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불러줘 no.5
<내 이름을 불러줘>는 31개 시군에 거주하고 있는 경기 시민들을 릴레이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하는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 기획자는 최초의 인터뷰이만 섭외하며, 이후로는 인터뷰이가 자신의 지인 중 다음 차례의 인터뷰이를 추천하는 방식입니다. 첫 번째 인터뷰이는 다섯 번째 인터뷰이를 전혀 알지 못하지만, 어쩌면 여섯 번째 인터뷰이 혹은 열 번째 인터뷰이와는 어떤 접촉점이 있을 수도 있지요. 이런 방식으로 인터뷰이는 지인의 지인 형식으로 모두 연결되고, 우리가 사는 사회의 축소판을 구현해내게 됩니다. 본 프로젝트의 무대는 경기도이지만, 우리 사회를 이루는 이러한 방식은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는 실상,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각각의 인터뷰이는 그들 삶을 이루는 행복, 가치, 꿈, 흔들리던 순간 등을 묻는 10가지 질문에 답하며 자신의 경험과 삶을 나누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다른 누군가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또 다른 모양의 길과 삶을 들여다봅니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 그리고 익명으로 존재했던 이웃들의 고유한 삶을 품고 있는 도시의 다양한 얼굴입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다른 이의 걸어간 길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며, 불확실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희망을 만들어갈 힌트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이름과 사는 곳은?
안녕하세요,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김주은입니다.
2. 당신이 사는 도시에서 당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무수히 들어찬 건물들 사이에서도 힘을 잃지 않는 자연을 아껴요. 광명은 기본적으로 주택의 밀도가 높은 도시이지만 그 사이사이에 도덕산, 철망산 같은 작은 산이 있고, 안양천도 흘러요. 그리고 6년째 같이 살고 있는 우리 집 강아지 동동이와의 산책 시간을 아껴요. 보통은 아파트 단지 주변을 걷는 편이지만, 요즘은 강아지가 살이 많이 쪄서 안양천 뚝방길을 걷거나 하안도서관 옆 숲길까지 가기도 해요.
강아지의 속도로 도시를 걷는 일은 길가의 크고 작은 자연을 관찰할 수 있게 해 줘요. ‘천천히 걸으리라’고 마음먹고 홀로 산책을 나오면 바삐 살던 욕심을 버리지 못한 몸 때문에 결국 속도가 빨라지지요. 또 혼자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장소에 가서 무엇을 보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게 되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마음이 급해져요. 반면 강아지와 함께 나가는 산책은 늘 비슷한 코스를 돌고, 속도가 훨씬 느려져요. 반쯤은 강아지에게 끌려가는 타율적인(?) 산책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조급함은 사라져요. 어디론가 가야 하는 ‘나’보다 나 주변의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돼요.
기본적으로 인생의 중심이 나 자신인 건 맞지만, 사실은 나도 이 세상의 일부라는 사실을 강아지와 산책하면서 느끼게 돼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느껴요. 겨우내 삭막했던 안양천 뚝방길의 나무들에 벚꽃은 결국 피고, 잔디깎이가 무참히 쓸고 간 뒤에도 들꽃과 풀은 다시 땅을 뒤덮죠.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람의 삶도 이런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3. 어떤 일을 해오셨고, 지금 몰입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쭉 학생이었고, 지금도 학생이에요. 12년 동안의 학생 생활을 지나 올해 새내기 대학생이 되었습니다(슬프게도 새내기다운 대학 생활은 누리지 못하고 있지만요). 대학교에서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철학과라고 저를 소개할 때 다들 “철학과에서 뭐 배워요?”라고 물어요. 아직 철학의 ‘ㅊ’ 자도 모르는 새내기이지만, 가볍게 본다면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배우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한 번쯤 교과서에서 봤을 공자, 맹자부터 저 바다 건너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저씨까지. 크게 본다면 세상, 인간, 진리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을 배우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해요.
또 다른 몰입하고 있는 일은 춤이에요. 대학 스트릿 댄스 동아리에서 일주일에 두 번 팝핀이라는 장르를 배우고 있어요. 연습 없는 날에도 학교 가서 연습하고, 근육 운동이랑 유산소 운동도 같이 하고 있어요. 저에게 춤은 마음속에만 흘러넘치는 흥을 발산하기 위한 일이기도 해요. 중학교 때까지는 가끔 아이돌 영상 보고 살짝살짝 따라 추는 것에 그쳤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친구의 ‘너와 어울리겠다’는 한마디에 반신반의하며 들어갔던 스트릿 댄스 동아리에서 춤추는 즐거움을 제대로 알아버렸어요. 팝핀의 부드러우면서도 절제된 동작의 매력은 다른 어떤 장르도 따라올 수 없었어요.
춤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서 성취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게 해 주었어요. 재밌어서 춤을 시작했지만, 실력의 벽에 막혀서 춤추는 게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재미도 줄어들었죠. 워낙 게으른 성격이었던 터라(지금도 조금 그런 편이지만), 진정 즐기려면 기꺼이 힘을 아끼지 않는 너무 당연한 태도를 춤을 통해 겨우 알게 됐어요. 노력이 모든 것을 이루게 해 주지는 않겠지만 남들 앞에서 보여주기 부끄럽지 않을 만큼 잘 추고 싶어요.
4. 무엇이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영향력을 주나요? 혹은 그런 사람이 있나요?
이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여러 생각들을 찾아내려고 하는 편이에요. 쉽게 말하자면 그냥 많이 느끼고, 많이 듣는 편이에요. 대신 그렇게 수집한 온갖 생각들을 짜임새 있게 정리하는 데에는 사람들과 책이 필요한 것 같아요.
중학교 1학년에 수업을 받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철학 선생님이 계세요. 그분에게는 진로를 비롯해 삶 전반적인 영향을 받았죠. 질문하는 자세, 철학의 가치를 처음 알려주신 분이고,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도록 늘 질문을 던져주신 분이에요. 무엇보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저에겐 인생에서 손꼽는 충격이었고,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았어요. 그 질문에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자세히 말하기 어렵지만, 많이 고마운 친구가 한 명 있어요. 늘 힘을 받기만 하고 제가 준 거라고는 상처밖에 없어서 늘 미안한 친구이기도 해요. 그 친구는 제 마음속의 또 다른 양심, 이상향이기도 해요. 누군가에게 큰 의지가 될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사람. 늘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온 편이라, 언젠가는 그 친구처럼 굳건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또 책을 읽으며 간간이 감동 비슷한 감정이 밀려올 때가 있어요. 스스로 인식하기 어려웠던 감정 혹은 생각의 매듭을 책이 풀어주는 희열이겠죠? 장르를 가리지는 않지만 보통은 철학자들의 책에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최근에는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과 공자의 <논어>에서 지적 감동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이 사라지고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인간이 지녀야 할 자세를 조금은 알게 되었어요.
5. <나의 컬렉션> 당신이 아끼는 7가지 아이템으로 당신의 취향을 소개해주세요.
해질녘 하늘, 길 틈에 핀 작은 들꽃, 짤막한 일기들, 사계절의 바람 향기, 지하철 창밖으로 보이는 한강, 향긋한 차, 인피니트의 노래 ‘발걸음’.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따뜻한 것들을 좋아해요.
6. 일상에서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즐겁지만 피곤한 하루 끝에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난 뒤 자기 직전에 핸드폰 들여다볼 때.
우리 집 강아지가 자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때.
춤출 때.
베란다에 쭈그려 앉아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 냄새를 맡을 때.
글을 다 쓴 뒤 생각보다 괜찮게 썼다 싶을 때.
7.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원칙이 있나요? 그것을 얻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라는 말을 고등학교 3학년 때 좌우명처럼 정했어요. 내일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이유는, 고삼 주제에(?) 내일을 위해 오늘의 즐거움을 미뤄두고 싶지 않았거든요. 좀 극단적 일지는 몰라도, 결국 인생은 찰나의 지금과 기나긴 과거로만 구성될 뿐이라고 생각해요. 미래라는 것은 어렴풋이 예상하고 가상으로 세워두는 개념일 뿐, 경험을 통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때려치우고 놀기만 하는 ‘단순 욜로(YOLO)’는 제 삶에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죠. 어제보다 한 발이든 두 발이든 나아가기만 한다면 그게 더 나은 삶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래서 이런 좌우명을 만들었어요.
또 다른 원칙은 ‘진인사대천명’ 이에요. 뭐든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욕심을 비운 채 하늘의 운명을 기다릴 것. 모든 일이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느꼈어요.
이건 삶의 원칙은 아니지만, 요즘은 세상이 굴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중성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뉴스를 보면서 어떤 사람이든 무조건 착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러다가 위에서도 말했던 사르트르의 책을 읽고 이중성이라는 단어가 세상을 설명하는 중심 단어가 되었죠. 상대성도 이중성과 더불어 중요한 것 같아요.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 속에서 절대적인 선이란 건 점점 희미해지고 있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는 전제 하에, 그 속의 다양한 의견은 스펙트럼의 한 부분처럼 존중하려고 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보편 단일한 원칙을 찾는 노력보다 다양성의 긍정이 우선되지 않을까요?
8. 인생을 살며 큰 변화가 있었던 일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고 그로 인해 무엇이 바뀌었나요?
위에서 간단히 말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늘 굳건할 것 같았던 기둥이 무너진 기분이었어요. 그때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은 뭔지, 죽음 그 이후에 나는 어떻게 되는지 계속 생각하다 보니 거의 패닉 상태가 됐어요. 가끔 죽은 뒤의 상황을 상상하면 끝없는 수렁에 빠진 것처럼 가슴이 철렁하고 두려울 때가 있잖아요. 그런 상태로 거의 한 달을 지내다 보니 지는 해를 보는 것마저 두려워서 저녁밥 먹기가 싫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학교에서 윤리와 사상 수업을 배울 때 에피쿠로스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를 배웠어요. 쾌락주의 사상가로 유명하지만 죽음에 관한 입장도 독특해요. 살아있다면 죽음을 경험할 수 없고, 죽는 그 순간 저는 더 이상 죽음을 느낄 수도, 인식할 수도 없으니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그 말이 아버지를 보낸 후 혼란스러웠던 저에게 큰 위안이 됐어요.
지금은 아버지를 생각하는 것이 슬프지 않아요. 그렇다고 아버지의 죽음을 모두 극복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은 죽음에 도달했을 때뿐이겠죠. 그래도 아버지를 떠나보낸 기억을 바탕 삼아 나와 남의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아껴주려고 하게 됐어요. 바로 앞 질문에서 언급한 이야기들도 결국은 아버지와의 이별로 인해 깨닫게 된 것들이에요.
또 이때쯤부터 철학을 전공할 생각도 하기 시작했고, 철학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도 어렴풋이 했어요. 철학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이유를 직접 느꼈으니까요. 물론 진로를 완벽히 철학 교육 쪽으로 정한 건 아니에요. 계속 고민 중이에요. 하지만 제가 정말 철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된다면, 그래서 그때의 저처럼 깊은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작은 위안의 실마리를 줄 수 있다면 많이 기쁠 것 같아요.
9. 언젠가 이루고 싶은 모험, 꿈이 있나요? 그것을 위해 현재 준비하고 있는 게 있나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어요. 자연의 숭고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제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다양한 인연도 만나고 싶고요. 순례길을 위해 딱히 준비하는 건 없지만, 그때까지 체력은 단단히 길러둘 작정이에요. 또 할머니가 되면 바닷가 마을에서 살고 싶어요.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었어요. 그리고 자연에 피해 주지 않고 소소하게 살고 싶었어요. 할머니가 되어도 자급자족하며 살 수 있도록 건강하게 살아야겠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의 공교육에 철학이 하나의 정규 과목으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어요. 지금도 ‘생활과 윤리’ 혹은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이 있지만, 시험이라는 게 있다 보니 철학자의 사상을 단편적으로 정리해 외우고 말게 되는 점이 아쉬웠어요. 시험을 보기 위한 철학이 아니라 삶에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철학을 더 많은 학생들이 접하게 하고 싶어요.
10. 삶에 흔들리는 순간들에서 당신을 지켜주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흔들리는 나를 잡아주었던, 혹은 지금 잡아주고 있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흔들리는 삶에 뿌리를 내리는 일은 결국 나 혼자의 일인지라,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지만 보통은 옛 기억이 담긴 노래나 시를 통해 소중한 사람들이 제게 알려준 것들을 되살리고, 그것들로 버텨내려고 해요. 가령 아버지께서 생전에 제게 가르쳐주신 굳건한 태도는 지금은 Billy Joel의 <Vienna>라는 곡으로 되새기고 있어요. 윤동주 시인의 시들도 자주 생각하는데, 그중에서는 <새로운 길>과 <길>을 좋아해요. 고삼 시절에는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이라는 <새로운 길>의 한 구절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적어두기도 했어요. 적어놓고 보니 제가 인생을 ‘길’과 ‘걸음’에 비유하는 걸 좋아하는 게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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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인터뷰이를 소개해주세요.
다음 인터뷰이는 제 오랜 동네 친구 조수민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쭉 알고 지내오면서 크고 작은 기쁨들을 같이 나눈 친구예요. 순탄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나아가는 멋진 친구기도 해요.
인터뷰에 응해주신 김주은 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