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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rba Oct 29. 2023

코모도섬 투어에서 만타를 만나다

발리살이 (15)

이른 아침 코모도섬 투어를 나섰다. 비용은 아마 인당 10만 원 정도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투어를 위해서 발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것이기 때문에 기대가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보트 안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좌석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워낙 빽빽한지라 불편하다고 느껴 나와 친구들은 보트 뒤로 나갔다. 그냥 보트에 걸쳐 앉아서 바람과 파도를 느끼는 순간이 좋았다. 예전에 꽃보다 남자에서 나왔던 유명한 대사가 떠오른다.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바람 소리에 묻힐까 봐 옆 친구에게 크게 소리쳤다. "왜 부자들이 요트를 사고 싶은지 알 것 같아." 친구도 이에 질세라 더 큰 소리로 대답했다. "돈 많이 벌어서 다음에는 저기 보이는 사람들처럼 리브어보드 해보자." 주위를 둘러보니 해적선 같이 생긴 큰 보트가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리브어보드는 말 그대로 배를 통째로 빌려서 며칠 동안 거기서 먹고자며 투어를 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자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인 원피스가 떠올랐다. 루피가 동료들과 함께 행복한 항해를 하는 것처럼, 친한 친구들과 함께 바다를 여행하는 것은 꽤나 낭만적으로 보였다. '언젠가 꼭 이 친구들과 나도 리브어보드 해봐야지.'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그렇게 하염없이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어떤 생명체가 포물선을 그리며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옆에 가이드가 소리쳤다. 'Dolphin!' 나는 돌고래를 본 것이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친구를 끌고 돌고래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짧은 순간이긴 했지만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었다. 오늘은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만타를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처음 도착한 곳은 파다르 섬이다. 우선 도착하자마자 사슴과 함께 사진을 한 장 찍고 트래킹을 시작한다. 엄청나게 힘든 트래킹 코스는 아니었지만, 햇빛이 워낙에 뜨거워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쏟아졌다. 물이 너무 맑아서 저 높은 언덕에서 바라봐도 그 속이 훤히 보였다. 누가 이 섬에 폭격이라도 한 듯 너무나도 반듯하게 만과 곶이 형성되어 있었다. 항상 느끼는 거었지만 가장 자연적인 것이 가장 아름다운 듯하다.


그다음은 사진으로 봤을 때 너무나 환상적이었던 핑크비치이다. 모래가 핑크색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사진으로 봤을 때만큼 핑크색은 아니었다. 아마 엄청난 보정이 들어갔으리라. 핑크라기보단 학창 시절에 먹던 제티 딸기맛 정도라고 해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래도 해안가에 물과 만나는 부분은 꽤나 핑크빛을 띠고 있었다. 모래를 한 움큼 쥐고 들어보니 일반 모래와는 확연히 다른 색깔이었다. 들어보니 여기 사는 핑크색 산호초가 파도에 오랜 시간 부서져서 핑크빛이 나는 해변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핑크색 모래보다는 물 색깔에 더 매료된 것 같다. 여기서 수영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바로 스노클을 끼고 물고기와 함께 수영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바다였다. 



다음은 코모도 섬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홍보하기로는 '지구상 마지막 용'이라고 하는데, 내가 느끼기엔 그냥 큰 도마뱀이다. 그냥 크다기 보단 무지하게 큰 도마뱀이긴 하지만 말이다. 코모도를 보기 위해서 코모도섬을 40분가량 트래킹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지쳐갔을 무렵 해안가에 도착하자 코모도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와 진짜 크다.' 육성으로 소리가 나왔다. 가이드 말로는 코모도가 더운 것을 싫어해서 해안가에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코모도 섬 안쪽으로 들어가지 말고 해안가에만 있지. 갑자기 가이드가 원망스러워졌다. 아니면, 코모도와의 조우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고도의 노림수였을까? 만약 그렇다면 올해의 가이드로 선정될만하다. 코모도의 몸에는 박테리아가 살고 있어서 스치기만 해도 인간에겐 치명적이라고 한다. 그래도 뭐 상관없다. 코모도가 움직이는 곳에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모든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다녔다. 그러다가 진귀한 풍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물에 갑자기 머리를 집어넣더니 물고기를 한입에 먹어치우는 것이었다. 이건 그리 진귀하지 않았다. 지켜보던 가이드가 그 모습을 보고 구역질을 하러 저 멀리 뛰쳐나가는 모습이 진짜 진귀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코모도와 열심히 시간을 보내고 기념품샵에서 만타 목걸이를 샀다. 오늘 무조건 만타를 봐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소비였다. 


다음은 어느 해변의 스노클링 장소다. 내가 봤던 해변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마치 요시고 사진전에서 본 듯한 모습의 해변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거북이를 목격했고 같이 수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꽤나 귀여운 녀석이었다. 수심이 꽤냐 얕아서 잠수를 하면 몸이 자꾸 더 오르길래 다이빙하는 친구한테 물어봤다. '이거 자꾸 떠오르는데 어떡해?' 친구가 간단한 답변을 내어주었다. '숨을 내뱉고 들어가 봐.' 폐에 공기가 없는 상태로 잠수를 하니 부력이 덜 작용하게 되어서 수면에 떠오르지 않고 편안하게 거북이와 함께 수영할 수 있었다. 오늘로 하나를 더 배웠다. 얕은 수심에서는 숨을 내쉰 다음에 들어가기.


그토록 기다렸던 만타 포인트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만타를 보는 것은 모든 다이버들의 꿈 중 하나이다. 나 자신을 다이버라 칭하기에도 너무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나 역시 초보 다이버로서 만타를 보는 순간만을 꿈꿔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만타를 못 보고 다시 발리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아까 코모도 섬에서 산 만타 목걸이를 손에 쥐고 한차례 기도를 올렸다. 저 멀리 사람들이 물 위에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다음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저기 무조건 만타가 있다.' 나는 급하게 롱핀을 끼고 배 안에 있는 그 누구보다 먼저 바다로 뛰어들었다. 빠르게 고개를 물속에 넣고 만타를 확인했다. 배 안에 친구들한테 소리쳤다. "만타다!" 바로 덕다이빙을 해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호흡을 제대로 하지 않고 들어가서 금방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처음 만타를 본 순간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황홀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자기의 등위에 탄 물고기들과 신나게 수면 밑에서 놀고 있었다. 너무 고맙게도 우리가 자신을 충분히 봐주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은 수면 위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있었지만, 나와 친구들은 다이빙을 하며 바다 밑까지 깊숙이 들어가 만타를 가까이에서 보았다.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이렇게나 크고 아름다운 생명체를 자연 속에서 본다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이 순간이 지나가지 않기만을 바랬다. 괜히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만타가 떠나가고 배에 오른 그 순간까지도 그 감정은 계속 유지되었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란 이런 느낌이구나. 살면서 다시는 느끼지 못할 평생 동안 기억에 남아질 그런 순간이었다. 그 순간의 연속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사진과 영상으로는 전혀 표현할 수가 없어, 이렇게 글로나마 기록하고 있다. 먼 훗날 이 글을 읽을 때 만타를 처음 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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