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모처럼 맑은 가을날 오후였다.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바람이 불어 9월치고는 서늘했다. 지루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문득 전날 지나갔던 골동품 가게가 생각났다. 시내 중심가에 있지 않을 것 같은 범상치 않은 외관을 가진 그 가게엔 무언가 재미난 물건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주차장에 자전거를 대고 길을 건너 가게로 들어갔다. 나무 같으면서도 좀더 쿰쿰한 냄새가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헛간이나 오래된 창고에서 나는 이런 퀴퀴한 냄새가 좋았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나무 냄새를 더욱 짙게 풍기고 있었다. 예감이 좋았다.
VELLERLEI. '다채롭다'는 뜻을 가진 가게 이름대로, 최소 30년부터 길게는 100년은 훌쩍 넘어 보이는 잡동사니가 다양하게도 진열돼 있었다. 구두 만들 때 쓰는 나무틀, 소련의 영토가 붉게 표시된 냉전 시대의 지구본, 녹이 슬어 주황색으로 변해버린 맥주집 간판까지. 전부 근사한 골동품이라기보다는 쓰임새가 애매해져 버린 옛 시대의 부산물에 가까운 물건들이었다.
눈길은 끌지만 살 만한 물건이 딱히 없어 돌아가려던 참에 낯설게 생긴 카메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로로 긴 몸체에 '자바라'가 달린 렌즈. 어릴 적 재미있게 읽었던 만화 <땡땡의 모험>에 나왔던 카메라였다. 70년도 넘은 사진기라니 너무 낭만적이잖아! 렌즈를 접으면 상잔지 카메란지도 모를 이 묵직한 골동품들을 보니 눈이 마구 돌아갔다. 하지만 가장 상태가 좋아 보이는 '코로넷' 카메라에 붙은 가격표 '69.95유로'를 보니 금방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거의 똑같아 보이는 카메라들이지만 연식이 20년 가까이 차이 나는 제품들이다. 성능도 그만큼 서로 다르다.
그래도 100년 된 카메라는 어떻게 사진이 찍히나 하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장 낡아서 저렴해 보이는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다행히도 셔터는 돌아가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언제 나온 무슨 모델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매장 구석에 서서 휴대폰을 들고 '구글링'을 시전했다. 카메라에 써 있는 유일한 단서였던 'Kodak Autographic'이란 문구만 검색했는데도 해당 기종 카메라의 정보부터 설명서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과연 덕중의 제일은 양덕이었구나.
코닥, 너로 정했다!
셔터도 돌아가고 설명서도 구했으니 더 이상 망설일 건 없었다. 이 카메라는 가격표도 없어서 점원에게 값을 물어보아야 했다. 25유로. 나쁘지 않았다. 디카에 비하면 헐값 아닌가. 25유로면 주말 축구경기 푯값보다도 싼 가격이었다.
그렇게 1917년형 미국제 코닥 카메라는 새 주인을 만났다.
난생 처음 보는 100년 된 카메라에 눈이 돌아가서 3만 원을 질렀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이 카메라에 맞는 100년 전 필름이 과연 있을까. 사진필름이라고는 35mm 카트리지밖에 몰랐는데 카메라를 열어보니 너무 폭이 넓어서 그건 도저히 안 맞을 것 같았다. 골동품 가게 점원은 "너무 오래된 물건이라 실사용은 어렵고 그냥 장식품으로만 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못 쓰는 물건이라도 도전은 해 보고 싶었다. 모 아니면 도니까. 문득 길 건너편에 카메라 가게가 있었던 게 생각났다.
렌즈를 접으면 어디 쓰는 물건인지 가늠하기 어렵게 생겼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 카메라에 들어갈 필름이 아직 있을까요?"
"이거? 120 필름이네. 여기."
중형 필름이라는 포맷이 있다는 걸 난 그때 처음 배웠다. 필름카메라도 동네 사진관도 찾기 어려운 2018년에 100년이 넘도록 계속 팔리는 필름이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8장짜리 롤필름 값이 9유로나 하는 데 경악했지만 일단은 찍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사진 잘 나오면 과제물도 이걸로 퉁칠 셈이었다. 필름을 넣어 레버를 돌리고 해가 저물어가는 집 앞 거리에서 첫 한 장을 찍었다.
네덜란드 틸버그. 2018년 9월. 하지만 몇몇 건물 빼고는 100년 사이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카메라 렌즈 축은 뒤틀려 있었고 렌즈를 접어넣는 자바라도 낡아서 구멍이 뚫려 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필름 규격은 컸지만 렌즈가 워낙 작고 오래됐으니 35mm 필름만도 못한 화질이었다. 거리계도 없어서 눈대중으로 초점을 맞추지만 그마저도 8피트 또는 100피트 중 하나만 고를 수 있었다. 셔터스피드는 빨라야 1/50초. 1917년 똑딱이 카메라의 스펙이었다. 왜 옛날에는 밤에 찍은 사진이 거의 없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진술의 선구자들은 정말 엄청난 돈과 노력을 들여 촬영을 연습했으리라는 것도.
그날부터 내 가방 속에는 언제나 이 카메라가 함께하게 됐다. 필름 값의 압박 때문에 아무 때나 사진을 찍을 순 없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한 장 한 장을 아주 신중하게 찍게 되었다.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는 사진이라는 기술을 남용하기 시작했다. 메모하기가 귀찮아서 셔터를 누르고, 거울을 찾지 못해서 전면카메라를 켠다. 하드디스크에는 한 달 만에 찍은 수백 장의 사진이 쌓인다. 즉석에서 사진을 찍고 모바일로 보정해서 간단하게 공유하는 시대에, 100년 전 렌즈로 본 세상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오래돼 보였다.
역시 눈 내리는 날엔 흑백사진이 최고다.
다중노출을 잘 쓰면 이렇게 멀쩡한 사람도 유령으로 만들 수 있다.
건전지도 필요 없고 플래시도 없는 카메라. 모든 걸 수동으로 일일이 맞춰줘야 하는데 해가 지면 그마저도 쓸 수 없는 카메라. 한 장 찍고 깜빡 잊고 레버를 안 돌리면 사진이 겹쳐서 나와버리는 다중노출. 여덟 장을 찍으면 일일이 현상을 맡기고 또 찾아와야 하는 필름. 하지만 이 번거로움이 사진 한 장에 담긴 순간을 더욱 진한 기억으로 남긴다. 문득 내가 산 카메라가 덜 오래된 물건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디지털 카메라였으면 부품이 오래되어 생기는 잔고장에 골치를 앓았을지도 모른다. 복잡한 기계일수록, 정교한 전자회로가 들어갈수록 내구성은 떨어지고 수명은 짧아진다. 이제는 인간의 수명보다 오래 쓰임받는 물건이 나오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스마트폰 약정이 2년인 오늘날, 100살이 넘은 카메라는 '단순한 것이 오래 간다'는 명제를 보란 듯이 증명해가고 있다.
1917년의 어느 날에서 한 세기가 흐르는 동안, 이 카메라는 미국에서 네덜란드로, 다시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여러 주인의 손을 거쳐 갔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 카메라를 세상에 머무는 잠깐의 시간만큼만 쓰고 다시 누군가에게 온전히 넘겨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이 사진기를 통해 느낀 감동을 그 사람도 느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