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퍼실리테이터의 포지션과 역할
캐나다 아트 퍼실리테이터가 사는 법
나는 캐나다의 한 민간 예술단체에서 아트 퍼실리테이터(Art Facilitator)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공공예술, 지역재생, 예술교육과 관련된 일들을 10여 년간 하다가 2018년 홀연 캐나다로 넘어와, 아트 퍼실리테이터라는 새로운 타이틀로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지 2년째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타이틀이지만, 이곳에서는 아트 퍼실리테이터(워크숍 퍼실리테이터)가 있는 예술단체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캐나다 내의 아트 퍼실리테이터 포지션은 대부분 지역 커뮤니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단체와 하고 있는 활동들을 소개하며 아트 퍼실리테이터가 어떤 역할들을 하는지 살펴볼까 한다.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아트 시트(Art City)는 지역 안에서 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비영리 민간 예술단체다. '꿈꾸고, 상상하고, 창조하는 것. 모두의 삶에서 예술을 위한 공간(To Dream, To Imagine, To Create. A Space For Art In Every Life)'이라는 비전하에 1998년 창설되어, 다운타운에 위치한 웨스트 브로드웨이(West Broadway) 지역에서 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오랜 기간 자리해 왔다. 다양한 예술 매체와 기법을 다루는 정규 워크숍을 연중 무상으로 제공하여 누구나 자기 안의 창조적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도록 하고, 지역의 이슈를 바탕으로 다양한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여 지역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냄으로써 주민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다. 아트 시티는 예술단체와 커뮤니티의 접점을 고민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무상 예술 프로그램을 실시하기 시작한 캐나다 최초 사례이자, 커뮤니티 아트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사회적 지위, 경제적 여건, 나이, 출신 배경과 상관없이 누구나의 삶 속에 예술을 누리고 자신 안의 창조성을 발현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비전은 단체의 운영 철학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트 시티 운영의 제1원칙은 '모든 차별과 배제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남녀노소는 물론이며, 방황하는 청소년, 성소수자, 기관 보호아동, 홈리스 그 누구든 아트 시티 안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지지받고 예술의 경험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차별이나 배제 없이 누구나 환영받는 공간, 존중과 지지의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안전한 장소. 아트 퍼실리테이터는 바로 이러한 안전한 공간을 조성하고 그 안에서 참여자들의 예술 경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한국의 지인들에게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면 “아, 예술 교육하는구나” 또는 “그러니까 예술 강사인 건가?”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나는 “음, 그게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하고 얼버무리게 되곤 했다. 아트 퍼실리테이터가 하는 일이 언뜻 예술 강사의 일과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개념상 큰 차이가 있다. 가장 커다란 차이점은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술적 테크닉을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에는 드로잉, 디지털 아트, 사진, 도자기 등 장르별 예술 강사에 의해 스페셜 워크숍이 별도로 진행된다. 일반 워크숍의 경우는 가르치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그날그날의 워크숍 주제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변형하여 즐기면 된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주거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조언을 주기도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오롯이 당사자의 결정이다. 7살, 10살 아이도 자신의 선택과 결정으로 예술을 즐기고 그 결과를 지지받는다(Follow your hearts and have fun!).
좋으나 싫으나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자라왔고 익숙해졌으며, 또 나도 모르게 그렇게 가르쳐왔던 나로서는 문화충격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나는 참가자가 아이인 경우 자꾸 평가의 말을 하려 했다. 더 멋진 결과물을 낼 수 있게 개입하고 싶어 했고, 가는 길이 삐뚤빼뚤하면 직선으로 고쳐주고 싶어 몸과 입이 근질거렸다. 내게는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퍼실리테이션을 해야 한다는 난관만큼이나 적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부분이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이는 단지 역할의 차이가 아닌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 관계 맺는 방식의 차이였다. 또한 예술을 가르치고 전해주는 것이 아닌, 즐기고 발현하는 것으로 보는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트 퍼실리테이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참가자들이 그들이 원하는 예술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지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트 시티에서는 누구나 환대받고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 모두가 지켜야 하는 3가지 약속이 있다. 예술, 존중, 안전이 그것이다. 아트 퍼실리테이터는 참가자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예술의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워크숍 환경을 조성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퍼실리테이터마다 지닌 고유의 예술적 기량을 바탕으로 참가자들에게 멘토의 역할, 즉 참가자 고유의 창조적 가능성을 발현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① 스튜디오 프로그램
아트 시티 스튜디오에서는 다양한 주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워크숍이 매일 열린다. 드로잉부터 페인팅, 미디어아트, 실크스크린, 스토리북, 정크아트, 주얼리 공예 등등 다루는 매체가 그야말로 다채롭다. 주제는 있지만, 정해진 한 가지 포맷은 없다. 주제는 다양한 창조 활동을 위한 돋움 판으로, 개인의 관심사와 능력에 따라 변형 가능하도록 디자인된다. 그리고 매달 며칠씩은 주제 없는 '오픈 스튜디오'로 운영한다. 그야말로 자기가 원하는 무엇이든 만들고 시도해보는 날이다.
어느 날, 오픈 스튜디오 주간에 왔던 한 10살 남자아이는 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우리는 컴퓨터가 비치되어 있는 디지털 룸으로 가서 인터넷으로 다양한 종류의 배 이미지를 살펴보았고, 아이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배의 모형을 결정했다. 나는 아이가 종이에 대략의 디자인을 스케치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배를 만들기 위해서 설계는 어떤 식으로 할지, 나무는 얼마나 필요할지, 어떤 종류의 천을 사용할지, 그 외의 재료들은 무엇이 필요할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갔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 나무를 잘라주고 재료들을 찾아주었다. 아이가 만드는 과정에서 작업이 막히거나 기술상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물으면 함께 고민했다. 나도 목재 작업이나 설치에 능숙한 사람이 아니지만 같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는 거다. 물론 결정은 아이의 선택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취향과 바람을 담은 배 한 척을 만들어내는 일에 아이는 사흘을 온전히 매달려 집중했고, 그 결과에 더없이 자랑스러워했다.
② 스페셜 커뮤니티 이벤트
아트 시티는 예술을 통해 지역의 이슈에 창의적으로 개입하고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 아트 이벤트를 기획한다. 그중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행사는 매년 5월에 웨스트 브로드웨이 커뮤니티 전체가 함께 어우러지는 퍼레이드 행사, 남녀노소 모두 코스튬을 만들어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10월의 할로윈, 그리고 긴긴 캐나다의 겨울에 신나는 활기를 더하기 위한 2월의 스노우볼 축제가 있다.
5월에 열리는 퍼레이드에는 웨스트 브로드웨이 지역 곳곳이 예술 작품 행진으로 가득 채워진다. 퍼레이드의 주제와 콘셉트는 지역 구성원들이 결정한다. 2019년에는 Youth Council(아트 시티의 프로그램 방향과 중요한 안건에 대해 워크숍 참가자들의 의견을 모으는 정기 회의)을 거쳐 "세계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What the World Needs Now!)"이라는 퍼레이드 주제와 그 아래 세부 카테고리(사랑, 웃음, 인권보호, 환경 구조)를 결정했다. 첫 주는 주제와 콘셉트를 결정하고 이에 대한 최초 스케치를 진행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아이디어를 드로잉으로 표현했고, 퍼실리테이터들이 참가자들의 스케치를 3차원의 작품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기초 골격을 세우면, 다시 참가자들이 다양한 재료와 색을 이용하여 완성해가는 식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주제를 상징하는 거대한 조형물, 의상, 피켓 등을 한 달 동안 제작하였고, 퍼레이드 당일에는 약 200여 명의 지역 주민들이 워크숍에서 함께 만든 작품으로 행렬에 참여했다. 골목마다 퍼레이드에 참가하거나 함께 구호를 외치며 구경하는 인파로 가득했고, 도시 내 우범지역이라 불리는 웨스트 브로드웨이 전체에 활력이 가득했다. 행사 당일에는 경찰과 지역 보안관들의 협조로 차량 통제를 하고, 퍼레이드 이후에는 지역 상권의 후원과 협조로 커뮤니티 파티가 성대하게 열렸다.
할로윈이나 스노우볼 축제, 혹은 지역 내의 어떤 특별한 이슈에 대응하기 위한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로 진행된다.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디자인하는 단계부터 지역 주민들이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함께 참여하고, 아트 퍼실리테이터는 저마다의 예술적 기량을 활용하여 참가자들의 아이디어와 꿈이 현실화(작품화)될 수 있도록 돕는다.
지면의 한계로 스튜디오 프로그램과 스페셜 이벤트만 간략하게 설명하지만, 내가 퍼실리테이터로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지역 외곽의 학교, 청소년시설, 단체 등으로 직접 찾아가는 아웃리치 프로그램, 청소년 멘토링 프로그램, 인디지너스(indigenous, 캐나다 토착민) 아트 프로그램 등 훨씬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아트 퍼실리테이터로서 지난 1년 6개월은 무던히도 벽에 부딪히던 시간이었다. 한 단체의 유일한 비주얼 마이너리티(코카시안 백인 계열이 아닌 유색인종) 스태프로 새로운 문화와 일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이자 언어 장벽으로 인한 압박감과 끝없이 싸워야 했던 시간이었다. 동시에, 내가 한국에서 경험해 온 예술교육의 현장을 완전히 새롭게 응시할 수 있게 도와준 시간이기도 했다. 참 다행인 건 내가 일하는 터전이 사람에 대한 존중이 일상에 배어있는 곳, 함께 성장하고 더 연결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계속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없고 나아질 희망도 갖기 어려웠던 시기에도, 내 안에서 좋은 점을 발견해주는 동료들 덕분에 장애물들을 조금 더 용기 있게 넘을 수 있었다.
팬데믹이 선포되고 얼마 뒤, 단체는 임시 휴관을 했다. 행정 직원이 아닌 퍼실리테이터들은 모두 임시 레이오프(lay off, 일시해고) 되었다. 재밌는 건, 그럼에도 우리가 매주 온라인 스태프 회의를 자발적으로 계속했다는 거다. 이 시기에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격려하고 힘이 되어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지역 주민들에게 예술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해서, 그냥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이러한 덕에 우리는 5월의 퍼레이드를 물리적 거리를 유지한 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해낼 수 있었고, 지역 주민들에게 간단한 예술 도구와 재료들이 담긴 아트 키트를 배달했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프로그램을 지속했다. 스튜디오 프로그램은 7월에 재개되었고, 외부 장소로 직접 찾아가는 아웃리치 프로그램은 조금 더 시간이 걸려서 지난주에 비로소 다시 시작되었다. 한 아동 시설에서의 워크숍이 끝날 무렵 7살 꼬마가 다가와서 말했다. "당신들이 너무 오랫동안 안 와서 속상해 죽을 뻔했어요." 아이의 말이 나의 마음을 쓰다듬고, 다시 또 용기를 준다. 나도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여전히 캐나다에서 가장 말 못하는 퍼실리테이터라 할지라도 말이다.
본 글은 예술경영 456호_2020.10.22.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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