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경제학도에게 학교가 남겨준 자산

졸업식날 지난 4년간의 대학생활을 돌아보며

by Zorba

지난 금요일을 끝으로 학교를 마무리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졸업식은 온라인으로 대체되었고, 학교에서 졸업사진만 찍고 왔다. 그날 학교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가 막힌 타이밍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의 졸업을 하늘도 슬퍼해주는구나 싶었는데, 마침내 옆을 지나가는 한 무리의 대학원생들을 보니, 학교에 남아있는 그들의 망령이 서글퍼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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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1학기

4년간의 중국 유학 생활을 끝으로 원하던 국내 대학에 합격했다. 1학년은 송도에 기숙사에 살아야 한다고 해서 동기들과 1년가량 유배생활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서 1학년 때 여한 없이 놀았다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 부분이 지금도 아쉽기도 하지만, 중고등학생 때 이미 형성되어 굳어졌던 나의 습관과 자아를 한순간에 뒤집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시험 직전 친구가 놀자고 할 때, 그것을 거절하고 도서관 가는 게 맞는 것이라 생각했었고, 부모님께 용돈을 받기보다는 이제 성인이니 내가 직접 벌어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모두가 하는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이 대학 생활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라는 클리셰 같은 생각을 하여 오케스트라를 했다. 이 외에도 남는 시간에 봉사를 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게 맞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주말마다 성당에서 초등부 교사를 했다.


1학년 2학기

앞선 일련의 과정들은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았다. 다만 당시의 나는 그것을 몰랐다. 그것이 행복이고 그것이 1학년의 삶인 줄 알았다. 그리고 1학년이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에 나는 이례적으로 동아리에서 기장과 파트장이라는 직책을 맡으면서 80명이 넘는 단원들을 관리하는 임원단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자리에 올라가 보니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안 좋은 상황들을 목격하고 거기에 실망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누군가와 어울리기 싫어졌다. 아마 이건 내가 임원단을 하지 않았으면 평생 몰랐을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는 개뿔 자리는 사람을 피폐하게 할 뿐이었다. 그 와중에 일요일 전체를 바쳐야 하는 초등부 교사직은 나에게 그 어떤 가치도 제공해주지 못했고 피곤함을 가중시켜줄 뿐이었다. 돈을 벌어도 생활비로 다 빠져나가고 있었고, 송도에서 그다지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지 못한 채 1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군대를 선택했다. 어찌 보면 무언가를 내려놓지 못하고 거절하지 못하는 내가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심지어 군대를 GOP로 지원했다. 그곳에서는 뭔가 바뀔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래서 1학년의 기억이 많이 없다. 시간이 지나서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 떠올리려 해도 행복한 순간들이 머릿속에 많이 그려지진 않는다. 다만 1학년 때 많은 사람들을 경험해봤기에, 돈을 벌면서 사회생활을 해봤기에, 장기 봉사를 해보았기에, 어린 나이에 생각보다 조숙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힘든 군생활을 하면서 끈기를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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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1학기

전역 후 다 자라지 않은 머리를 갖고 복학했다. 그때는 뭐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눈앞에 보이는 것이 공부이다 보니 그것만 주구장창했다. 덕분에 높은 학점으로 우등상을 받을 수 있었고, 장학금을 받았으며 경제학에 대한 기초를 탄탄히 할 수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듣는 꿀강의보다는 명강의를 선호했고, 덕분에 이런 게 정말 학문이지, 지식이지 하는 과목들을 들으며 인생에 있어 몇 안 되는 '계몽'하는 순간을 경험했다. 짧지만 길었던 이 한 학기 덕분에 나는 공부하는 법을 터득했다. 사실 공부하는 법이라기보다는 시험을 잘 보는 법을 터득했다. 하지만, 이때 확실하게 느낀 건 '내가 공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였다. 대학원이나 고시의 꿈은 바로 여기서 접었다. 이것을 10년 동안 할 자신이 없었다.


2학년 2학기

가을학기부터 창업 학회에 들어가면서 공부와 서서히 손을 놓기 시작했다. 학문을 공부하기보다는 일을 하는 것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발로 뛰는 것이 나에게 더 큰 짜릿함을 안겨주었다. 자연스레 명강의들을 철회했고 꿀 강의를 골라 들으며 간신히 학점을 유지하는 선에서만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전에 터득한 공부방법으로 학점은 챙겼으며 절대 미래에 손해 보는 짓은 안 했다. 그러다 보니 삶이 바빠졌다. 그때부터 잠자는 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던 것 같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욕심쟁이어서 학교를 손에 놓지 못했다. 물론 창업 초기여서 바쁜 게 생각보다 덜 했던 것일 수도 있다. 당시 학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나는 그들 덕분에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었다. 나에게 자극이 되는 존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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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1학기

다들 3학년을 사망년이라 한다. 들어야 할 전공과목도 많고 슬슬 학회와 인턴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계속 창업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 학교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고 최대한 학교를 내 삶에 활용하고자 노력했다. 단적인 예로 창업지원금, 사무실, 전문가와의 무료 멘토링 등을 받았다. 이를 통해서 사업을 생각했던 것보다 더 키워나갈 수 있었다. 초기 자본이 굉장히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괜찮은 서비스들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투자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에 뭔가 투자를 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만한 수업들만 골라 들었다. 회계원리, 재무관리, 한국경제론, 화폐금융론, 국제금융론, 국제금융시장분석과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거시경제와 기업분석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물론 창업에 온 힘을 쏟느라 이 시기 학점을 제일 적게 받았지만 이때 배운 지식들은 내가 자산을 증식하는 데 지금도 많은 도움이 된다. 기업의 기본적인 재무제표, 금리/환율 등을 기초로 하는 전반적인 거시경제의 흐름, 금융상품 (선물/옵션) 등 우리 삶을 구성하는 '돈'이라는 것에 대해 학부생 수준이긴 하지만 일반인들보다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나중에 브런치에 따로 매거진으로 써도 좋을 것 같다.) 이러한 지식들은 나만의 투자 원칙을 세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살면서 가장 바쁜 순간이었다.


3학년 2학기

당시에 사업의 성장성이 둔화되고 있었고, 이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템으로 창업을 시도할 내가 어떻게든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창업가로서 갖춰야 할 역량을 키우는 선택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떤 가치관을 보유해야 할까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내린 결론은 어떠한 일에 있어 미시적인 흐름은 내가 역량을 키워서 통제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일을 둘러싸는 거시적인 흐름은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산이 되어버린 스타트업에서의 경험과 경제학 전공 지식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타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응용통계학과 복수전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와 관련된 지식을 쌓으면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머신러닝을 활용한 기술 창업을 할 것이라는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계학에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정량적인 데이터 분석만을 활용한 트레이딩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경제학과 통계학의 시너지가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 그림이었다. 다만 이 학기에 통계학을 제대로 공부하면서 이 학문은 수학이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 내내 의문을 가지고 배웠던 수학이 '이렇게 세상을 바꾸는구나.'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제야 수학이라는 학문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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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1학기

학문적인 지식으로는 부족했다. 이를 지혜로 바꾸어서 실생활에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내 빅데이터 학회에 들어갔다. 거기에서는 실제로 프로그래밍을 통해 머신러닝과 딥러닝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코딩 공부를 했다. 해당 학회에서 배운 것들을 활용해서 학회에서 만난 팀원들과 주식 자동 트레이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내가 내 손으로 어떤 시스템을 만든 것은 24년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침 코로나 시대가 찾아오면서 오프라인이 온라인으로 넘어오는 시대의 패러다임에 마지막으로 탑승했다. 그렇게 나는 IT라는 것에 매료되었고 그곳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데이터 분석은 기본이고 컴퓨터공학적인 지식을 습득해갔다. 그것이 내가 지향해야 할 미래라고 생각했다. 다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석사와 박사가 기본이 되어야 했는데, 그거는 내가 못하겠다고 이미 2년 전에 결론을 내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할 것은 여기 전공수업과 학회를 통해 전문가까지는 아니어도 전반적인 지식을 갖추는 것이었다.


4학년 2학기

뭐 마지막 학기는 대충 다니는 게 맞으니 대충 다녔다. 이미 배울 것은 다 배웠고, 학점은 채울 대로 채웠고, 그다음 스텝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할 시기였다.


IMG_0974.jpg 코로나 전 축제가 그립다


학교 생활 내내 '난 꼭 이것을 할 거야!' 하고 명확한 무언가가 있었던 적이 없다.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갔다. 다만 한 번도 쉬지 않았다. 흔하디 흔한 휴학조차 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했고 세상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었으며 과거의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졸업을 할 때쯤 나는 1학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제야 졸업식에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놓친 게 너무나도 많다. 마음을 나눌 친구를 많이 못 사귀었고, 교환학생을 통해 다른 나라를 경험해보지 못했고, 더 좋은 수업을 들으며 깨달음을 얻지 못했고, 휴학을 하면서 삶의 여유를 가지지 못했고, 여러 회사에서 인턴을 해보지도 못했다. 누군가 대학생활에 후회가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때로 되돌아갔을 때 다른 선택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 같다. 아쉬움이 많지만 그래도 보람찬 대학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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