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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종모종 May 03. 2023

당신이 원하는 서점

무등일보 청년칼럼 2023. 05. 02.

지난 3월 14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책과사회연구소가 함께 개최하는 <도서정가제 개선 방향 공개토론회>가 유튜브를 통해 중계됐다. 도서정가제에 대해 3년 주기로 재검토하도록 규정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따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연구용역으로 책과사회연구소에서 연구 중인 <도서정가제 영향 평가 및 개선방안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된 토론회였다. 독립서점이자 독립출판사를 운영하는 입장인지라 사전등록까지 해가며 접속한 유튜브 화면을 보고 있자니 점점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왼쪽에는 대다수가 도서정가제에 찬성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영향을 이야기하는 패널들의 화면이, 오른쪽에는 도서정가제가 소비자 기만이라며 온갖 비속어가 난무하는 채팅창이 동시에 송출되는 불협화음이라니.


책과사회연구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독자(구매자)의 46.2%가 현행 도서정가제에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라고 나와있는데, 채팅창의 10의 9는, 아니 100의 99는 전혀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사전등록까지 해가며 토론회 내내 비속어를 남발할 만큼 독자(구매자)들을 화가 나게 만들었을까.


우선 도서정가제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도서정가제란 동일한 책은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제도이다. 2003년 처음 시행되었고 그간 여러 차례 법 개정이 이루어져왔다. 2014년 개정 이후 3년마다 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되어 있으며 문체부는 오는 11월까지 현행 도서정가제의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여러 복잡 미묘한 사항들이 있지만 매번 도서정가제가 논란인 이유는 책의 ‘할인율’일 것이다. 현재는 정가의 10% 이내 직접 할인과 마일리지 등의 간접 할인 5%를 포함해 15%를 넘게 제공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발행 1년이 경과한 도서에 대해서는 재정가 책정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지만 인상되는 사례가 많다. 책의 생산유통 영역인 저자, 출판사, 서점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도서 시장을 원하고 소비자는 보다 저렴한 가격을 원한다. 채팅창에서도 충분히 확인했지만 올해 초 헌법재판소에 도서정가제 헌법 소원이 제기될 만큼 소비자 사이에서 도서정가제는 무척이나 뜨겁다.


생산유통 영역에도 속하지만 동시에 소비자에도 속하는 입장으로서 저렴한 금액에 책을 구입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 역시 어릴 적 대형서점을 지날 때면 50%, 70%, 90% 할인율이 높은 테이블에 손이 더 많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원하는 물건을 조금 더 저렴하게 사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다면 예전대로 책값을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하면 과연 지금보다 도서 시장이, 독서 시장이 좋아질까?


앞서 이야기한 공개토론회에서도, 올해 초에 진행된 국민참여 토론에서도 도서정가제에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지역서점’ 혹은 ‘독립서점’이었다. 한쪽에서는 도서정가제 덕에 소규모서점이 증가한다고 말하고, 한쪽에서는 외려 병들게 한다고 말한다.


소규모서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도서정가제가 ‘그나마’ 서점 운영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형·온라인 서점의 엄청난 종수 보유나 마일리지, 무료배송, 쾌적한 반품 시스템을 따라갈 수 없기에 감히 그들을 경쟁상대로 보지도 않는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소규모서점은 부러 찾아주는 고마운 독자(구매자)의 선의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도서정가제가 없어도 문제가 없을까? 지금 잠깐은 그러한 선의에 버틸지 몰라도 결국 가격 경쟁에서 처참하게 밀려 ‘그나마’ 증가했던 소규모서점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대형마트나 프랜차이즈의 쾌적함과 동네슈퍼의 따뜻함은 결국 경쟁조차 되지 못했듯이 말이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 도서정가제로 ‘그나마’ 버티고 있는 본인 포함 이웃하는 서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상황은 조만간 다가올 현실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선뜻 말하기 쉽지 않다. 결국 소비자의 선택이다. 규격화되어 쾌적하고 편리하고 저렴한 서점만을 원하는지, 다양한 형태와 취향과 온기가 느껴지는 서점도 원하는지. 당신이 원하는 서점은 어떤 모습인가.




무등일보 청년칼럼 2023. 05.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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