고해야 할 것은 인기상품 순위 아닌 나의 지난 경험과 생각이다. 내가 아끼는 옷들, 자동차, 물건들. 내가 선택한 것들에 나의 취향과 이유가 반영되어 있다면 그것들을 눈으로 보거나 사용할 때마다 기분이 좋기 마련이다. 인기상품을 매우 저렴하게 구매했을 때 주는 만족감과는 그 지속 기간이 염연히 다르다.    




넷째, 신뢰를 쌓아 자신감을 갖는다.


명품은커녕 브랜드 제품 하나 걸치지 않았는데도 멋진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어김없이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것들을 선택하고 행했을 때 느끼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다. 현대인들의 삶이 고단한 이유 중 하나는 선택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참견하려는 시도들 또한 끊임없이 받는다. 광고와 사용후기, 주변 사람들의 권유 등 나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참 많다. 나의 지난 이민 생활은 운이 좋게도(?) 자료들이 별로 없었다. 캐나다 몬트리올은 한국 교민들이 적은 지역이라 관련 서적도 인터넷 자료도 적었다. 그래서 궁금한 것들은 내가 직접 도전해봐야 했다. 때론 실패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나 스스로를 잘 알수록 나의 선택에 자신감이 생기고 나를, 나의 선택을, 삶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다섯째,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랑한다.


예전에 친한 캐네디언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캠핑을 좋아하는 이유는 캠핑 후 집에 돌아오면 내 집의 편암함을 새삼 느끼기 때문이야." 누구나 변화 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오래 살다 보면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 그 일상을 떠나서야 우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은 우리 삶의 근간이다. 떠나보지 않아도 평소 나의 일상을 사랑할 수 있다면 더 훌륭하다. 일상을 억지로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일들로 일상을 채우면 된다. 매일 아침 운동 뒤에 느끼는 상쾌함, 좋아하는 DJ의 라디오를 들으며 시작하는 아침, 좋아하는 향의 바디워시로 샤워하기, 좋아하는 식물 키우기 등 행위를 했다는 자체 만으로도 즐거움을 주는 일상의 요소를 되도록 많이 찾을수록 일상이 즐겁다. 나는 또한 그런 일상을 최대한 많이 기록하려고 노력 중이다. 인스타그램에 내가 좋아하는 주제별로 계정을 따로 만들어 그날의 운동, 먹은 음식, 마신 맥주, 내가 키우는 식물과 자동차 사진을 짧은 글들과 함께 기록한다. 이런 관찰일지(?)를 SNS 안에 만들면 그때그때 느끼는 생각을 사진과 함께 정리하여 보관할 수 있고, 비슷한 취향에 공감하는 친구들과 소통을 할 수도 있다. 적게 보는 대신 더 깊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정보의 바닷속에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겐 조금 더 깊은 '자기애'가 필요한 것 같다. 현대인에게 자기애는 빠르고 거친 트렌드의 홍수 속에서 표류하지 않도록 꽉 잡을 수 있는 부표 같은 것이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타인도 존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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