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벽을 마주하더라도

by 유재은


운전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길을 만날 때가 있다. 유난히 가파르거나 너무나도 좁은 골목길. 비와 안개, 혹은 어둠으로 가려져 송골송골 땀이 흐르게 하는 길에서는 입이 바짝 말라도 브레이크를 밟으면 안 된다. 긴 숨 한 번 내 쉬며 핸들을 단단히 부여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제 길을 향해 달리다 보면 때로는 선물 같은 아름다운 길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굴곡진 길을 이야기하자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란다고 말한다. 때로는 자신만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 속에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하릴없이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더는 나아갈 수 없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때도 있다. 삶에서 맞닥뜨린 현실의 거대한 벽이 그 끝이 보이지 않아 암담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이 또한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막상 직접 마주하면 하루를 버티기도 힘들다.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에서 정호승 시인은 영화 <해리 포터>에서 마법 학교 입학을 위해 킹스크로스 역 벽을 뚫고 들어가는 장면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조앤 K. 롤링'은 어린 딸과 함께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암담한 인생의 벽 앞에 부딪혔지만 '해리 포터'를 씀으로써 벽을 문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벽은 또 하나의 세상을 열어주는 출구가 될 수 있다.”라는 작가의 혜안이 가슴에 깊이 내려앉는다.


우리는 보통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벽 앞에 서면 되돌아가거나 애써 넘으려고 하다가 결국 지쳐 그대로 무너져 버린다. 그런데 그곳에 자신만의 문을 만들어 새로운 길을 열어 간 사람들도 있다. 현실에 대한 불평으로 애면글면하며 살아가기보다 삶의 희망을 향해 더욱더 단단해진 마음 근육을 갖게 된 사람 중 ‘패트릭 헨리’가 떠오른다.


『나는 가능성이다』라는 책에서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그는 사지가 펴지지 않는 관절과 척추장애, 게다가 ‘무안구증’이라는 심각한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여느 사람이었다면 캄캄한 삶 속에 자신을 가둬 놓았겠지만 그는 결코 좋아질 수 없는 것들에 얽매여 실제로 '좋아질 수 있는 것'들을 잃지 않았다.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향한 끊임없는 열정과 노력으로 결국 대학에 합격하고 트럼펫 연주자가 되는 꿈을 이룬다.


오늘 가고 있는 내 굽은 길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않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한여름 무더위처럼 숨 막히는 현실의 길도 걷다 보면 어느새 조금 완만해진다.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던 전쟁 같은 일상도 긴 세월 속에 풍화되면 그 무거운 무게를 덜어낼 수 있다. 굽은 길의 끝이 새로운 시작의 길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묵묵한 발걸음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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