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에 가다
(다른 병원으로 환자가 전원해야 할 상황에서, 환자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의료진이 동반해서 가야 하는데 이를 '트랜스퍼'라고 부른다.)
트랜스퍼가 끝나고 나면 사설 구급차가 원래의 병원으로 다시 데려다 주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대부분 이 경우에는 가운을 입은 채로 처음 와 보는 병원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되고, 트랜스퍼를 갈 때는가방도 없이 가기 때문에 가운을 벗어 둘둘 말아 쥐고 택시를 타고 돌아오게 된다.
한 번은, 응급실에서의 나이트 근무, 즉 밤샘 근무를 마치고 근무 종료까지 10여분 남은 시점에 트랜스퍼를 가게 되었다. 데이 근무를 시작하는 인턴을 보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인턴 한 명이 부족한 채로 응급실이 돌아가기 때문에, 근무가 끝난 인턴을 보내는 것이다. 트랜스퍼가 끝나고 나서 택시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니 몇 시간 쉬지 못하고 다음 근무를 위해 출근할 시간이 다가왔었다. 슬픈 기억이다.
또 다른 기억 하나는, 수원에서 전공의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힘들었던 주말 당직을 마치고 잠시 콧바람이나 쐬려고 병원 앞에서 아무 버스나 잡아탔는데, 버스를 타자 마자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종점이니 일어나 내려라'는 버스 기사님의 말에 잠에서 깼다. 그런데 내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남한산성'이라는 것이다. 황당했다. 수원에서 버스를 탔는데 남한산성이라니. 잠깐 신선들끼리 장기 두는 것을 구경하고 나니 도끼 자루가 썩어있더라는 나무꾼처럼, 나 역시 잠시 졸고 나니 남한산성이었던 것이다. 조용하고 낯선 풍경에 마치 시간여행을 와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나 혼자 다른 세계로 넘어 와 버린 것 같은 느낌.
황망한 마음으로 어찌저찌 택시와 버스를 바꿔 타 가며 병원으로 돌아왔는데, 아직도 그 때의 외로움과 황당함이 선연히 기억난다.
두 가지의 기억을 조합하여 '남한산성에 간 인턴샘'이라는 만화를 그리게 되었다. 1화를 그린 뒤로 워드프로세서가 잘 작동되어 아직 2화는 그리지 못했다.
홀로 남한산성이라는 외딴 곳에 남겨진 경험을 바탕으로 쓰긴 했지만, 사실 당시에는 '차라리 과거로 돌아온 거라면 내일 출근은 안 해도 될텐데.' 라는 생각을 했었다. 안타깝게도 착한일을 덜 한 탓인지 시간의 요정 '시요'가 나타나 주지 않아 다음날 정시에 출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