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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만큼 여유로운 국민성의 필리핀

그들 특유의 여유, 그 진원지는 어디일까?

호주 여행 후 약 3개월 만에 찾은 필리핀, 그곳에서 만난 '필리피노(필리핀 사람들을 일컫는 말)'들에게서도 '오지(호주인들을 일컫는 말)'들에게 느꼈던 비슷한 종류의 '여유'가 느껴졌다. 한 국가의 경제 수준을 평가하는 경제지표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GDP는 호주가 필리핀의 약 다섯 배에 달하고, 1인당 국민총소득을 나타내는 GNI의 경우 호주가 약 15배가 높다. 필리핀 국민 개인이 1년 동안 벌어들이는 소득은 호주는 물론이고 한국보다도 많이 낮은 편이다. 그런데도 느껴지는 이 필리핀 사람들 특유의 여유는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영어 어학연수를 위해 3개월 동안 머물 필리핀의 대표 휴양지 세부는 1년 내내 온화한 날씨로 한국인들이 신혼여행이나 휴가로 많이 찾는 곳이다. 나는 그들의 여유 진원지를 바로 이 날씨라고 결론 내렸다. 필리핀은 보통 12월부터 5월까지를 건기라 하고, 6월부터 11월까지를 우기로 보는데 연평균 기온이 29도로 일 년 내내 기온의 변화가 거의 없다. 우기라 해도 한국처럼 하루 종일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스콜'이라고 하는 강한 소나기가 하루 몇 차례 쏟아지는 식이다. 바다의 수온도 연중 27~30도 정도로 수영이나 해양 액티비티를 즐기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다. 이런 기후적 특성 때문에 필리피노나 호주인이나 심적 여유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매년 겨울이 오기 전 곡식을 저장하고 옷가지와 집을 정비하는 등 추운 날씨를 대비해야 했던 우리의 조상들은 필연적으로 항상 부지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성향이 DNA에 깊게 박힌 우리는 일 년 내내 온화한 날씨를 가진 나라 사람들의 여유를 좀처럼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당시 나는 무더운 여름을 매우 싫어했는데, 필리핀의 어학원이나 쇼핑몰, 한국인이 자주 가는 식당 등은 에어컨이 잘 보급되어 있어 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지는 못했다.(오히려 호주는 전기세가 비싸 일반 가정에서 에어컨을 시원하게 사용하기가 어렵다.) 필리핀 대부분의 어학원은 주말에만 외출이 가능했기 때문에 주중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주말에만 외출하여 세부 근교를 여행했다. 생필품의 가격은 대체로 저렴하고, 한국 제품도 쉽게 구매할 수 있으니 3개월 이상 머물 예정이면 현지에서 구매하는 게 좋은 방법이다. 



신기한 올드카와 익숙한 한국 브랜드 자동차들이 뒤섞여 있는 필리핀 세부의 거리 풍경은 꽤나 이국적이다. 교통 환경상 직접 운전하는 게 어려워 대중교통 이용법에 익숙해지는 게 좋다. 한국인들은 주로 택시를 이용하는데, 택시가 갈 수 없거나 통행이 적은 좁은 길에서는 트라이시클을 이용하면 된다. 트라이시클은 오토바이나 자전거에 여러 사람을 태울 수 있도록 개조한 교통수단인데,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트라이시클의 경우 최대 6명까지 탑승이 가능하다. 한국인들에게는 팁을 요구하거나 거스름돈이 없다는 이유로 바가지를 씌우기도 한다. 한국돈으로 환산해 보면 큰 액수는 아니지만 한국인들에 대한 안 좋은 버릇을 심어줄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것이 좋다. 추월을 하려고 차 사이로 깜빡이 없이 끼어들거나 3차선 도로에서 차가 네 줄, 다섯 줄로 달리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본다. 그런 상황에서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지만 정신건강을 위해선 신경을 끄는 것이 좋다. 필리핀 생활 초반, 어쩌다 택시 조수석에 앉게 되면 나도 모르게 오른발로 꼼지락꼼지락 브레이크를 밟고는 했다.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기 때문에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고 특히 바비큐 요리가 일품이다. 값도 저렴하고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아 현지 음식을 시도해 보는 일이 즐겁다. 날씨가 덥다 보니 맥주를 많이 찾게 되는데, 냉장 시설이 잘 안 되어 있는 곳은 얼음을 타주는 곳도 있다. 간혹 이 얼음에 세균이 있어 배탈이 나는 경우도 있으니 예민한 사람은 주의가 필요하다. 



단순하게 필리핀을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경험한 필리피노들은 에너지가 넘치는 선한 사람들이었다. 기본적으로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좋아하고 화창한 날씨와 음악을 즐길 줄 안다.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언제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필리핀에서 영어공부와 외국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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