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침 운동을 나갔다. 어제 회식 중에 러닝 이야기를 해서 그런가, 갑자기 달리기를 하고 싶었다. 1킬로만 달리자, 생각했고 딱 1킬로를 뛰었다. 8분이 걸렸다. 어휴, 점점 체력이 엉망이 되어간다. 한창일 때는 1킬로를 6분 대에 달렸는데 2분이나 늦어지다니. 게다가 고작 1킬로를 뛰었을 뿐인데 금세 몸이 지친 것이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 날씨가 살짝 쌀쌀했지만, 적당히 달린 몸은 걷기에 딱 좋게 데워져 있었다. 다행이었다. 햇빛도 좋았다. 날도 풀렸고, 햇빛이 좋은 날이니 오늘 같은 날은 우연히 고양이들을 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귀여운 고양이를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같이 놀고 싶었다. 후미진 곳들을 샅샅이 구경하며 걸었다. 안 그래도 느리게 걷는 사람인데 평소보다 훨씬 더 느리게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고양이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0 고양이 발견, 이라고 생각하니 작은 아쉬움과 실망스러움이 마음속을 지나갔다. 하지만 그 마음에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나는 감정에 잠시 머무는 일이 어려우니까. 어떤 감정(특히 불편하고 원치 않는 감정)을 느끼면 머릿속으로 빨리 이유를 찾아서 후다닥 마음을 달래주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여전히 날이 추운가? 아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다녀서 어디 다른 곳으로 사는 곳을 옮겼나?
고양이를 만나지 못한 마음이 생각보다 꽤나 헛헛했던 걸까? 내 머릿속은 또 다른 결의 생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 츄르도 없고 생수도 없잖아. 고양이를 만나도 괜히 실망만 시킬지도 모르지. ‘넌 뭐 가져온 거 없냐’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맛을 쩝쩝 다시는 고양이 앞에서 어쩐지 죄인이 된 기분만 느낄지도 모르지. 다음에 나올 때에는 츄르와 깨끗한 물을 챙겨서 나와야겠다. 합리화하기.
머릿속으로 혼자서 시끄럽게 떠들다 보니 미련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랬더니 그때 갑자기 시야 안으로 들어오는 꾀죄죄한 커다란 오레오 덩어리 하나. 어떤 구조물 끄트머리에 꽤나 아늑하고 안정적인 자세로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꼭 이런다. 뭐든 간절히 바랄 땐 눈에 안 들어오다가, 마음을 내려놓고 정리를 하면 그제야 꼭 눈앞에 나타나서 다시 마음을 흐트러뜨린다. 하지만 그럼 또 어때, 고양이라면 용서가 된다.
럭키 냥이다... 하면서 근처로 살금살금 조금씩 거리를 좁히며 다가갔다. 구조물이 있어 더는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고양이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고,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내가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던 걸까. 기쁜 마음으로 나도 같이 눈인사를 했다. ‘나 여기서 너 좀 지켜볼 테니까 내키면 가까이 와줘!’라고 텔레파시를 보냈다. 고양이는 내 존재에 위협을 느끼진 않아 보였지만, 그렇다고 가까이 올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내게 츄르도 생수도 없다는 사실을 미리 알아차린 걸까.
또다시 고양이를 가까이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내 몸은 빠르게 반응했다. 갑자기 그 녀석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흠, 눈에 염증이 있는 걸까? 뭔가 빨갛게 부은 것 같기도 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것 같아. 괜히 내가 만졌다가 감염이 더 심해지거나 하면 어쩌지? 게다가 꾀죄죄함이 생각보다 더 심하잖아? 여기는 만지고 나서 손을 씻을 곳도 없는데, 오히려 만졌다가는 서로 불쾌해질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다시 마음이 차분해졌다. 안녕, 나 갈께 하면서 마음속으로 인사를 하고 걸음을 옮겼다. 고양이는 내가 가거나 말거나 속 편하게 눈을 꼭 감고 햇빛을 만끽했다.
관찰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만지고 싶어,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라는 마음에 사로잡히는 일, 마음이 좌절되면 곧바로 차갑게 마음이 굳어버리는 일, 굳어진 마음에 머무르지 못하고 얼른 그 마음을 정리하려고 덜 상처받을 이유를 찾아버리는 일, 뒤늦은 관찰을 마치고 ‘아, 또 내가 너무 서둘렀네’라고 깨닫는 일, 그리고 왜 나는 매번 이렇게 쉽게 무언가를 판단하고 열망하고 실망해 버리는 걸까 하고 자책하는 일.
단지 길에서 만난 고양이를 대할 때뿐만 아니라, 사람을 만나 관계 맺는 방식도 이것과 꽤나 닮아있어서 어쩐지 마음이 씁쓸했다. 어떻게 해야 나는 천천히 누군가를 알아가고, 알아간 뒤에야 그 사람을 마음에 담아두고, 우정이든 사랑이든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 나는 많은 것에 쉽게 열광하고 쉽게 식어버리는 사람일까.
또 시끄러운 머릿속 생각들을 짊어지고 집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이번에는 근처 잔디밭에 아까보다 조금 더 매끈매끈한 털을 가진 날렵한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방금 전까지 생각한 것도 까먹고 나도 모르게 고양이가 있는 근처로 다가갔다. 이번에는 내리막길이 있어 그 애가 있는 곳의 가까이까지 갈 수 없었다. 미끄러질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고양이를 구경하고 만지고 싶은 열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가까이 다가가더라도 그 아이가 나와 가까워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기껏 강물과 햇볕을 만끽할 최적의 장소를 찾아내서 쉬고 있었더니, 웬 거대한 고양이가 나타나서 자신의 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 애가 곁을 내어주고, 자신의 몸을 만질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고 해피 엔딩인 것도 아니다. 내가 놀아줄 수 있는 시간과 그 애가 놀고 싶어 하는 정도가 다르다면 어쩔 것인가. 나는 이후 일정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괜히 나타나서 먼저 놀자, 놀자 흥을 돋운 사람이 홀랑 그 애를 두고 떠나가버린다면.
고양이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벤치가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그 아이를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그 애는 아까의 오레오보다는 예민한 성격의 고양이처럼 보였다. 끊임없이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며 내가 안전한 존재인지, 자기가 있는 곳이 안전한 곳인지 경계를 늦추지 않고 탐색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니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것이 잘한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큰 움직임 없이 그저 자신을 지켜보고만 있자, 그 아이는 풀 속에 몸을 낮추거나 강물 쪽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하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즐겼다.
얄쌍하고 자그마한 고양이의 귀여운 얼굴을 조금 더 보고 싶었지만, 그 아이는 뒷모습이나 풀 사이로 가려진 얼굴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기다리기로 마음먹은 사람, 멀리서 바라보기로 마음을 정한 사람. 그냥 차분하게 앉아서 그 아이가 혼자서 노는 모습을 조금 더 지켜보았다. 달리기로 데워진 몸이 식은 지는 한참이었다. 슬슬 일어나서 가야겠다, 몸을 일으키려다 새삼 고양이의 뒤통수가 참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