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목포 여행에서 깨달은 것들

일의 연장선에서 일을 돌아보다

by Zorba

보름 전 주말 즈음 전라도 구례읍 지리산 근처로 가족이랑 짧은 휴가를 보냈다. 높은 산 깊은 계곡의 시원함은 쌓인 더위를 잠시나마 내 곁에서 쫓아내 주기에 충분했고, 단단하지만 평평한 돌 위에서의 낮잠이 그간의 피로를 없애주며 이틀 간의 짧은 휴식이 끝났다. 다음 목적지인 목포로 운전하는 동안 천둥번개와 폭우에 운전대를 꽉 잡고 깜빡이를 켜면서 서행하며 겨우 광주를 지났지만, 이윽고 그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보상해주는 듯 하늘이 열리고 밝은 빛이 목포로 가는 길을 인도해 주었다.


일요일

목포 하면 홍어와 민어. 홍어는 아직 내가 맛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도전하기 힘들었고, 가족들과 민어를 전문으로 하는 횟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생선이었는데 부드럽고 기름기도 있는 게 아주 야무지게 맛있어서 한 접시를 더 시키고 말았다. 방어, 참치 이후에 느껴보는 감동이었다. (아직 회의 세계는 멀고도 험하다.) 그리고 4명에서 먹는 이 저녁식사가 나에게 더없는 행복이었음을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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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로 에어비앤비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주일을 더 묵기로 했다. 서울로 뽈뽈 올라가는 자동차를 뒤로한 채 짐을 풀고 다짜고짜 산책을 나갔다. 숙소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유달산 근처였고, 산을 넘으면 목포항을 품고 있는 바다가 보였다. 왜 목포였나? 처음 가보는 곳이었고, 음식이 맛있으며, 시골스러운 도시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힘겹게 올라간 유달산 중턱에서 수수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목포를 바라보며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예감할 수 있었다.


월요일

오랜만에 느껴보는 상쾌한 아침이었다. 그간 집에서 재택근무하느라 어딘가 갑갑한 기분이 온몸을 사로잡았는데, 장소가 바뀌니 좁은 공간이어도 속이 뚫리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언제나 똑같은 일상에서 잠깐의 변화나 트리거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고, 아침도 먹었으며, 피곤에 찌들지 않은 건강한 몸상태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월요일은 회사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의 시작이었다. 입사한 지 어연 3달이 다되어가지만, 신입 모두가 함께 모여서 오리엔테이션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 대해서 더 깊이 있게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회사 내부에서 실제 회사의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투자를 위해 꼼꼼히 읽어봤던 IR 자료나 구글링은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창업자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회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였고 그 2시간가량의 영상을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게 진정한 기업가지. 이게 내가 생각하는 가치 있는 일이지.' 스토리가 좋았다. 항상 창업을 할 때 사람을 움직이는 스토리를 중요시 여겼는데, 우리나라 그 어떤 스토리보다 잘 짜인 한 권의 장편소설을 눈앞에서 실감하고 있었다. 그날 종가에 회사 주식에 전재산을 투자했다. 그 정도의 확신이 들었고, 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나는 회사와 같이 나아갈 것이라는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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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밤에 홀로 유달산 산책로를 걸으며 생각했다. 사실 요즘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회사가 좋은 건 어제 알았어. 근데, 내가 지금 선택한 이 직종과 이 커리어가 최선이었을까? 내가 여기에 시간을 쏟아붇는게 가치 있는 것일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그토록 원하던 회사였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이 너무 컸었다. 항상 느껴왔지만, 진짜 사는 거 쉬운 게 하나 없다고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정해진 일을 꾸준히 잘 수행하는 것 or 그 이상으로 발전을 이뤄내는 것.' 뭐 누구나가 후자를 선택하겠지만, 그래서 어떻게 성장할 건데라고 물으면 거기부터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 이상으로 발전을 이뤄내려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고, 그 시간은 사실 다른 곳에 쓸 수도 있다. 투자를 공부한다던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한다던지.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시간이 아까워진다. 시간은 정해진 자원이고, 그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는 나뿐만 아니라 경제학이 고민하는 핵심 가치이다. 내가 내리는 선택이 매몰비용이 될지 아니면 미래를 위한 자본금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항상 이렇게 두 길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을 갖곤 했는데, 다행히도 이번엔 한적한 도시에서 조금 더 똑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었다. 지금은 우선 하는 일에 집중하고, 해당 분야에 더욱 깊은 지식을 쌓기로 했다. 운명론을 믿는 나에겐 여기까지 온 일련의 과정들이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코 우연이란 있을 수 없으며 이 길로 온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곳에서 나를 증명하면 더 많은 선택지가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것 역시 오만한 생각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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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밴드 오브 브라더스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특수부대인 이지중대를 그린 10부작 드라마인데, 그간 미루고 미루다가 이번 여행을 기회삼아 마무리지었다. 다 보고 나니 새벽 4시더라. 울림을 주는 완벽한 전쟁 드라마였다. 매 화 앞부분에 실제 생존자들의 인터뷰들로 시작해서 마지막 화 맨 끝에 그 생존자들의 이름이 나오는 드라마의 구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전쟁 영웅들의 숭고함을 느끼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해당 부대의 리더인 리처드 윈터스가 남긴 마지막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Grandpa, were you a hero in the war?"
"할아버지는 전쟁영웅이었어요?"

"No.. but I served in a company of heroes."
"아니다.. 영웅들과 함께 싸운 것뿐이야."
Screen Shot 2021-08-24 at 12.03.17 AM (2).png 출처: 왓챠 | 밴드 오브 브라더스


전쟁에서 보이는 참된 리더의 표본은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도 나타난다. 독일군의 기지로 가장 먼저 돌진하는 윈터스 중위의 모습과 총알이 날아다니는 독일군 진영에서 다른 부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맨몸으로 혼자 뛰어가는 스피어스 중위의 모습은 과장을 조금 보태 300에서 스파르타 전사를 이끄는 레오니다스 왕의 모습보다 더 멋져 보였고, 이 드라마의 명장면 TOP 2로 손색이 없을 만큼 멋있는 씬이었다. 그만큼 많은 팔로워들이 기대하는 리더의 모습을 가장 명확하게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좋은 리더란 무엇일까? 각자마다의 기준은 다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윈터스 중위와 스피어스 중위는 멋있었고, 그 '멋있음'이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좋은 리더는 '긴급한 상황에 본인의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만한 명확한 판단을 내려주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목요일

사실 숙소는 목포역 근처였는데, 나름 잘 잡았다고 생각한 게 프랜차이즈 매장과 로컬 매장들의 적당한 조화가 거리를 이루며 큰 상권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 동네에 4일 머무르면서 근처에 사람을 거의 못 봤다. 길거리에 사람이 안보였고, 곳곳에 폐업을 한 가게들이 넘쳐났다. 이러한 환경이 나를 더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수도권에 확진자가 많이 나와서 비교적으로 지방은 타격이 적을 줄 알았는데 내가 보기엔 수도권보다 더 심한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주시는 에어비앤비 사장님이 감사했고, 짜장면을 시켰는데 탕수육과 짬뽕을 주신 중국집 사장님이 감사했다. 목포에 갓 모양을 쓴 사람을 닮은 갓바위를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었고, 바다 근처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버스킹 하는 사람들과 호응해주는 관객들을 보면서 그래도 도시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이고,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곳에 의미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간 온라인에서 플랫폼의 역할만을 생각하는 나였지만, 오프라인에서 오는 감동을 외면할 수 없는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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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위에서 친구가 날 위해 내려와 줬다. 오랜만에 얘기할 사람을 만나니 입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사실 그간 가장 외로웠던 것은 음식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 목포에는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았지만, 백반을 먹건, 민어를 먹건, 낙지를 먹건, 꽃게살을 먹건 죄다 2인분 이상 주문해야 했기 때문에 곳곳에서 퇴짜를 먹고 울며 겨자 먹기로 1인분을 파는 음식점만 방문했던 것이다. 친구가 오고, 그동안 가고 싶었지만 못 갔던 음식점을 가게 되니 그것보다 큰 감동이 없었다. 음식은 역시나 무엇을 먹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먹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하루였다. 음식 맛이 조금 떨어질지는 몰라도 지금도 친구랑 먹은 음식이 더 많이 생각나는 것은 그때 친구와 나눴던 대화, 그때 음식점의 분위기가 한 장면으로 내 머릿속에 남아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음식 역시 사람이 완성시켜준다. 여러모로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주게 하는 여행이다.


토요일

케이블카에서 목포를 바라보며 이번 여행을 마무리한다. 참으로 매력적인 도시이다. 혼자 이렇게 오래 여행 온 것은 처음인데, 매일 소중했던 순간순간들을 목포가 아름답게 완성시켜주었다. 그것만으로 목포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고, 다시 오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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