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에도 자격이 필요할까
부정확한 발음과 어눌한 말투. "여보세요" 한 마디에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음속으로 순간 '어쩌지..?' 하였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응답기처럼 스크립트를 줄줄 읊어대는 주둥아리가 원망스럽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캠페인에 서명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통화를 마무리할 것인가. 아니면 보통 때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한 아이를 소개하고 후원을 권유할 것인가. 권유한다면 기본 3만원 정기후원부터 말씀드려야 하나 아니면 금액을 낮추어야 하나. 낮춘다면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멘트는 갈피를 못 잡고 버벅대기 시작한다. 매끄럽지 못한 나의 이야기에도 연신 호응을 해주며 답을 해주는 티없이 맑은 영혼이 너무 사랑스럽다. 그 순수함에 감화되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비집고 나온다. 도움을 주지는 못할 망정, 어떻게 도와 달라고 하겠는가.. 두서없이 꺼내놓은 말들을 주섬주섬 다시 챙기는데. 내 귓가를 울리는 그 분의 목소리.
나도, 도울 수 있어요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하고 싶다는 듯, 최대한 또박또박 힘을 주어 다시 한번 되풀이한다.
"나도. 만원 도울 수 있어요" 아차, 싶었다. 나의 배려 이면에는 '당신은, 도움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라는 장애인에 대한 잠재된 편견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의 미성숙함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 같아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화끈거렸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잠시 말문이 막혔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면 어쩌나 조심스러워 다음 말을 어떻게 이어갈지 몰라 쩔쩔 매는데, 다행히도 후원자님은 씩씩하다. "저는 장애인이지만, 스타벅스에서 일해요. 한 달에 80만원 벌어요. 80만원 벌어서 세 명 도와요. 세 명 도우니까 열심히 일해야 해요. 저 할 수 있어요." 나의 염려와 달리,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에 대해 노여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저 누군가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는 벅찬 기쁨으로 행복이 차고 넘치는 듯했다. 지치고 허기진 나의 삶에는 찾아볼 수 없는 충만함이었다. 나는 가진것이 충분해야 나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바로 여기 '나누기 위해 가지려는 사람'이 있다. '세 명 도우니까 열심히 일해야 해요'라는 말에서 그 세 명이 짐이 아니라 후원자님이 살아가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딸린 자식이 눈에 밟혀 일을 그만두는 건 엄두도 못내겠다는 아버지의 책임감을 닮았다. 혼자 식사 할때는 대충 끼니를 때우면서, 아이를 위해서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정성스레 새밥을 짓는 어머니의 부지런함도 담겨있다. 어쩌면 생명은 다른 생명을 돌봄으로써 강인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버거워 하는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생명력이다. 덕분에 시커멓게 찌든 나의 하루가 정화되는 거 같다. 맑은 공기와 드넓은 하늘을 품고 자란, 무공해 봄나물을 한 움큼 입 안에 넣은 것처럼 향긋하다.
문득, 얼마 전 우연히 보았던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 3월, 한 20대 지체 장애인이 부산 강서구 신호 파출소에 마스크 11장과 사탕, 손 편지가 든 노란 봉투를 두고 사라졌다고 한다. 손편지에는'회사에서 받은 마스크가 많아서 조금 나누려고 한다. 너무 적어서 죄송하다. 부디 받아주시면 감사하겠다'라고 쓰여있었다. 마스크 종류가 제각각인 것으로 보아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 온 것을 기부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같은 사실이 보도되면서, 부산 시민들의 마스크 나누어 쓰기 운동이 잇따르고 있다는 훈훈한 내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후원을 망설인다. 각자 주어진 환경이 제각기이고, 사는 방식이 달라서 강요할 수는 없다. 인생사 무엇이든 그렇겠지만, 후원도 마음에서 우러나온 자발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할 수 있는 금액이 너무 소소해서 창피하다고 여기는 분들을 만났을 때다. 기부는 부자들만 하는 것이고 큰 금액만 가치 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디어에서 유명 인사들의 억대 단위의 기부 릴레이를 보다 보면, 내 돈은 한낱 보잘 것 없는 종이조각처럼 느껴지기 쉽다. 어떤 이에는 별 거 아니지만, 또 다른이에게는 온 존재를 걸고 모은 땀과 노력과 정성일 수 있다. 한편,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억단위만 기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코로나 19 피해자들을 위해 백만원을 기부했다가 액수가 적다고 비난을 받은 이시언 배우를 위로하고 싶다. 수입에 비례해서 마땅히 해야하는 기부금이란 없다. 마음을 숫자로 환산할 수는 없으며, 참여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아직 후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완전히 개선하지는 못했다. 그랬기에 내 나름으로 후원을 할 수 있는 사람, 할 수 없는 사람으로 구분하고 장애인 후원자님께 실례를 범했으리라. 실수를 통해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깨닫고, 스스로를 치열하게 성찰하고 있다. 뿌리깊게 자리잡은 잘못된 인식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후원에 대한 마음의 문턱을 낮추고 소액으로라도꾸준히 쉽게 나눌 수 있는 문화가 정착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