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1

2026년 2월, 치앙마이 여행

by 파종모종

2026년 2월 14일 토요일


책방 주인과 어울리는 이미지는 아닐 테지만 썩 기록을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물며 어렸을 때 일기 쓰는 것도 꽤나 괴로워했으니까. 그런데 마흔이 훌쩍 넘어서 일기를 쓰기로 했다. 심지여 여행 기록 일기. (물론 작심삼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이유는 나중에 밝히기로 하겠다. (어쩌면 나도 이유를 모르는 걸 지도 모르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치앙마이. 2024년 8월이 마지막이었으니 대충 1년 반 정도 만이다. 어째서 치앙마이는 '돌아왔다'라는 마음이 드는 걸까. 보통 여행지에 도착하면 '떠나왔다'라는 마음이 드는데, 왜 이곳은 '돌아왔다'라는 마음이 강하게 드는 건지 모르겠다. 공항에 도착한 순간 낯섦도 잠시, 게이트를 나가는 순간 익숙한 공기 온도와 자연스럽게 향하는 흡연실 포인트는 몸이 기억하는 감각이다. 여유롭게 담배를 태우고, 그랩존에 앉아 택시를 기다리고, 애정해 마지않는 숙소에 도착해서, 늦은 체크인을 기다려준 Bon과 오랜만에 안부를 나누고, 씻고 누워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고, 태국이라면 혼자 여행한 경험이 많아서 딱히 걱정은 없다만, 이번에는 꼭 짝꿍과 함께 오려고 꽤 오래전부터 일정을 조율했는데, 뜻하지 않게 또 혼자 날아왔다. 아쉽지만 속상하지는 않다. 다음에 함께 돌아올 날이 있겠지.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휘발되니 (나이가 들수록 그 속도는 더 빨라지니) 하루의 기록을 남겨보자면, 늦잠을 잤다. 오전 7시 40분에 광주에서 출발하는 인천공항행 버스를 예약해 두었는데 눈을 뜨니 7시 10분이다. 하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고 바로 다음 버스를 검색한다. (야행성에 전형적인 P라 이런 일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자다가 비행기를 온전히 놓쳐본 적도 있으므로 이 정도는 양반이라고 볼 수 있다) 오후 4시 2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니 9시 버스도 괜찮겠지. 설 명절 최다 인원에 공항이 마비가 될 거라는 뉴스가 머릿속을 스치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고 씻는다. 짝꿍이 터미널까지 태워주고,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서 딥슬립을 하고 나면 공항에 도착한다. 역시나 몸이 기억하는 흡연실 포인트에서 담배를 하나 태우고, 커다란 스크린에서 항공사 위치를 찾고, 티웨이 B 라인을 향해 걸어가는데, 공항이 너무 한적하다. 티켓을 받자마자 걸어가는 동시에 스마트패스를 등록하고 출국장에 들어가니, 역시나 한적하다. 한동한 김해공항을 다니다 오랜만에 인천공항에 왔는데 짐 검사할 때 노트북을 빼지 말란다. 오, 신세계인걸. 수속까지 원스텝으로 마치고 탑승게이트를 향해 걸어가며 점심 메뉴와 화장실 위치, 실내 흡연실 위치를 체크한다. (쓰다 보니 너무 골초 같지만, 흡연인들의 습관이라고 치자) 파스쿠찌에서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사고, 16번 게이트 앞 휴대폰 충전석에 자리를 잡았다. 비행기 출발 시간 2시간 전. 공항의 의자들은 텅텅 비어있다. 의도적인 강제 독서를 하며 점심을 먹고, 감기약도 먹고 나면 슬슬 사람들 소리가 북적거린다. 운이 좋게 옆자리가 비어있는 좌석에 앉아, 기내식을 먹고, 다시 책을 읽다 자다를 반복한다. 기장님이 분명 5시 40분 걸린다고 했는데 6시간이 넘게 걸렸다. 꼬리뼈가 뭉개지는 줄 알았지만 괜찮다. 나는 어디서든 잘 자는 편이니까.


여기까지 쓰고 모니터를 한참 바라본다. 평소에 글 쓰는 것을 즐기지 않으니 뭘 기록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우선 쓰고 본다. 앞으로 열흘 간 뭐라도 쓰겠지.






(몸이 기억하는) 치앙마이 국제공항 흡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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