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를 극복하는 긍정 심리학
그 날은 몹시도 갈증이 나서 물을 연거푸 들이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쩍 더워진 날씨 탓이 아니라 이틀째 단 한 건의 후원도 성사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루에 평균 250~300통의 전화를 거니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거절 당했는지 헤아릴 수 있다. 후원자님들이 무심하게 뚝뚝- 전화를 끊을 때마다 내 심장도 덩달아 쿵쿵-내려앉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소심해져서 통화연결음을 듣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조직 분위기가 강압적이지는 않아 실적이 없는 것에 대해 뭐라고 채근하는 사람은 없지만 한 번이라도 영업을 해 본 사람이면 이해할 것이다. 모두가 나를 사뿐히 즈려밟고 가는 기분을. 마치 투명인간이 된 거 같았다. 아무리 온 몸으로 외쳐도 누구도 나를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꾹꾹- 참아왔던 설움이 쓰나미가 되어 밀려왔다. 그 때 직원 교육을 알리는 센터장님의 부름이 없었더라면 눈물이 왈칵 쏟아졌을지 모른다. 남몰래 불덩이 같은 울음을 꿀꺽 삼키고 교육실에 몸을 앉혔다. 센터장님이 나누어준 유인물 첫 장에 쓰여진 '후원 유도시 활용하면 좋은 설득법'이란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효과만 있다면 뭐든 해보리라는 심정으로 얼른 자세를 고쳐앉고 귀를 쫑긋했다. 토씨 하나까지 다 받아적을 기세였다. 뭔가 드라마틱하고 센세이션한 슈퍼 울트라 초특급 꿀팁을 기대했지만 내용의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정리하는 수준이었다. 뻔한 노하우들에 점차 흥미를 잃어갈 무렵 나의 갈증을 풀어줄만한 오아시스같은 유투브 동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다.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거절을 당해온 지아지앙이라는 남자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100일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매일 황당한 미션을 수행하는데 누가 생각해도 거절 당할 만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낯선 사람에게 100달러 빌리기, 햄버거 리필 요청하기, 대학에서 강연하기와 같은 식이다. 그런데 그런 말도 안되는 제안에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있다는 거다. 실제로 올림픽 오륜기 모양의 도넛을 만들어달라는 그의 뜬금없는 부탁은 성공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진심으로 놀랐다. 엉뚱한 미션이 성공했다는 사실보다 내가 하는 일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서였다. 아무 보상없이 피도 안 섞인 생면부지의 타인을 도와 달라니. 이것도 응당 거절 받을 만한 부탁 아니겠는가. 후원을 성사시키는게 올림픽 오륜기 모양의 도넛을 만드는 것만큼 신기한 일이다. 거절을 당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일렁거리던 마음이 고요해졌다. 제 3자의 눈으로 상황을 객관화에서 보니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일 뿐, 그를 개인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후원자님들은 '후원'을 거절하는 것이지,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 존재가 외면받는다고 생각하고 가학적으로 고통을 음미하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거절이 곧 실패라는 관점을 버리고 소중한 한 사람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 여기는 것이 좋았다. 하나의 놀이라고 생각하면 가벼웠다. 인생을 축제가 아닌 숙제처럼 사는 나에겐 그런 시각이 필요했다. 돌연 실적이라는 숫자에 나를 가두고 평가에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다. 매사에 성적 매기듯이 빨간 색연필로 채점을 해가며 스스로를 달달 볶는 것은 그만 하자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오늘 처럼 길을 잃고 헤매일 때마다 가슴 속에 고이 접어둔 그 기억을 꺼내본다. 무릎을 탁! 치며 느낌표 백만개를 찍고 이제는 다 알았다 했으면서도 번번히 똑같은 자리에서 걸려 넘어지곤 한다. 아직도 나는 자주 무거워지고 쉽게 예민해지지만 조급해하지 않기로 한다. 밑줄 그은 구절을 읽고 또 읽듯이 여러번 들여다보면 언젠가는 완전히 내 것이 되는 날도 있겠지. 이 일을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으련지 모르지만 내게 허락된 시간 속에서 나는 부지런히 연습하고 싶다. 수많은 거절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방법을.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낙담하지 않고 삶에 대한 유머를 갖춘 사람이 되기를.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주인공 귀도는 어린 아들 조슈아를 위해 참담한 전쟁을 재미있는 놀이로 승화시킨다. 나는 그런 유머와 위트가 부럽다.
내일도 나는 어김없이 거절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 거절에 잔뜩 움츠려 들거나 상처받지 않겠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판단하지 않기로 한다. 보물 찾듯이 이 땅에 숨어있는 천사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일하자. 그렇게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해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