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 우리는 과연 몇 살에 가슴이 진정 원하는 꿈을 가지게 되었을까. 아이들에게는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스스로가 걷는 곳은 꿈의 길이 아니며 아직 자신조차 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꿈의 소중함은 누구나 알지만 그것을 찾고 그 길을 걷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적 이유와 사회적 여건이 쳇바퀴 돌듯 반복된 일상을 살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의 시간을 가질 새도 없이 시험과 입시를 위해, 직업을 위해 꿈을 생산해 내야 하는 내몰림. 물론 조금씩 변화의 바람을 맞이하고 있지만 무엇이든 빠르게 성취해야 함이 스스로의 위치를 높여주고 생활의 안정을 줄 수 있다는 가치는 여전히 사회에 만연해 있다.
‘라헐 판 코에이’의 소설『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에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난쟁이 꼽추, 바르톨로메의 삶이 그려진다. 열 살이 되어도 여섯 살 동생보다 작은 체구로 하루해가 지는 것만 바라보던 그는 감히 평범한 일상조차 꿈꿀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 그도 그럴 것이 중세에는 기독교적 가치관에 따라 난쟁이를 하늘로부터 벌 받은 사람으로 취급하여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했기 때문이다. 두발로 온전히 걸어갈 수 없기에 남의 눈을 피해 손발을 사용해 한 마리 작은 개처럼 걸어야 했던 바르톨로메. 그는 결국 철없는 공주의 눈에 띄어 궁전에 들어가 ‘인간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기에 자립해 살아갈 수 없는 그는 동료 난쟁이들처럼 갑의 프레임 안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며 안정된 삶을 구걸해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보호 아래라면 사회적 비난의 화살만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암흑 속에 살 것 같던 그에게도 운명처럼 조력자들이 나타난다. 그로 인해 바르톨로메는 자신의 숨겨진 재능의 씨앗을 발견하게 되고 수많은 난간 속에서도 심장의 두근거림을 향한 작은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꿈은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반드시 직업과 연결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시선과 삶에 견주지 않고 오롯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 내 존재 가치를 높여 주는 것 모두가 우리의 꿈이 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시행된 자유학기제가 자유학년제로 발전해 가고 있다. 교육부는 이것을 ‘중학교 과정 중 한 학기 또는 두 학기 동안 지식‧경쟁 중심에서 벗어나 학생 참여형 수업을 실시하고,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활동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제도’라고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 역시 불안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사교육의 조장을 가져오는 등 아직 많은 우려를 안고 있지만, 보다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지원을 통해 시험의 무게에서 잠시 벗어난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데 발판으로 삼을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실현 가능성을 이리저리 가늠하다 보면 어느새 꿈의 날개는 힘을 잃는다. 그 가냘퍼진 날개가 마른 잎처럼 떨어져 바람 속에 흩어지기 전에 내 마음을 깨워 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얻어진 행복 에너지를 이웃을 위한 나눔의 삶으로 승화시켜 나간다면 인생의 가치와 행복은 단단해지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온도는 조금 더 따뜻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