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같기도 새벽 같기도 한 출근길. 잠이 잔뜩 서린 눈에도 하늘빛이 참 예쁘게 들어와 셔터를 눌렀다.
한창 프로젝트 중인 남편은 간밤 새벽 2시에 들어왔다. 밤 10시면 자던 아이가 11시까지 잠들지 않아서 저녁도 거른채로 9키로짜리 아이를 안고 30분 넘게 달랬더니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눈물이 나서 목이 매어 자장가를 불렀다. 아이가 잠든 새 마른 밥에 밑반찬 한두개로 늦은 저녁을 떼우고 이유식을 만들고 뒷정리를 하고 나니 밤 12시 30분. 오늘 회사에서는 하는 일 없이 참 피곤했다.
퇴근하려는데 눈이 내린다. 아이가 너무나 보고 싶지만 집에 가서 정신없이 씻고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저녁을 먹을 생각을 하니 왠지 더 피곤하다. 오늘은 엄마가 아이를 봐주시는 날이다. 주무시고 가시는 날이다. 조금 늦게 가도 괜찮은 날이라는 의미다. 같이 아줌마가 된 옆 동료와 삽겹살에 소주 한 잔, 딱 저녁 먹을 시간만큼만 먹고 가기로 한다. 신기하게도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고 나니 좀 덜 피곤하다. 그래서 육아휴직 기간 중에 남편 회식 그렇게 많았던가.
결혼하고 나서 미혼인 후배들이 결혼생활에 대해 물어볼 때 항상 이야기했다.
"넘 좋아. 근데 넘 피곤해"
30년 평생 다르게 살아온 사람과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은 배려가 필요한 일이다. 아무리 같이 한다 해도 나도 모르게 내가 더 많이 하고 있는 집안일로 인한 피로도 상당하다. 내 사람과 사랑하며 함께 사는 것은 넘 좋지만 한편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곤한게 사실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똑같다.
아이로 인해 훨씬 행복한데, 훨씬 피곤하다. 상상해보지 못한 행복감과 피로감이 공존한다. 그리고 그 폭은 어쩔 수 없이 여자가 더 크게 느낀다. 제대로 된 회사생활을 하려면 가정생활에 매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 사회, 가정적인 남자를 뒤에서 쪼다 취급하는 아저씨들이 많은 이 사회에서는 그렇다.
나는 수많은 밤을, 남편이 술마시고 뻗은 밤들을,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며 생각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여자로 태어나지 않으리'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아들이라 다행이야 이 삶을 물려주지 않아도 되서"
남편도 피곤하다는 걸 안다. 그러나 출산을 통해 겪는 신체의 변화와 마음의 혼란은 아이가 머무르고 나온 공간을 제공한 여자만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육아를 위해 사회생활에 공백기를 가지면서 느끼는 불안과 우울함은 남자가 느끼기 힘들다.
이번 생에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다음 생엔 다른 선택을 하겠다. 정말 선택이 가능하다면, 무언가로 태어나야 한다면 지렁이로 태어나 조용히 흙 속에서 세상을 깨끗하게 하다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
* 이 글은 2018년 출산휴가에서 복귀한 해에 작성한 글이다. 저장한 글을 발행하기까지 무수한 망설임이 있었지만, 육아를 통해 어쩔 수 없이 여기 이곳에서 여자로 사는 삶을 절실히 겪어내고 있는 내가, 더이상 견디기 힘들 때 나도 모르게 인터넷 창에 비슷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동시대의 여자들의 글을 보며 느낀 위로를, 그 누군가도 내 글을 보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발행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