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미냑 해변 석양을 보며 내 전부였던 친구가 생각나다

발리살이 (6)

by Zorba

서쪽 바다. 지평선을 넘어가는 해. 요동치는 파도. 잔잔한 모래 위 붉은빛. 반짝이는 바다.


석양이 지고 있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있으니,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세상 무엇보다 소중했던 친구가 생각난다. 그때 나에게 그 친구가 전부였고 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했다. 우리는 특히 노래를 좋아했다. 학교 가는 셔틀버스 안에서 항상 이어폰을 한쪽씩 꼽고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으며, 학교가 끝나고는 항상 노래방에서 아침에 들었던 노래를 부르곤 했다. 우리는 학교 축제가 있을 때마다 서로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흔히들 얘기하는 베프 그 이상이었고, 연인보다 자주 붙어 다녔다.


하지만 고3이 되면서 우리는 멀어졌다. 나는 네가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너도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우리가 왜 멀어졌는지 묻지 않았다. 나는 물어볼 수 없었다. 그냥 네가 말해주기를 바랐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것도 너 역시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우리 사이의 틈은 생각 외로 빠르게 벌어졌고, 우리는 이제 연락을 하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가끔 너에 대한 꿈을 꾼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던 다 내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나는 너에게 미련하게 연락을 하지 못한다. 그래도 고3 졸업여행 때 너랑 해변가에서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노래 듣던 그 순간만은 잊지 못한다. 우리는 별말 없이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번갈아 들었다. 우리는 서로가 멀어진 것을 알고 있었지만, 끝내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하필이면 노래가 흘러나오는 지금. 하필이면 너 생각이 난다. 괜히 눈시울이 붉어진다. 지나간 추억으로 치부하기엔 나에겐 너라는 존재가 너무 컸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나는 그래도 너와 몇 번이나 함께 하려고 했다. 네가 있는 학교를 찾아가기도. 네가 의경으로 복무하던 경찰서를 찾아가기도. 그래도 우리는 예전 같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너는 바쁘다고 하였고, 시간이 되면 퇴근하고 찾아온다고 하였다. 나는 너만 기다렸지만 끝내 너는 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 역시 너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나에겐 큰 상처였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생각보다 미련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가끔씩 네가 생각이 난다. 요즘은 괜히 길에서라도 너를 만나길 바란다. 그렇게만 된다면, 무엇이 되었건 내가 다 미안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하면 네가 이제 더 이상 내 꿈속에 나타나지 않으리라. 그땐 너를 정말로 보내줄 수 있으리라.


IMG_2734.HEIC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길리섬에서 사람 냄새를 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