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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플랑 Jan 13. 2019

언젠가는 우리 전부 다 '도'에서 만날거야

 “미희가 그만뒀대.”

 “언제?”

 “정확히는 몰라. 지난주부터 연락이 잘 안됐대. 오늘 사표 내러 왔다고 들었는데.”

 “왜?”

 친구와 나는 서로 마주보았다. 나는 말을 꺼낸 즉시 후회했다. 왜냐니, 바보같이 그런 걸 묻다니.

 “글쎄. 아, 엘리베이터 왔다. 다음에 봐.”

 대화를 나누던 친구는 ‘홀수층 행’엘리베이터를 타고 바삐 사라졌다. 나는 혼자 남아 바보같이 ‘왜 그만뒀대?’하고 물은 나 자신을 자책했다. 수련을 그만 둘 이유는 산더미처럼 많았다. 반면에 수련을 계속 받아야 하는 근거는 나뭇가지 하나보다도 약했다. 그것은 작은 충격에도 이내 부러져버렸다. 수련을 시작한 시점부터 우리는 모두 집채만한 파도 앞에서 작은 나뭇가지 하나씩을 들고 서있었다. 파도는 때로는 육체의 피로였고, 때로는 연인의 푸념이었고 또 때로는 친구의 질책이었다. '너만 바쁘냐, 다들 원래 힘들어!'

 땡

 짝수층 행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면서 생각이 멈췄다. 오후 외래 시작시간인 한시 반 전에 만나야 할 협진의뢰 환자가 세명이나 더 있었다. 잡념에 시달릴 시간이 없었다.   

 ‘오늘 지민언니 공연인데, 갈 수 있어? 내가 가기로 했었는데, 발표준비를 시간안에 다 못 할 것 같아서 못가겠어.’    

 친구 인혜의 문자다. 지민언니는 인턴 수료를 우리와 함께 하고, 1년간 쉬고 있다. 용기있는 선택이었다. 의대에 온 친구들은 대부분 '멈춰 본 적이 없는'친구들이다. 그래서 이렇게 수련 중간에 휴식하는 기간을 갖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갈게.'

 정규 근무가 끝난 후에도 할 일이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가고 싶었다. 언니의 공연에.


 공연장은 찾기가 어려웠다. 30여분정도 늦게 도착한 공연장에는 연주자들의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만 몇명 왔는지 단출한 인원만 와 있었다.

 공연프로그램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주제가가 이미 지나간 순서였다. 다음 곡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 송. 바이올린이 몇 대, 첼로도 있고, 플룻과 비올라도 함께하는 제법 멋진 오케스트라였다.

 ‘도 는 도라지의 도, 레 는 레코드의 레’ 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그 후로는 짖궃은 남학생들이 ‘미 는 미친놈의 미’하던 것이 기억났다. 반면 영어학원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세뇌당한 영어 가사는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That will bring us back to do-oh’


 연주회가 끝나고 언니가 기쁜 표정으로 내게 달려 왔다. 나는 준비해 간 보라색 리시안셔스 꽃다발을 내밀었다.

 "어떻게 왔어, 먼데."

 "멀긴, 와야지. 연주 멋지던데?"

 "그랬어? 고마워. 우리 요 앞 천변에 가서 맥주 마시자."

 



 지민언니와 나는 맥주를 한 캔씩 들고 천변에 걸터 앉았다.

 "무슨 곡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

 "도레미 송."

 “나도 그 곡 좋아해. 인생이 도레미파솔라시도의 계단을 부지런히 오르는 것 같아서."

 "근데 오랜만에 들어서인지 아까 가사가 기억 안나더라고."

 "가사 쉽잖아. 도는 도깨비의 도, 레는 레코드의 레.”

 “아냐, 도깨비의 도 아닌데.”

 “내가 확실하게 아는데, 도는 도라지의 도야. 레는 레코드의 레가 맞고.”

 “미는 미친놈의 미 아니야?”

 “미친거 아니야, 동요에 왜 욕이 나와.”

 “이러고 있을 시간에 가사를 찾아보자.”

 “도미미 미솔솔 레파파 라시시, 솔도라파 미도레 솔도라시 도레도 라니. 이거 진짜 너무한데. 그냥 계이름대로 읽은 거잖아. 무슨 가사가 이래.”    

 “that will bring us back to do-oh-oh-oh 이 부분은 확실히 알아.”    

 "결국 다시 도로 돌아가네."

 "그러네."



 "언니. 미희가 그만 뒀대."

 "잘됐네."

 "그렇지? 잘됐지."

 "응. 잘 됐네."

 "쉬니까 좋아?"

 "엄청 좋아."

 "나는 한번 여기 올라타니까 내릴 수가 없네. 역시 인턴은 괜히 한 걸까?"

 "아니야. 건강도 상하고 마음도 많이 다쳤지만, 그래도 역시 인턴은 하길 잘 했다고 생각해."

 지민언니의 대답이 의외였다.

 "그래? 나는 언니가, 바로 레지던트 안 하고 쉬러 가서, 인턴도 괜히 했다고 생각할 줄 알았어."
 "많이 잃었지만 많이 배웠지. 너도 잘 생각해 봐. 일 년의 시간동안 무엇을 배웠고 어떤 것을 얻었으며 또 어떤 것을 잃었는지."
 맥주를 홀짝이며 의연하게 대답하는 언니는 한참 어른처럼 보였다.

 “언니는 이제 뭐 할건데? 다음 연주회 준비?”

 “아니. 이제 여기서 할 일은 다 끝냈다고. 의무를 다 했으니 나도 좀 놀아야지.”

 “뭘 하면서 놀 건데?”

 “일단, 코끼리를 보러 갈 생각이야.”

 “코끼리면 어디 있는데? 태국?”

 “아프리카.”

 그 말을 끝으로 언니는 무언가를 탁 털고 일어나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갑자기 어디 가.”

 “아프리카로 간다니까. 따라오너라. 내가 오늘 아프리카의 맥주 맛을 보여 주지.”

 그렇게 언니는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어딘가로 바삐 향했다. 쭈뼛거리며 언니를 따라 나섰다. 미희도, 나도, 언니도, 우리 모두가 각자 바삐 도레미처럼 계단을 오르고 있구나.




 그렇지만,

 ‘That will bring us back to do-oh’니까, 언젠가는 우리 전부 다 도에서 만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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