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초급자에게는 가성비 절대 갑의 어학연수지
한국으로 돌아와 줄리에게 호주에 가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해 11월 결혼 날짜를 잡아둔 상태였다.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들렸는지 줄리는 정 살아보고 싶으면 혼자 가서 1~2년 정도 살다 오라고 했다. 나는 자초 지종을 설명했다. 줄리는 태어난 집에서 평생을 살았다. 흔한 이사 한번 해본 적이 없다. 결혼을 해서 집을 나오는 것조차 큰 도전일 텐데 호주에 신혼집을 차리자니 황당할 수도 있겠다.
그녀의 마음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 마음을 움직인 건 바로 어머님의 한마디였다. "그래도 아기 키우기에는 외국이 나을 거 같기도 해." 가벼운 이 한마디에 그녀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호주에 가기로 결정을 한 우리는 하던 사업을 정리했다. 줄리와 내가 4년 동안 잘 가꿔온 사업이었다. 하지만 방향이 정해지니 그 뒤론 속전속결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게 3월 말이었는데 바로 호주행을 결정하고 6월에 매장을 완전히 정리했다. 그리고는 7월에 필리핀으로 3개월 어학연수를 떠나기로 했다. 연수 후 11월 결혼식을 올린 뒤 바로 호주로 떠나기로 했다.
아무래도 지난 여행 때 언어적 한계를 많이 느꼈다. 여행으로 갈 때는 상관없었지만 가서 살게 된다면 언어가 결국 그곳에 얼마나 빠르게 정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키가 될 것 같았다. 유학원 몇 곳을 돌아다니며 상담을 받았다. 사실 나는 여행을 좋아했기 때문에 배낭여행자들이 좋아하는 인도도 가고 싶은 어학연수지 중 하나였다. 어학연수 또한 새로운 경험의 기회기 때문에 적절히 이용하고 싶었다. 그런데 찾아가 본 몇 곳의 유학원들은 대부분 두서없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곳만을 추천해줬다. 자신들이 거래하는 지역의 현지 어학원이었다.
나는 유학원 몇 곳에서 받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어학연수 관련 책도 사보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어학연수의 시스템을 공부했다. 필리핀, 인도 등의 어학원들은 그 운영자가 한국인으로 비슷한 기숙학원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어차피 비슷한 운영시스템이라면 필리핀도 괜찮은 옵션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학원이 추천해주는 곳들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을 선택하기로 했다. 가격 역시 대동소이 했는데, 특별히 내가 원하는 환경 딱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주중에 꾸준히 운동할 수 있는 수영장이나 헬스장 같은 시설이 학원 내에 있을 것. 둘째, 주말에 여행할 만한 곳이 어학원 주변에 많을 것. 평일에는 꾸준히 공부와 운동을 병행 하고 주말에는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는게 나의 계획이었다.
그때 운 좋게 청주 사창사거리에 있는 GCN유학원(현재는 감자 유학원)의 김민수 원장님을 만났다. 나는 평소 누군가의 공간에 처음 방문하면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한번 훑어보는데 원장님 사무실의 책들을 보니 나와 같은 책이 많아 처음부터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과의 상담 끝에 나는 필리핀 세부의 CG어학원이라는 곳을 선택했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휴양지 세부는 막탄섬 같은 리조트 타운부터 보홀이나 카모테스처럼 배낭여행 하기 좋은 곳도 주변에 많이 있었다. 내가 원했던 수영장이 어학원 마당 중앙에 있었고 작은 헬스장도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한시간씩 수영을 했다.
첫째. 저렴한 가격.
나 역시 처음에 어학연수하면 미국, 캐나다 호주 같은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들만 떠올렸다. 문제는 이 나라들은 수업료와 생활비가 상당히 비싸다는 거다. 하지만 필리핀이나 인도 등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은 국가들은 낮은 인건비 덕에 수업료와 생활비가 매우 저렴하다. 실제로 캐나다와 호주에서의 학비만으로도 필리핀에서는 수업은 물론이고 먹고 자는데 드는 모든 비용의 충당이 가능했다.
둘째. 높은 1:1 수업 비중.
필리핀 어학연수는 저렴한 가격에도 1:1 수업의 비중이 높아 빠른 회화실력 향상에 매우 유리하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선생님들의 급여 덕분에 필리핀에서는 하루 수업의 절반이 1:1로 이뤄진다. 회화라는 것은 본래 많이 듣고 많이 말해야 빨리 느는데, 한 반 학생이 4~5명, 혹은 그 이상인 것과 1:1 수업은 정말 천지차이다. 평소 수줍움이 많은 사람들도 타인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선생님과 단둘이 말하기를 연습할 수 있어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셋째.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필리핀의 어학원들은 숙식 제공에 청소와 빨래까지 해주니 학생들은 정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다. 하루 세끼 한식을 제공하고, 빨랫감을 모아 세탁 직원들에게 가져다주면 세탁 후 다시 개어서 내 방에 가져다준다.
넷째. 한국과 가까운 거리
한국에서 필리핀은 비행 시간이 약 4시간으로 그 거리가 가깝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물론 처음 외국에 장기 체류해보는 사람에게는 먼거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급한 사정이 있다면 주말에 잠시 한국에 다녀오는 것 또한 고려해볼 만큼 가까운 편이다. 덕분에 시차도 거의 없다는 것 또한 매우 큰 장점이다.
다섯째. 따뜻한 기후
필리핀에는 겨울이 없다. 물론 우기가 있고 현지인들은 그 사이의 날씨 차이를 느끼지만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사람들이 보기에는마치 한 계절처럼 느껴진다. 대부분의 어학원은 냉방시설도 잘 되어 있어 무더운 날에도 더위 걱정은 없다.
이 다섯 가지 이유만으로도 필리핀은 영어 초급자에게는 제일 좋은 가성비 어학연수지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3개월의 필리핀 어학연수는 나의 영어공부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수영을 하면서 체력도 좋아졌고 살도 빠졌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주변 여행도 많이 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내 생에 가장 행복한 기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