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빨래] 빨래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는 꽤나 기울어져 있었어. 집 앞 거리에서 테니스 공을 굴리면 못해도 5분은 굴려 내려가서 멈췄을 거야.
한편 친구 녀석 집에 놀러 갈 때는 등산을 해야 했어. 가파른 언덕을 걸어 올라가 도로를 건너고, 다시 비탈길을 오르면 내버려진 공터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러면 친구네 집이 나왔어.
산 중턱에 있던 친구 집이나 기슭에 있던 우리 집이나 둘 다 비슷했던 건, 페인트 칠해진 철문과 3평쯤 되는 작은 마당 그리고 지붕이 있던 옥상이었어. 그 옥상에는 늘 빨래가 널려 있었고.
흔들리는 막대기 기둥에 헐렁하게 걸쳐 있던 빨랫줄, 그 위에 얹힌 빨래들은 바람에 날아가기도 했고,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비를 맞기도 했고, 겨울이면 덜 마른 빨래가 그대로 굳어 버리기도 했었어.
"아빠는 어릴 때 어떤 집에서 살았어?" 해나가 물어오면,
"아빠가 어릴 적 살던 집은 저런 집이었어. 대문 위에 길 있는 거 보여? 그 길로 올라가면 옥상이고, 옥상에는 작은 옥탑방이 있었어." 하고 대답해.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어릴 적 살던 집과 비슷한 집들이 아직도 남아 있거든.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지 못한 건지, 뒤엎일 날을 기다리는 것인지는 잘 몰라도.
당연한 줄만 알았던 장면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옥상 풍경이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이가 제법 들었어도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내가, 꼭 흩날리는 빨래 같아서일까?
그 시절 뮤지컬 빨래를 보며 들었던 노래가 시간이 이렇게 지난 지금도 자꾸 되뇌어지는 이유가. 때론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삿말에 눈시울을 적시는 이유가.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뮤지컬 빨래] 빨래
둘둘 말린 스타킹 아홉 켤레
구겨진 바지 주름 간 치마
담배 냄새 밴 티셔츠
떡볶이 국물 튄 하얀 블라우스
발 꼬랑내 나는 운동화 밑창
머리 냄새 묻은 베개 호청
손때 묻은 손수건
난 빨래를 해요
오늘은 쉬는 날
가을 햇살은 눈 부시고
바람이 잘 불어
밀렸던 빨래를 해요
빨래가 바람에 마르는 동안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엄마 생각…
엄마랑 같이 옥상에 널었던
빨래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https://youtu.be/sbb36OV583A?si=iK1RNpNeyAYpQzaJ
p's) 작사가님께 물어요
왜 둘둘 말린 스타킹은 다섯 켤레도 아니고 여섯 켤레도 아닌, 아홉 켤레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