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년간의 직장생활에서 깨달은 몇가지
성가셔 죽겠네, 진짜.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아냈어?
당신들 개인정보 유출해도 되는거야?
날선 목소리에 마음이 베인다. 호흡을 가다듬고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이내 입술이 바짝 타들어간다.
"불편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지난 7월 15일 SNS에서 아동학대 반대 캠페인에 서명하셨을 때,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동의해주셔서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난 그런 적이 없는데,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야 뭐야. 니들 돈 뜯어내려고 그러는거 아냐. 씨발."
회색의 파티션 안에 갇혀 남몰래 더운 숨을 내뱉는다. 불특정 다수에게 무작위로 전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서명을 해주신 분들이니 마냥 상냥할 줄 알았다. 보통은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끊거나 본인이 서명한 것을 기억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몇몇은 시퍼렇게 날을 세우며 혀를 흉기처럼 휘두르곤 한다.
오늘은 왠일인지 유독 심하다. 별거 아닌 말에도 꼬투리를 잡히고 약속이라도 한 듯 반응들이 영 싸늘하다.
사회 초년생 때는 소위 진상들을 만나면, 그 날 '똥 밟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추한 언행을 무한 곱씹으며 재수 옴 붙었다고 신세 한탄을 했다. 그때는 감정 노동자의 콤플렉스도 한 몫 했던 거 같다. 내가 전문직 종사자가 아니라서 사람들이 쉽게 무시한다 치부했고 속된 말로 '어디서 뺨 맞고 애먼 데 화풀이한다'라고 했다.
온갖 불쾌한 감정을 쓰레기마냥 우리들에게 버려도 웃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기가 막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컨디션이 안 좋거나 개인 신상에 문제가 있을 때 '똥을 밟는다'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턱까지 차오를 때 귀신같이 알고 컴플레인은 터진다. 처음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는데 반복된 경험 속에서 깨달았다. 어둡고 습한 나의 기운이 불운한 에너지를 끌어당긴다는 것을. 평소와 다른 나의 마음가짐이 눈빛과 표정, 말투를 미세하게 변화시키고 알게 모르게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럴 때는 '정서적 환기'가 중요하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잠시 바람을 쐬면서 마음을 재정비하는 것이 좋다. 꿀꿀한 기분으로 억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더 큰 낭패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쁜 업무 탓에, 그런 여유를 누릴 수 없을 때는 일부러 다음 후원자에게 더욱 공을 들이는 편이다. 좋은 일이 있어 친절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친절을 베풀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는 까닭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예쁜 말들을 늘어 놓다보면, 어느 새 마음의 뭉친 근육들이 풀어지는 것을 느낀다. 다소 유난해보이는 나의 노력이 후원자님에게 닿아 칭찬을 받게 되는 순간, 그 날의 운세가 바뀐다. 일이 안 풀리는 날에는 뭐니뭐니해도 작은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 최고다. 지하철에서 선뜻 자리를 양보하거나 짐이 많아 손이 모자라는 뒷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기도 한다. 왜 그렇게 되는 일이 없냐고 투덜거리는 것을 멈추고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나누어주는 홍보용 전단지를 기꺼이 받아주면서 빡빡한 일상에 온기를 불어넣어본다. 그때그때 상황마다 방법에는 차이는 있겠지만, 차갑고 경직된 분위기를 적절히 끊어주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각박한 현실에 후원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소액으로나마 참여 해보시라고 권유드리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다만, 오천원이라도 기부를 하면 부메랑처럼 기쁜 일이 찾아올꺼라고 말씀드린다. 꼭 무엇인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겠지만, 아직 기부가 익숙하지 않은 신규 회원님들에게는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고객만족이 최우선시는 되는 시대에, 나는 감히 '나의 행복'을 말하고 있다.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가 정성스레 목관리를 하고 국가 대표 선수가 세심하게 몸을 챙기듯이, 고객을 응대하는 직장인들은 프로 정신을 가지고 마음을 돌봐야 한다. 스스로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고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행복의 기준이야 지극히 주관적이겠지만, 사랑만큼 보편적이고 확실한 것이 있을까. 부디, 미천한 내 영혼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물 하나 넘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