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살이 (5)
길리섬은 서두르지 않는다. 누구도 급하지 않다. 차가 없기에 경적을 울려댈 수도 없다.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은 마차, 자전거, 두 발, 이 세 가지밖에 없는데, 사실상 다 거기서 거기다. 마차는 생각보다 비싸고, 자전거는 생각보다 흙길이 많아서 끌고 가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래도 섬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천천히 햇살을 맞으면서 걷다 보면 원하는 곳에 금방 다다를 수 있다.
길리섬의 현지인들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디를 가든 과분할 정도의 친절을 베푼다. 물론 돈을 내는 관광객의 입장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의 미소에는 당연함을 넘어선 순수함이 보인다. (물론 이 역시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오늘 다른 곳에서 포장해 온 음식을 숙소 식당에서 먹어도 되냐고 물었을 때, 일하는 직원 중 한 분이 '여기선 당신이 원하는 뭐든 것을 해도 됩니다.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면 편하게 저를 불러주세요.'라고 말했다. 나 역시 미소로 화답하였고, 덕분에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하는 테이블 바로 앞 해변에서는 숙소의 직원들이 모두 함께 모여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불을 피우며 2시간 동안 하염없이 떠들었다.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인 것처럼 보였다. 물어보니 맞다고 하더라.
아까 음식을 포장하면서 신기한 광경을 봤다. 길리섬 마을 남자들이 모두 모여서 긴 철봉에 걸린 30여 개의 새장을 보고 있었다. 그들이 뭘 하는지 유심히 쳐다봤는데, 누구의 새장에 있는 새가 가장 잘 우는지를 대결하고 있었다. 몇 명은 감독관으로서 새를 주의 깊게 관찰하며 노트에 적고 있었고, 몇 명은 자신의 새에게 힘내라고 크게 소리치는 듯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나 역시 뒤에서 열심히 쳐다봤다. 도무지 이걸 왜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근데 거기 모인 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즐거워 보였다.
길리섬에 있는 현지인들이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물론 그들도 관광으로 먹고살기 때문에 최소한의 핸드폰이 필요하겠지만, 그냥 일상생활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그냥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데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덩달아 핸드폰을 내려놓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시간의 흐름을 오로지 태양의 위치로 가늠하니 내 삶이 좀 여유로워진 것 같았다. 나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부분의 것들을 사람이 하는 길리. 그 속에는 따뜻함이 있다. 스노클링을 마치고 돌아가는 보트 안에서 가이드분이 먼저 뱃머리에 누워있자, 이윽고 다른 분이 등을 맞대고 옆으로 눕는다. 그들을 보다가 벌써 길리에 도착해 있다. 사람 냄새가 나는 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