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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팬 Apr 25. 2024

사랑하면, 오줌 누는 소리도
아름답게 들립니다.

화장실 망 봐주는 부부

“소변은 잘 나오십니까?”    

 

“예. 아직은 별 이상 없이 잘 나오는 편입니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소변이 잘 안 나오는 수가 있으니까 물을 많이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    


       

암센터를 나오면서 병원 로비에 있는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을 샀습니다. 마침 목도 마르던 참이라 벌컥벌컥 한 병을 다 마셨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가다가 소변 마려우면 어떡해?”    

 

“집에 갈 때까지는 괜찮겠지 뭐.”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차를 몰고 큰길로 나서자 아직 러시아워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길이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차량의 행렬을 보는 순간, 생각보다 훨씬 일찍 생리현상이 작동되면서 바로 요의가 느껴졌습니다.

      

“참을 수 있겠어?”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아봐야지.” 

     

그러나 차 안에서 지체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이제는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마침 샛길이 하나 보였습니다. 잽싸게 그리로 빠져나와 낯선 그 길을 한참 달려가는데…   

    

“아. 저기 화장실 보인다.”  

   

아내가 반색하며 말했습니다. 과연 저만치 앞에 화장실 표지가 보였습니다. 급히 차를 세우고 화장실 앞으로 뛰어갔습니다. 달랑 남자 칸 하나 여자 칸 하나만 있는 간이화장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하필 남자 화장실이 고장이었습니다. “수리 중” 팻말이 붙어있는 것입니다. 

     

아내가 쫓아오더니 소리쳤습니다.     

 

“여보. 내가 망봐줄 게. 빨리 여자 화장실 들어가!”     

 

까딱 잘못하면 목사 체면에 치한으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도리가 없었습니다.   

   

얼른 여자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어찌나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았던지 바지 지퍼를 내리자마자 늙어가면서부터 졸졸졸졸 힘없이 흘러나오던 소변 줄기가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콸콸콸콸 힘차게 용솟음치며 쏟아져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 화장실 앞에서 그 언젠가처럼 망보고 있는 아내를 생각하며 소변 보는 내내 혼자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벌써 꽤 오래전의 일입니다. 성지답사 여행 중 이집트의 시나이반도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여정의 최종목적지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시내산이었습니다.   

   

시내산 가기 전 먼저 르비딤에 도착했습니다. 르비딤은 평원이란 뜻을 가진, 신 광야와 시내 광야 사이의 대추야자 나무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오아시스 지역을 말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이집트를 탈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 앞에 흉포하기로 악명 높은 사막의 여우 아말렉 족속이 길을 가로막고 르비딤에서 싸움을 걸어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모세는 르비딤 평원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가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때부터 희한한 일이 일어납니다. 모세가 두 손 들고 계속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파죽지세로 아말렉을 물리치고, 지쳐서 손 내리고 잠시 기도를 쉬고 있으면 쫓겨났던 아말렉이 금방 다시 살아나 이스라엘 군대를 격파해 버리는 것입니다.  

    

기도의 힘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출애굽기 17장 11절)  

     

여기까지 온 김에 나도 모세처럼 기도하고 싶어졌습니다. 아내와 함께 모세가 기도했던 르비딤 언덕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일생일대의 잊지 못할 은혜롭고 감동적인 기도를 드렸습니다.    

  

언제나 시험은 은혜받은 직후에 찾아옵니다. 은혜롭게 한참 기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언덕을 내려갈 때쯤 슬슬 요의가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세도 바로 이 자리에서 온종일 기도했을 텐데 아무리 위대한 천하의 모세라도 사람인 이상 소변 한번 보지 않고 오롯이 기도만 했을 리는 없다. 기도하다가 최소한 한두 번은 반드시 여기 어딘가에서 소변을 보았을 것이다. 나도 모세가 기도한 것처럼 간절히 기도했으니 모세가 소변 본 것처럼 시원하게 소변도 한번 보고 내려가자.  

    

그리고 모세가 소변 보았을 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아! 바로 저 장소였을 것이다. 광활한 르비딤 평원 반대편 대추야자 나무숲 우거진 쪽에 은밀한 장소가 눈에 띄었습니다.   

   

“여보. 나 급해서 그런데 망 좀 봐줘. 소변 좀 보게.” 

    

아내는 충실히 파수꾼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내가 볼일 보는 동안 혹시 우리 일행 중 이곳 가까이 접근하는 사람은 없을까 매의 눈으로 날카롭게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문제는 배후의 적(?)입니다. 한참 시원하게 대추야자 오아시스를 향해 폭포수 같은 물줄기를 좔좔좔좔 쏟아내고 있는데 갑자기 후방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 마이 갓! 함께 성지답사 여행에 동행한 권사님 집사님 사모님들이 매복한 게릴라처럼 불쑥 언덕 아래쪽에서 나타나더니 내가 폭포수를 뿜어대고 있는 언덕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안 돼! 안 돼! 거기서 당장 멈출지어다! 여기는 거룩한 땅이니 가까이 오지 말지어다!     


      

        


   

성지에서의 아슬아슬한 추억을 떠올릴 때면 또 하나의 동화 같은 이야기가 겹쳐 떠오릅니다.    

  

통기타 가수들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던 70년대 초의 일입니다. 송창식의 꽃보다 귀한 여인이 구성지게 흘러나오는 명동의 한 빵집에서 반항기 가득한 키꺽다리 소년과 하얀 얼굴에 단정한 교복 차림의 소녀가 우연히 만났습니다.   

   

우연이 두 번 세 번 계속되면 필연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년과 소녀에게 이상한 우연이 계속되었습니다. 버스 안에서도 우연히 만났고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가도 우연히 만났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빵집에서 얌전히 우유와 빵만 사 먹고 헤어졌습니다. 두 번째 만났을 때는 둘이 나란히 창경궁 돌담길을 걸었습니다. 세 번째 만났을 때는 야무지게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구경했습니다.  

    

그러면서 요것들이 점점 대담해져서 어느 날은 시외버스 타고 산정호수까지 놀러 갔습니다.    

  

산정호수 뒤에는 명성산이 있습니다. 산정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명성산을 까마득히 올려다보다가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명성산에도 올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산길을 걸어가는데 아뿔싸. 중요한 문제를 하나 해결하지 않고 산에 올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녀가 점점 소변이 마려워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등산로에 공중화장실이 제대로 있었을 리 없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소변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소녀의 얼굴이 잔뜩 긴장되며 어두워졌습니다.   

   

남자들은 그까짓 문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무 데서나 권총을 꺼내 들고 조준 발사하면 끝납니다. 그러나 수속절차가 복잡한 여자들에겐 그 간단한 일이 참 큰 문제였습니다.    

  

소녀가 이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얼굴을 붉히면서 소년에게 뭐가 좀 급하다는 사인을 보냈습니다. 다행히 소년은 눈치가 빨랐습니다. 곧 소녀의 문제를 알아차렸습니다. 

     

소년이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숲속을 여기저기 살펴본 후 은밀하면서도 안전한 장소를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소녀가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망을 보기로 하였습니다. 

     

볼일 보러 어두운 숲속으로 들어가며 소녀가 부탁했습니다. “무서우니까 너무 멀리 있지 마.”


소녀의 부탁을 듣고 소년이 소녀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소년이 너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소녀가 질겁하며 더 멀리 가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가까이 가면 멀리 가라고 하고, 멀리 가면 무섭다고 하고, 도대체 어느 정도 거리가 소녀가 원하는 거리인지 헷갈리는 사이, 어느덧 소년의 귀에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졸졸졸졸. 졸졸졸졸. 졸졸졸졸. 졸졸졸졸. 졸졸졸졸.     


아. 그 시냇물 흐르는 소리는 소녀가 오줌 누는 소리였습니다. 소년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그 소리에 쫑긋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소리는 정녕 소년이 이제껏 들었던 모든 소리 중에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소리였습니다.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인들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으랴.   

  

졸졸졸졸. 졸졸졸졸. 졸졸졸졸. 졸졸졸졸. 졸졸졸졸.    

 

그때 소년은 평생의 중요한 진리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면, 오줌 누는 소리도 아름답게 들리는구나!   

  

고 깜찍한 소년과 소녀는 훗날 자라나서 부부가 되었습니다. 



     


     

볼일 다 보고 여자 화장실에서 나왔습니다. 아내가 그때까지 망을 보고 있었습니다.  

    

르비딤에서 망보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명성산 어느 숲속에서 망보던 소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졸졸졸졸. 졸졸졸졸. 졸졸졸졸. 졸졸졸졸. 졸졸졸졸.  

   

베토벤의 전원교향곡보다 더 아름다운 시냇물 소리가 아직도 내 귓전에 졸졸졸졸 들려오는 듯합니다.    

  


*** 



하하하


이 불경한(?) 글을 보면


이제는 할머니가 되신 옛 소녀께서 진노하실까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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