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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ty noodle Feb 27. 2023

새침한 중년 남자가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는 싱거운 말들

무라카미 하루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한다. 상상 속의 이야기나 남 얘기 말고 자기가 직접 겪거나 곰곰이 고민한 흔적이 드러나는 이야기들이 좋다. 그래서인지 어떤 책 종류를 좋아하고 자주 읽는지 물으면 산문이나 에세이라고 대답한다. 


특히 시인이 쓴 산문이라던가 소설가가 쓴 에세이를 좋아하는 편인데, 그중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참 좋아한다. 그가 쓴 소설은 정말 못 읽겠는데 에세이는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인 것이 신기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온도차가 확실한, 독특하고 매력적인 글을 쓰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아무튼 나는 술술 읽히는 글, 어깨에 힘 빼고 쓴 것 같은 글을 좋아하는데 그의 에세이들은 확실히 그렇다. 힘을 빡 주고 쓴 글이 아니라고 해서 읽기에 쉬운 글이라고 해서 감동이 없는 것도 아니다. 분명 교훈을 주려는 의도로 쓴 글이 아닌 것 같은데 때론 가슴에 지잉-하고 울림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점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내가 그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읽고 나면 "엥 이게 뭐야?"하고 힘 빠지는 웃음이 푸스스 새어 나오는 글들이 뻔뻔하게, 그것도 잔뜩 들어있기 때문이다.   


조용한 사람이 가만히 있다가 한 두 마디씩 던지는 말에 와르르 웃음이 터질 때가 있는 것처럼, 책날개에는 약간 새침하고 뚱한 표정의 프로필 사진을 실어놓고 천연덕스럽게 싱거운 소리를 진지하게 또는 약간은 억울하다는 듯이 풀어놓은 것이 내 웃음 코드를 제대로 저격한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가 유독 그렇다.  


며칠 전,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온몸이 팽팽하게 긴장된 밤에는 샤워를 싹 하고 헐렁헐렁한 박시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책장을 둘러보다가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절반 정도 읽으면서 피시식 웃다 보니 몸도 마음도 흐물흐물해져서 흡족한 기분으로 잠을 잘 수 있었다.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여기에 수록된 글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상당히 문제가 있다>라는 글이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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