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던 한 예술가가 바라보았던 보름달의 사진 때문일까.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오르고 까만 스크린이 될 때까지 그 어떤 관객도 자리에서 쉬 일어나지 못했다. 영화관에 불이 환하게 켜진 후에야 비로소 조용히 자리를 뜨는 사람들의 뒷모습. 그 속에는 그를 향한 애도의 마음이 담겨 있는 듯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짧게나마 그를 향한 작별 인사를 건네지 않았을까.
류이치 사카모토.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음악가이건만 나는 그가 세상을 뜬 후에야 비로소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것도 2년이 지나고 나서야 말이다. 검은 책표지에는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묵직하게 내려앉는 제목과 낡게 부서진 피아노가 있었다. 영화를 보며 그 피아노에 담긴 사연을 보다 깊이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뉴욕 자택 마당에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피아노였다. 그 실험을 시작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모습과 시간에 따라 그의 삶처럼 천천히 사그라져가는 피아노의 모습은 아린 마음을 자아냈다.
한 예술가가 세상과의 작별을 하기까지의 3년 6개월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온 밤, 다시 책을 꺼내 들었다. 사실 처음 책을 보았던 작년에는 끝까지 읽지 못했다. 제목이 주는 슬픔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익숙한 영화 음악은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가 누구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또한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할 때서야 큰 딸이 그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로 마음의 평화를 찾을 만큼 좋아하는 영화 음악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모두를 영영 모르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른 이들처럼 생전에 그를 알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고작 몇 차례 일어날까 말까다. 자신의 삶을 좌우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소중한 어린 시절의 기억조차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많아야 네다섯 번 정도겠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을까? 기껏해야 스무 번 정도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회가 무한하다고 여긴다."
<마지막 황제>에 이어 음악을 맡았던 영화 <마지막 사랑>에서 원작자인 폴 볼스가 했던 말이라고 하는데, 영화를 통해 류이치 사카모토의 내레이션으로 들으니 문장 하나하나가 더욱 짙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얼마 전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문득 사랑하는 딸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았는데, 슬프게도 매 순간 기적과도 같았던 환희가 또렷한 기억으로 남은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만은 깊은 감정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순간들은 휘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귀한 시절을 오래 남기고 싶어 싸이월드에 영상과 글로 기록해 두었는데 결국 그것도 사라지고 말았다. 나이가 들수록 현재의 기억도 희미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다 분명히 인식하게 되니 더 늦기 전에 하나씩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성인이 된 딸들이 함께 살고 있는 이 순간들이 어린 시절 딸들이 준 행복과 기쁨만큼 소중하고 귀한 것임을 깊은 마음으로 느끼는 삶의 계절이다. 언젠가 하나둘 떠나면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대견하면서도 무척이나 슬플 거라는 걸 알기에 지금의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것은 남편과의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먼 미래가 되리라 믿고 싶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작별하기 전까지는 소소한 시간을 나누고 서로의 생을 다독이며 살아가고 싶다.
긴 여운으로 남은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를 본 후 대학 시절 함께 즐겨 찾았던 곳에 갔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 결혼 후 아이들과도 여러 번 갔던 창경궁으로 향했다. 창경궁의 야경은 처음이었는데 깊어가는 봄 정취와 고요함 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대학로로 돌아오는 길에는 1992년부터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단골 분식집이 반가워 주저 없이 들어갔다. 샐러드 김밥과 라볶이. 그 시절 5천 원도 안되었던 메뉴가 뚜벅이 데이트 때의 최애 음식이었기에 기대하며 먹어보았는데 그때의 맛이 나지는 않았지만 30년이 훌쩍 지난 우리가 다시 그곳에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기분이었다.
세상과의 작별은 마음이 시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작별은 가슴이 저리도록 슬프다. 밤새 아무 일 없이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가 가슴을 내려앉게 하고, 표지와 제목만으로도 슬픈 <엄마, 사라지지 마>라는 절판된 책을 도서관에서라도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삶의 마지막이 담긴 글들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담은 글에서 마음이 멈추고 아팠던 20대를 지나 30년이 흐르니 세상과의 작별에 아릿하고 아득해진다. 그래서 더욱 깊은 울림으로 남았나 보다. 병마와의 싸움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음악을 놓지 않았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꿈을 향한 마음과 야위어 가는 몸으로도 장난스럽게 웃던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