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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rba Oct 27. 2023

비행기를 타고 발리에서 라부안 바조로 넘어가다

발리살이 (14)

아메드에서 만난 친구들과 저녁에 술에 취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명이 물었다. '우리 다음 주에 코모도섬 가볼래?' 친구가 보여준 사진에 매혹되었는지, 그 분위기에 휩쓸렸는지, 아니면 그냥 취했는지 나는 그 자리에서 연차를 쓰고 비행기를 끊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이 친구들과 함께 가지 못한다면, 난 평생 그곳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걸. 그렇게 생각하니 돈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발리에서 국내선을 타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주위의 수많은 현지인들이 이렇게 눈짓하고 있는 듯했다. '너네 어디 가니?' 라부안 바조라는 곳은 발리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이 동네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다음 날 코모도 투어를 갈 예정이다.


그래도 하루를 그저 호텔에 있으며 시간을 낭비하긴 좀 아까우니, 동굴 수영을 하러 가기로 했다. 우리 6명은 각자 스쿠터를 빌리고 아메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줄지어서 이동했다. 숙소에서 30분 정도 멀리 떨어진 곳이었는데 시내를 지나고 언덕길을 들어서니 차가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맨뒤에서 따라갔는데 아직도 그 광경이 생생하다. 앞에 5대의 스쿠터가 간격을 유지하면서 달리고 그 왼쪽에는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자유의 모습이었다. 내가 스쿠터를 타면서 느꼈던 순간들 중에서 가장 해방감이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게 자유지.'


그렇게 바람을 만끽하는 드라이브가 끝나고 우리는 이름 모를 선착장에 도착했다. 사실 선착장이라고 보기에도 뭐 한 그냥 배 정박소였다. 동굴로 가려면 배를 타고 조금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언제나 그랬듯이 가격을 흥정하고 배에 올라탔다. 그 배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어느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느낌상으로는 아직 산업혁명 초기의 물건을 보는 듯했다. 시끄러운 모터소리를 내며 배가 바다를 가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다 청량해졌다. 더럽혀지지 않은 물이었고 그 안이 훤히 보였다. 이 여행은 시작부터 모든 순간이 찬란했다. 내려서 동굴까지는 5분 정도 걸어야 했다. 한 친구가 신발을 안 들고 왔는데, 그 모습을 본 어떤 인도네시아분이 본인이 신던 신발을 기꺼이 내어주셨다. 여분의 신발도 아니고, 본인이 방금 착용하고 있던 그 신발을. 햇살이 그러한 것처럼 마음도 따뜻해져만 갔다.



동굴에 들어가 보니 자연이 선물해 준 수영장이 있었다. 이러한 수영장은 발리 어떤 리조트에서도 볼 수 없다. 물 위에 둥둥 떠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면 뾰족한 석회암들 사이로 박쥐가 마구잡이로 날아다닌다. 물 깊이는 가늠할 수 없고, 자칫해서 물을 먹어버리면 입 안에 짠맛이 가득하다. 돌로 만들어진 자연 다이빙대도 있어서 우리는 거기서 한명식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맨날 다이빙을 할 때마다 배부터 떨어져서 위장에 충격을 가하곤 했던 나는 거기서 다이빙 특훈으로 이제 제법 폼나게 다이빙을 할 줄 알게 되었다.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어두컴컴하다. 그 너머에는 웹소설에서 봐왔던 것처럼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나게 물장구를 치다가 주위를 보니 우리 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동굴은 우리의 전용 풀장이 되어버렸고 시간의 흐름을 거스른 채, 해가 서서히 반대편으로 지며 동굴이 머금은 빛이 변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이윽고 모두가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는 햇빛이 우리의 정면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에서 나왔듯이 새로운 세상을 본 것만 같았다. 눈이 부셨다. 말 그대로 찬란한 하루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어떤 어려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배를 타고 다시 돌아가고 우리는 깨달았다. 한 명이 오토바이 키를 동굴에 두고 왔다는 것을.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핸드폰은 터지지도 않았다. 나와 친구 둘이서 다시 오토바이대여점에 가서 마스터키를 받아오기로 하고 나머지는 기다리기로 했다. 열심히 밟아서 오토바이 대여점에 도착하자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 동네는 가로등도 거의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언덕길로 계속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니 몸이 긴장을 해버렸다. '이제 도착했겠지?'라고 열 번은 되네어도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까 행복하게 달리던 그 길이 맞나. 상황은 경험을 바꾼다. 그렇게 넋을 놓고 쓰로틀만 당기고 있을 무렵 저 멀리서 누가 빛을 비추고 있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흡사 몇 년에 만에 만난 친구들 같았다. 우리는 다 같이 기념(?) 사진을 찍고 집으로 되돌아갔다. 다행히 거기 현지 사람들이 착해서 코코넛도 공짜로 챙겨줬다고 한다. 


도착해서 바로 밥을 먹으러 갔다. 언제나 그랬듯 warung (로컬 식당)이다. 나시고랭과 치킨/비프 사테를 먹었는데 내가 먹었던 인도네시아 음식 중에서 단언컨대 최고였다. 오늘의 험난한 하루 때문이 아니더라도 순수 맛으로만 봤을 때 이곳을 따라잡을 식당은 없어 보였다. 과장을 조금 더 보태서 사테에서 LA갈비 맛이 났다. 꼬치를 두 개씩 집어서 먹고 남은 소스에 밥을 야무지게 비벼먹었다. 밥만 최소 2 공기는 먹은 것 같다. 내일 코모도 투어에서 꼭 만타를 봐야만 했다. 우리는 만타를 보기 위한 의식으로 MANTA라는 위스키를 먹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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